육조거리를 다 채우다

궁 시리즈가 두 번 사라진 뒤 다시 시작한 사람이 11월 한 달 동안 의정부에서 광화문 월대까지 관청을 하나씩 복원해 육조거리를 채웠다. 배치도는 인터넷 자료를 교차검증해 썼고, 공간이 모자란 곳은 모자란 대로 두었다.

빈 지도 위의 궁과 거리
빈 지도 위의 궁과 거리© 짱구uk

2018년 겨울호에서 우리는 엿새 만에 지어진 경복궁을 다뤘다. 그 궁은 연재가 끝난 뒤 컴퓨터를 포맷하면서 사라졌고, 마지막 편에는 경복궁 프로젝트 끝이라는 다섯 글자가 붙어 있었다.

2020년 봄 특집호에서는 같은 봄에 나란히 지어진 세 개의 경복궁을 다뤘다. 그중 하나가 이 기사의 궁인데, 그 궁도 사라졌다.

01두 번째로 사라진 궁

9월 28일에 그가 올린 글의 제목은 경복궁 Ver.2였다. 오랜만에 카페에 글을 쓴다는 인사 다음에 사정이 한 줄로 적혀 있다. 지난번 궁 시리즈가 예상치 못하게 증발하는 바람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아 한 곳씩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이라는 것이었고, 괄호 안에 이번에는 오류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이 붙어 있었다.

계획은 오히려 커졌다. 앞으로 다섯 궁궐뿐 아니라 별궁과 사직단과 종묘까지 원형으로 복원할 예정이라고 그는 적었다. 인경궁도 복원해 보고 싶으나 관련 자료가 거의 없어 복원하더라도 창작이 되지 않을까 싶어 고민 중이라는 말이 뒤에 붙는다. 자료가 없으면 짓지 않겠다는 태도다.

댓글에는 육조거리 복원이 기대된다는 말이 달렸다. 봄 특집호에서 그는 지금 광화문광장으로 다니는 도로를 모두 지하화하고 육조거리를 복원하는 중이라고 밝혔고, 의정부 3분의 2 지점까지는 경복궁 축을 따라가다가 그 이후로는 관악산 방향으로 기우는 원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고 적었다.

02한 달, 관청 하나씩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본 육조거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본 육조거리© 짱구uk

11월의 게시판에는 관청이 하나씩 올라왔다. 7일에 의정부 청사가 서고, 11일에 그 맞은편의 삼군부와 중추부가 서고, 15일에 중추부 남쪽의 사헌부와 병조가 섰다. 19일에는 광화문 월대가 재현됐다.

각 편의 구성은 같다. 먼저 그 관청이 무엇을 하던 곳인지 짧게 설명하고, 전체 항공사진을 놓고, 배치도를 보이고, 중심 건물부터 짚어 나간다. 사헌부는 대청과 집의청이 중심을 잡고 그 둘레를 대장청과 감찰방과 재좌청이 둘러싸며, 병조는 당상대청과 낭청대청과 제례 공간인 신당으로 중심을 이룬다.

삼군부 편에는 건물의 뒷이야기까지 붙었다. 총무당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청헌당, 오른쪽에 덕의당이 있으며 셋은 복도각으로 이어져 있었다. 총무당은 1930년에 성북구 삼선동으로, 청헌당은 1967년 정부종합청사가 들어서면서 육군사관학교 부지로 각각 옮겨졌고, 덕의당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총무당 뒤의 작은 연못은 고증과 최대한 비슷하게 조성했다는 말이 이어진다.

배치도를 어디서 구했느냐는 물음에는 인터넷에 있는 여러 자료를 교차검증해서 쓰려 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선시대와 대한제국 시기의 육조 배치에 변동이 있어서 그 점을 참고해 진행하고 있다는 말이 뒤에 붙었다.

03공간상의 문제

관청 한 곳의 배치
관청 한 곳의 배치© 짱구uk

11월 30일의 글은 육조거리 전체였다. 왼쪽 구역에 공조와 사역원과 형조와 병조와 사헌부와 중추부와 삼군부가 있고, 오른쪽 구역에 기로소와 농상공부와 호조와 한성부와 이조와 의정부가 있다. 관청마다 하는 일이 한 줄씩 적히는데, 기로소에 대해서는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과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로서 실무적인 업무는 별로 없는 곳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이 글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문장은 감탄이 아니라 유보다. 여러 전각이 있지만 공간상 문제로 전부는 구현하지 못했다는 말이 사역원과 호조와 한성부에 차례로 붙는다. 이조에 대해서는 사진을 찍지 못해 생략하겠다고 했다.

육조거리가 실제로 얼마나 넓었는지를 생각하면 이 유보는 자연스럽다. 관청 한 곳이 담장 안에 대청과 낭청대청과 산학청과 고사와 서리장방을 모두 거느리는데, 그 열세 곳을 한 거리 안에 다 넣으려면 어딘가는 줄여야 한다. 그는 줄인 자리마다 줄였다고 적었다.

농담도 하나 있는데, 삼군부 편 말미에 어도에 있는 행각은 못 본 것으로 하자는 괄호가 붙어 있다.

