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공하고, 새 도시를 신청하다
화명시 별빛신도시에 지어진 336세대 아파트 단지의 완공기. 호수와 관리사무소와 상가를 갖추는 데 한 달이 걸렸고 상가는 댓글로 분양되었다. 완공 하루 전날 같은 사람은 다른 자리에 새 도시를 신청했고, 12월 말에는 그 도시의 건축 규정을 올렸다.
12월 2일 밤, 블록 게시판에 사진 쉰다섯 장이 붙은 글이 올라왔다. 첫 문장은 두 줄이었다. 재건축이 오늘 끝났고, 세대 수는 모두 336세대라는 것.
이 단지의 이름은 별빛이고 지어진 곳은 화명시의 별빛신도시인데, 지은 사람은 그 도시의 시장이 아니다.
01기다려 주신 시장님께
글의 마지막 줄은 감사 인사였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 준 화명시장에게 고맙다는 것이었고, 그 아래 붙은 첫 댓글이 화명시장의 답이었다. 자기야말로 발전에 보탬이 되어 주어 감사할 따름이라는 말이 별표 세 개와 함께 적혀 있었다.
이 서버의 도시들은 각자 다른 파일에 들어 있지 않고 하나의 지도를 나눠 쓴다. 그래서 어떤 도시의 신도시에 다른 사람이 아파트 단지를 짓고, 완공되면 지은 쪽이 기다려 줘서 고맙다고 적고 내어 준 쪽이 보탬이 되어 줘서 고맙다고 답하는 문답이 성립한다. 시티즈 쪽 게시판에서는 나오지 않는 형식이다.
단지를 지은 쪽은 오래전부터 자기 작업에 회사 이름을 붙여 왔다. 건설과 식품과 자동차와 카페가 같은 이름 아래 묶여 있고, 이 단지에 들어온 학원과 독서실과 식당과 카페도 대부분 그 계열이다. 완공 글의 마지막 댓글은 짧았다. 아 입점 마렵다는 것.
02호수와 관리사무소

완공까지의 과정은 근황 글 몇 편에 남아 있다. 11월 8일의 글에는 평화로운 아파트 단지에 거대한 커뮤니티 시설이 서 있는데 보면 볼수록 예쁘지만 부자연스러워서 다른 섬으로 옮긴 뒤 나중에 다른 곳에 써먹을 예정이라고 적혀 있고, 그 건물의 본이 세종에 있는 도서관이었다는 말이 뒤따른다.
완공 글의 캡션은 시간대별로 나뉜다. 조경의 핵심인 호수의 낮 시간대, 같은 호수의 노을 시간대, 최고의 리버뷰를 자랑한다는 노을 사진, 그리고 밤 시간대의 호수와 관리사무소와 커뮤니티 센터 일대.
11월 23일의 근황 글에는 옆 단지와 통하는 통로와 경비실과 지하주차장 입구와 간이 벤치와 각종 예술품과 조경이 거의 완성되어 간다고 적혀 있고, 원기둥을 넷으로 나눈 듯한 특이한 모습의 관리사무소도 완공되었다는 말이 붙는다. 그 아래 한 줄이 더 있다. 참고로 예술품들의 제작사 또는 제작자는 모두 그 회사의 미술 부문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
완공 글에서 그는 커뮤니티 시설의 본이 된 건물도 밝혔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체육관이었고, 주소가 적힌 지도 한 장이 그 아래 함께 실려 있었다.
03상가는 댓글로 분양한다
11월 14일에는 성격이 전혀 다른 글이 하나 올라왔다. 제목은 상가 분양이었다.
본문은 사진 설명이 아니라 안내문에 가깝다. 1번부터 4번까지는 한쪽 벽을 바꿀 수 없고 5번부터 7번까지는 벽을 바꿀 수 있으며, 1층 매장은 출구를 마음대로 뚫어도 된다는 것. 한 부지의 크기를 보여 주는 사진이 붙고, 내부 통로용 문은 꼭 만들 필요가 없다는 단서가 달리고, 차도 쪽 유리창부터 파란 선까지가 부지라는 경계 설명이 이어진다.
