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2020-winter

남의 도시에 문을 여는 카페

한 사람이 여러 도시를 돌며 같은 상호의 카페를 열고, 개점 공고를 매번 같은 문장으로 올린다. 번호는 순서를 따르지 않고, 댓글에는 우리 도시에도 들어와 달라는 유치 제안과 간판을 더 키우라는 조언이 함께 달린다.

남의 도시에 문을 여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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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에 올라온 두 편의 글은 형식이 완전히 같았다. 상호가 맨 위에 오고, 한 줄 띄우고, 일상 속의 행복이라는 표어가 온다. 다음 줄에 공항과 해변이 있는 도시에서 문을 연다는 문장이 붙고, 1호점과 2호점의 이름이 두 줄 적힌 다음 가운뎃점 세 개가 세로로 놓이고, 이번 지점의 번호와 이름이 온다.

맺음도 정해져 있다. 표어를 한 번 더 적고, 어디에서 만나 보라는 문장으로 닫는다.

01바뀌는 것은 두 줄

같은 날 올라온 다른 글에서 바뀐 것은 두 줄뿐이었다. 공항과 해변이 있는 도시가 별빛이 아름다운 도시로 바뀌고, 3호점 연동이 8호점 화명으로 바뀐다. 마지막 줄의 만나는 장소도 연동의 한 주상복합에서 화명의 신도시로 바뀐다.

11월 18일에는 마라 향이 풍기는 도시에서 문을 연다는 문장과 함께 7호점이 열렸고, 만나는 곳은 그 도시의 시청이었다. 11월 20일에는 11호점이 열렸는데, 문을 여는 도시를 소개하는 문장이 8호점 때 쓴 것과 똑같았다. 같은 도시의 다른 거리에 여는 지점이었으니 앞머리를 바꿀 이유가 없었다.

12월 6일의 13호점은 다양한 공원이 있는 도시였고, 만나는 곳은 역 지하상가였다.

도시마다 붙는 한 줄짜리 수식은 그 도시가 무엇으로 알려져 있는지를 짧게 요약한다. 공항과 해변, 별빛, 마라 향, 다양한 공원. 카페 개점 공고가 도시 소개문 노릇을 겸한다.

02번호는 순서가 아니다

(사진) 화명에 문을 연 8호점. 데크에 테이블을 내놓았다.

이 연작을 순서대로 읽으면 이상한 점이 하나 눈에 띈다. 11월에 3호점이 열리고 같은 날 8호점이 열리며, 18일에 7호점이, 20일에 11호점이, 12월에 13호점이 열린다.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 분명해진다. 7월 초에 이미 15호점이 문을 열었고, 그때도 1호점과 2호점의 이름이 위에 적혀 있었다. 번호는 개점 순서를 따르지 않고 자리마다 미리 매겨 둔 쪽에 가깝다.

본문에 늘 1호점과 2호점만 적히고 나머지가 가운뎃점으로 생략되는 것도 같은 이유로 읽힌다. 목록의 처음 둘과 이번 하나만 보이고 그사이는 비어 있는데, 그 빈자리가 앞으로 채워질 자리가 된다.

03우리 도시에도 들어와 주세요

(사진) 지점 안쪽. 등을 줄줄이 매달아 조도를 낮췄다.

도시들 사이의 관계는 본문이 아니라 댓글에 남았다.

3호점 글에는 다음 지점을 예약하려는 댓글이 붙었다. 자기 도시에도 예약이 되겠느냐는 물음이었다. 그 아래에는 다른 도시의 시장이 남긴 긴 댓글이 있다. 카페가 예쁘다고 하고, 자기 도시의 다른 구역도 기대해 본다고 하고, 마지막에 우리 도시의 카페 거리에도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답은 링크 하나였다. 같은 날 그 도시에 문을 연 8호점 글의 주소였다.

조언도 있다. 7호점 글에는 앞면을 좀 더 뜯어내고 간판을 크게 달라는 댓글이 붙었는데, 블록으로 지은 상가의 1층에서 간판과 유리면의 비율을 어떻게 잡느냐는 이야기다. 11호점 글에는 드라이브 스루가 인상적이었다는 감상이 달렸다.

7월의 15호점 글에는 다른 종류의 감탄이 있었다. 조명이 예쁘다는 말에 돌아온 답은 갑옷거치대라는 것이었는데, 조명처럼 보이던 것이 실제로는 갑옷을 걸어 두는 블록이었다. 이 게임에서 실내를 꾸미는 일은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져서, 원래 용도가 전혀 다른 블록을 가구나 조명으로 바꿔 쓴다.

13호점 글에는 댓글이 하나 붙었다. 계속 거기 계시던 이유가 이거였느냐는 것이었다. 같은 지도 안에 있으니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나가다 보이고, 며칠 뒤 그 자리에 카페가 열린 글이 올라온다.

근데 카페거리도 들어오실래여
아 계속 거기 계시던 이유가 이거였군유

04상호를 한 번 바꿨다

이 카페에는 앞선 이름이 있었다. 7월의 15호점 글에 그 사실이 남아 있는데, 전에 쓰던 상호에서 바뀐 것이냐는 물음에 옛 이름과 새 이름을 화살표로 이어 붙인 답이 돌아왔다.

옛 이름은 자기 별명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었고 새 이름은 사람 이름이다. 상호를 바꾸면서 지점 번호와 개점 공고의 형식은 그대로 이어졌다.

이름이 바뀌는 일은 이 카페만의 사정이 아니다. 이 게시판에서는 사람도 도시도 회사도 이름을 바꾼다. 여기서는 옛 상호에서 바뀐 것이냐는 물음 하나가 앞뒤의 기록을 이어 놓았다.

05체인점이라는 형식

도시를 짓는 일은 한 자리에 오래 머무는 작업이지만 체인점은 그 반대다. 남의 도시 1층을 한 칸씩 빌려 같은 간판을 달고 나오는 일이라, 지점이 늘어날수록 이 사람이 다녀간 도시의 목록이 길어진다. 여름의 은산과 가을의 함학과 심양과 화명, 겨울의 아리울이 그렇게 한 줄로 꿰였다.

12월 2일에는 지점 소식이 아닌 짧은 글이 하나 올라왔다. 제목은 맛집이었고 본문은 다섯 글자였는데, 다른 사람의 기말과제라는 말과 함께 국밥과 알탕이 해시태그로 붙어 있었다. 남의 도시에 카페를 여는 사람이 남이 만든 식당을 찍어 올리는 글이다.

연말의 마지막 글은 자기 도시 이야기였다. 자기 도시가 좋은 이유라는 제목 아래, 그 도시가 도의 중심부에 위치해 다른 도시와의 접근성이 상당한 편이라는 문장이 첫 줄에 적혀 있었다.

블록으로 지은 건물 1층의 열린 카페. 나무 데크가 깔린 앞마당에 낮은 테이블과 의자가 놓이고, 안쪽으로 연두색 간판과 조명을 켠 주문대가 보이며, 처마 아래로 등이 줄지어 매달려 있다.
화명에 문을 연 8호점. 데크에 테이블을 내놓았다.
카페 실내. 밝은 나무 바닥과 천장 아래로 등을 매단 조명이 줄지어 걸려 있고, 오른쪽에 나무 탁자와 의자가 여러 벌 놓였으며, 왼쪽 안쪽에 회색 카운터와 진열대가 있고 창밖으로 바깥이 내다보인다.
지점 안쪽. 등을 줄줄이 매달아 조도를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