04시간이 멈춘 땅

위에서 본 육조거리
위에서 본 육조거리© 짱구uk

댓글 하나가 이 작업의 조건을 정확히 짚었다. 건축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땅이라는 말이었는데, 돌아온 답은 건축을 시작하고 계속 시간 정지 상태라 그렇다는 한 줄이었다.

이 게임은 도시를 돌리면 건물이 낡고 나무가 자라고 도로가 마모되는데, 궁을 짓는 동안 그는 시간을 세워 두었다. 그래서 육조거리의 흙바닥은 어제 깐 것처럼 깨끗하고 담장에는 그을음 하나 없으며, 관청 마당에는 발자국도 남지 않았다.

지면에 실은 두 번째 화면이 그 상태를 보여 준다.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북쪽을 본 구도인데, 차선과 횡단보도가 그려진 현대식 아스팔트 도로가 정면으로 뻗고 그 좌우에 기와지붕의 관청이 늘어서며, 신호등과 가로등이 관청 담장 앞에 서 있다. 도로 바깥으로 한 뼘만 나가면 아무것도 없는 흙바닥이다.

육조거리가 남아 있는 서울을 상상해 보게 된다는 댓글에는, 그랬으면 전통 체험과 관련된 장소로서 세종로 일대가 활용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는 답이 달렸다. 그 아래 네 글자짜리 댓글이 하나 더 있다. 역사를 짓다.

05북악산 예정지에서

전체 편의 사진들은 방위로 정리되어 있다. 남동, 남서, 남, 동, 동북, 북, 북서, 서. 같은 거리를 여덟 방향에서 찍은 다음 경복궁과 육조거리의 전체 모습이 오고, 마지막 한 장에 캡션이 붙는다. 북악산 예정지에서 바라본 육조거리.

예정지라는 말이 이 도시의 지금을 말해 준다. 궁 뒤에 있어야 할 산이 아직 없어서, 그 산이 설 자리에 카메라를 놓고 궁과 거리를 내려다본 화면이 되었다. 봄 특집호에서 우리는 능선부터 맞춰 가며 궁을 짓던 사람과 게임이 준 지형 위에 궁부터 세운 사람을 나란히 놓았는데, 이번 재현에서는 산이 다음 차례로 밀려나 있다.

건축시작하고 계속 시간 정지상태라 그렇습니다.
북악산 예정지에서 바라본 육조거리입니다.

06다음은 덕수궁

12월에도 게시판은 이어졌다. 4일에 경희궁 흥화문이 올라오고, 21일에 경복궁 근정전 사진 한 장이 올라왔는데 그 아래에는 품계석을 어디서 구하나 하는 괄호가 붙어 있었다.

26일에 올라온 글은 제목과 본문이 같은 한 줄이었다. 덕수궁 복원 중.

또 새로운 대장정이라는 댓글에 덕수궁과 경희궁을 같이 복원하려 한다는 답이 갔고, 그러면 다섯 궁궐이 끝나겠다는 말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모두 복원하고 나면 웅장할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첫 호에서 우리가 다룬 궁은 마지막 편에 끝이라는 두 글자를 남기고 사라졌다. 두 번 사라진 궁 앞에서 이 사람이 12월 말에 적어 둔 것은 다음 두 궁의 이름이었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관청 목록·기능 설명·배치 서술·전각 이전 이력·유보 문구는 모두 원문 그대로
  • 역사 서술은 공식 자료와 대조했다. 총무당은 1930년, 청헌당은 1967년 이전으로 보정했고, 덕의당이 사라진 시점은 공식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아 본문에서 특정하지 않았다. 광화문 월대 복원은 2018~2023년 서울시·문화재청 공동 사업으로 확인했다.
  • '궁 시리즈가 증발했다'는 것은 작성자가 9월 글에 직접 적은 사실이다. 그 원인은 원문이 밝히지 않았고 지면에서도 추측하지 않았다
  • '자료가 없으면 짓지 않겠다는 태도다'(01절), '그는 줄인 자리마다 줄였다고 적었다'(03절), 맺음 문단이 편집부 논평
  • 시간 정지 상태에서 마모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설명(04절)은 편집부 배경 서술이며, 댓글 문답에 근거한다
  • 사진 묘사(빈 벌판 위의 궁과 거리, 차선이 그어진 도로와 좌우의 행각, 담장 안의 배치와 연못, 위에서 본 구획)는 지면에 실은 네 장에 보이는 범위
  • 봄 특집호와의 대비(능선부터 맞춘 궁 / 지형 위에 세운 궁)는 편집부가 이은 연결이며, 원문들이 서로를 언급하지는 않는다
  • 댓글은 발언 내용만 옮기고 닉네임은 지면에 쓰지 않았다
  • 연작 (11월)
  • 앞뒤
  • 2018 겨울호 [경복궁, 눈이 내릴 때까지] · 2020 봄 특집호 [세 번째 경복궁] · [다시 볼 수 없는 도시] 참조.
  • 지면 미게재: 게임 시간 정지 기능의 실명. 관청 기능 설명은 원문이 정리한 내용을 옮긴 것이며 1차 자료 대조는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