맺음은 한 줄이었다. 신청은 댓글로 해 달라는 것.
댓글은 그대로 분양 창구가 되었다. 6번과 7번이 가능하냐는 물음에 가능하다는 답이 갔고, 5번을 묻는 사람에게도 4번을 묻는 사람에게도 같은 답이 갔다. 층고가 어떻게 되느냐는 물음에는 바닥과 천장을 빼고 네 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신청은 댓으로 해주세용
층고는 바닥 천장 제외 4칸입니당
0412월 1일, 강 양쪽의 부지

완공 글이 올라오기 하루 전, 같은 사람이 도시 게시판에 다른 글을 냈다. 새 도시의 등록 신청서였다.
신청서는 정해진 서식을 따른다. 도시 이름과 신청자와 신청 위치가 차례로 오고 위치는 좌표 두 줄로 적히는데, 정확한 측정이 아니라 눈대중으로 표시한 것이니 대략 그 언저리라고 생각해 달라는 단서가 지도 아래 붙어 있다.
개발 계획은 아이패드로 쓴 것이라 글씨가 좀 날아다닌다는 사과와 함께 시작한다. 주거는 말 그대로 주거이고 상업은 말 그대로 상업이며 공업 역시 말 그대로 공업이라는 문장이 먼저 오고, 부지가 강 양쪽을 차지하고 있어서 주요 개발 거점들이 다리로 이어질 예정이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짙은 초록으로 빗금을 그은 구역은 옆 부지의 시장과 협의해 도립공원으로 삼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이 서버에서 도시를 새로 여는 데에는 조건이 있다. 가입 기간과 그동안 세운 건물이 점수로 매겨지고, 신청자는 자기가 지은 사무 건물들이 위키의 건축물 목록에 모두 등록되어 있음을 밝힌 뒤 열여섯 채의 출입구 좌표를 하나하나 적어 두었다.
이틀 뒤 그는 도시가 등록되었다고 알렸다. 시청이 먼저 놓였고 본은 서울의 한 구청이었으며, 건물 위에 붙은 원형 표지가 이 도시의 표지라고 했다. 심심해서 만들어 봤다는 조직도가 그 아래 붙어 있었다.
05규정으로 닫는 한 해
12월의 남은 날들은 새 도시로 채워졌다. 시청 별관이 증축되어 종합민원실과 시의회 회의실과 대강당이 들어갔고, 미륵사지 석탑과 무령왕릉이 세워졌으며, 보건소가 문을 열고 구도심에 주공아파트 자리가 잡혔다.
12월 24일에는 다음 해의 주요업무계획이 올라왔다. 전주시의 문서를 참고해 만들었다는 한 줄이 본문의 전부였고, 그 아래로 열여덟 장의 계획서가 이어졌다.
이튿날에는 건축 규정이 올라왔다. 부지와 높이와 외관과 내부와 조경을 차례로 정하고, 30블록 이하 건물은 내부를 전부 구현해야 하며 31블록 이상은 승강기와 계단실과 1층을 구현해야 한다고 못 박는다. 아파트 단지는 최소 관리사무소 하나와 상가 두 곳과 공원 두 곳을 갖춰야 하고 동은 두 가지 유형 이상이어야 한다.
가장 정직한 조항은 반복되는 한 줄이다. 외관의 미흡함은 시장이 판단하며 주관적인 기준이라는 것. 같은 문장이 내부 항목과 조경 항목에도 그대로 붙어 있다.
한 해의 마지막 주에 이 사람이 올린 것은 완공 사진이 아니라 규정과 계획서였다. 336세대를 끝낸 자리에서 다음 도시의 규칙이 먼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