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모아 놓고 보면
12월의 게시판에 한 해를 정리한 글이 두 편 올라왔다. 한쪽은 1월부터 12월까지 지은 건물을 한 채씩 떼어내 렌더링했고, 다른 쪽은 지은 아파트를 날짜순으로 적다가 삭제된 것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연말의 마지막 글은 누가 누구인지를 맞추는 명단이었다.
12월 6일과 11월 20일, 성격이 비슷한 글이 두 편 올라왔다. 하나는 1월부터 12월까지의 여정이라는 제목이었고, 다른 하나는 연말정산 글로 위장한 모음집이라는 제목이었다.
둘 다 새로 지은 것을 보여 주는 글이 아니라 이미 지은 것을 한자리에 늘어놓는 글이다.
01허공에 놓고 찍기
앞의 글에는 사진이 쉰두 장 붙어 있었다. 서두에 밝힌 대로 이미 다른 곳에도 올린 것이라는 안내가 먼저 오고, 자기 것이 아닌 계정으로 올라온 게시글은 자기가 아니라는 확인이 뒤따른다.
본문은 두 줄이었다. 그동안 만들었던 건축물들의 렌더링 사진이며, 올해의 시작인 1월부터 올해의 끝인 12월까지 많은 것을 한 지도라는 것.
사진의 형식이 이 글의 성격을 정한다. 건물 한 채나 단지 하나만 잔디를 깐 정사각형 지반 위에 얹어 옅은 하늘 배경에 띄워 놓았고,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도시 안에 있던 것을 한 채씩 오려 내 허공에 세운 셈인데, 정리라는 말에 이보다 잘 맞는 화면은 드물다.
본문 아래에는 참고 자료 목록이 붙었다. 서울과 인천과 대구의 입체 지도, 지도 서비스 하나, 그리고 아파트 브랜드 여섯 곳의 공식 사이트. 어디를 보고 지었는지가 그대로 목록이 되어 남았다.
괄호 안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블록 서버에 들어갔는데 자기 같은 건축 아싸를 건축 인싸로 만들어 주는 반응 좋은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것. 한 해 치를 정리해 올린 날이 그 서버에 처음 들어간 날이었다.
02현 삭제

뒤의 글은 형식이 전혀 다르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이제야 한 해가 끝나간다는 것을 느꼈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그해 서버에서 지은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모아 봤다고 밝힌다.
그다음은 목록이다. 단지 이름, 준공 날짜, 그리고 괄호. 1월 16일에 넷, 1월 25일에 하나, 2월에 넷, 3월에 다섯, 7월에 둘, 8월에 하나, 9월에 셋, 10월에 하나.
괄호 안이 이 글의 핵심이다. 어떤 이름 아래에는 현 삭제라고 적혀 있고, 어떤 이름 아래에는 지금 어느 도시에 있다고 적혀 있다. 1월에 지은 넷 가운데 하나는 삭제되었고 둘은 다른 도시로 옮겨졌으며, 나머지 하나의 괄호 안에는 말줄임표와 물음표만 들어 있다.
한 채는 이름의 한 글자가 가려져 있다. 그 아래 괄호에는 현 삭제라는 말과 함께 이름을 일부러 가렸다는 설명이 붙었다.
목록이 끝나고 다음 해 1월에 예정된 일곱 채가 이어진 뒤, 마지막 한 줄이 온다. 저도 몰랐는데 삭제된 게 꽤 많았다는 것.
저도 몰랐는데
삭제된게 꽤 많았네요
03옮겨지고 지워지는 건물

현 오천시 위치, 현 지산시 위치, 현 현양시 위치. 목록에 반복되는 이 표기가 이 게시판만의 사정을 보여 준다.
혼자 만드는 도시에서 건물은 도시와 함께 저장되고 도시와 함께 사라진다. 하나의 지도를 나눠 쓰는 쪽에서는 건물이 도시보다 오래 살기도 하고 도시보다 먼저 죽기도 한다. 지은 사람이 자기가 지은 것의 현재 위치를 조사해야 목록을 완성할 수 있고, 조사하고 나서야 몇 채가 없어졌는지 알게 된다.
댓글도 그 지점을 짚었다. 없어진 게 많다는 말과 뭐가 많았느냐는 말이 이어졌고, 상가나 주택까지 모두 포함하면 훨씬 늘어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번 호의 다른 기사가 다룬 5년 된 건물의 개조도 같은 조건에서 나온다. 지은 사람의 손을 떠난 뒤에도 건물이 그 자리에 남아 있으니 옮기거나 지우거나 고치는 일이 생긴다.
04누가 누구인지
12월 27일, 이 게시판의 그해 마지막 정리 글이 올라왔다. 서버 사용자들의 겉모습과 이름을 모은 명단이었다.
작성자가 밝힌 수집 기준은 좁았다. 스크린샷에 나온 사람과 자연스레 알게 된 사람만 있다는 것이고, 괄호 안에 서버 이름을 까먹은 사람이 제일 많다는 말이 붙어 있다.
서두의 한 줄이 이 명단을 만든 이유를 설명한다. 자료를 찾으면서 서버에서는 많이 뵀지만 카페에서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인지 모르고 있던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
첫 댓글이 그 문장을 그대로 받았다. 그게 저라면 Y를 눌러 주고 아니라고 하시면 N을 눌러 달라는 것이었다.
이 카페에서 사람을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어긋난다. 서버에서 쓰는 이름과 카페에서 쓰는 이름이 다르고, 둘 다 바뀌기도 한다. 이번 호에서도 상호를 바꾼 카페와 이름이 달라진 연재를 다뤘고, 그중 하나는 편집부가 같은 사람인지 끝내 단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어 올릴 주기를 정하는 방식도 그다웠다. 이 글의 반응에 따라 한 주마다 올릴지 한 달마다 올릴지 22세기에 올릴지 정해진다는 것이었다.
05다음 해로 넘기는 목록
세 편의 글이 정리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한 사람은 지은 것을 한 채씩 떼어내 배경 없는 화면에 세웠고, 한 사람은 날짜와 현재 상태를 적은 목록을 만들었으며, 한 사람은 사람들의 이름을 모았다.
공통점은 세 편 모두 다음을 적어 두었다는 점이다. 렌더링을 올린 사람은 참고할 만한 자료의 주소를 남겼고, 목록을 만든 사람은 다음 해 1월에 지을 일곱 채를 미리 적어 두었으며, 명단을 만든 사람은 요청이 있으면 지우겠다는 단서와 함께 다음 판을 예고했다.
이번 호가 다룬 두 달은 대체로 그런 달이었다. 여섯 타일에서 멈춘 도시의 마지막 사진이 있었고, 두 번 사라진 궁을 다시 세워 육조거리를 채운 기록이 있었으며, 336세대를 끝내자마자 새 도시의 건축 규정을 올린 사람이 있었다. 박물관은 연내 개장을 목표로 절반쯤 왔고, 5년 된 건물은 뜯어고쳐졌으며, 카페는 남의 도시에 열세 번째 지점을 열었다.
끝낸 것과 끝내지 못한 것이 같은 게시판에 나란히 올라온 두 달이었다. 목록을 적어 보고서야 몇 채가 없어졌는지 알게 되었다는 문장이 이 계절의 기록 가운데 가장 정확한 한 줄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