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전부 노래 같은 도시

Cloud 9, Our Summer, Paradise, You Better Know, UTOPIA, Hear The Sea — 한 사람의 게시글 제목이 그대로 한 장의 앨범이 되는 여름. 글마다 곡 표기가 두 줄씩 붙어 있었고, 도시는 시민 없는 세트장이라 불렸다. 여덟 개의 제목이 붙는 동안 정작 도시에는 이름이 없었다.

Paradise
Paradise© 강

도시를 짓는 사람들은 대개 제목에 무엇을 지었는지 적는다. 역 완성, 공항 근황, 고속도로 공사. 정보가 먼저다.

그런데 5월 말부터 6월까지 올라온 이 사람의 제목에는 정보가 없다. 대신 분위기가 있다.

Cloud 9 · Our Summer · Paradise
You Better Know · LOST · UTOPIA
NE♡N · Hear The Sea

01앨범 같은 목록

올라온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위와 같다. 전부 영어이고, 전부 짧고, 전부 노래 제목처럼 생겼다.

글을 열어 보면 사진 아래에 두 줄이 붙어 있다. 가수의 이름과 곡명이 한 줄, 앨범과 연도가 한 줄. 이 연작에서 본문이라 부를 만한 것은 대체로 그 두 줄이 전부다.

게시글 제목글에 적힌 가수와 곡앨범
Cloud 9CRAVITY 〈Cloud 9〉HIDEOUT: REMEMBER WHO WE ARE — SEASON1. (2020)
Our Summer투모로우바이투게더 〈Our Summer (Acoustic Mix)〉2019
Paradise방탄소년단 〈낙원 (Paradise)〉LOVE YOURSELF 轉 'Tear' (2018)
You Better Know레드벨벳 〈You Better Know〉The Red Summer (2017)
LOST방탄소년단 〈LOST〉
UTOPIA에이티즈 〈UTOPIA〉TREASURE EP.3 : One To All (2019)
NE♡N오마이걸 〈NE♡N〉NONSTOP (2020)
Hear The Sea레드벨벳 〈Hear The Sea〉The Red Summer (2017)

표기는 글에 적힌 그대로 옮겼다. 편집부는 이 곡들을 음원으로 대조하지 않았으므로, 표의 오른쪽 두 칸은 작성자가 적어 둔 기록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다만 순서를 정하는 쪽이 무엇이었는지는 댓글에 남아 있다. 도시에 노래를 맞추는 게 아니라 노래에 도시를 맞추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라는 농담에, 작성자는 이번 연작은 노래가 메인이라고 답했다.

이 매거진은 지난 호들에서 이 사람의 도시를 여러 번 다뤘다. 여름의 수안국제공항, 가을의 공항동과 들안, 겨울의 눈 내린 세 장면. 그때도 제목은 비슷했다. Winter Dream, Early winter, Happy snowy day. 정보 대신 분위기를 적는 것은 오래전부터의 습관이다.

025월에 온 여름

Our Summer
Our Summer© 강

Our Summer가 올라온 것은 5월 28일이다. 달력으로는 아직 봄이다.

사진에는 주차 빌딩의 붉은 P 간판이 크게 걸려 있고, 그 아래 요금표가 일본어로 붙어 있다. 골목을 가로질러 보행 육교가 지나가고, 육교 너머로 흰 아파트 한 동과 뭉게구름이 보인다. 여름 오후의 광량이다.

계절을 달력이 아니라 기분으로 세는 방식이다. 볕이 좋아지고 하늘의 대비가 세지면 그때부터 여름이다. 지난 겨울호에서 이 사람은 12월에 눈을 내렸다. 바깥이 겨울이니 도시도 겨울이어야 한다는 동기화였고, 이번에는 조금 이르게 바깥이 여름 같으니 도시도 여름이라고 했다.

댓글에서 이 연작이 다른 사람의 글과 닮아 간다는 지적이 나오자 작성자는 포인트를 잘 잡았다고 받았고, 표절이라는 농담에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답했다. 강 하나 건너면 바로 옆 도시이니 터널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웃 도시의 제안에는, 상관이야 없지만 굳이 필요하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03시민 없는 세트장

이 연작을 두고 작성자가 되풀이해 쓴 단어가 하나 있다. 세트장이다.

주행 영상을 찍으려고 만든 도시냐는 물음에 그는 오직 영상만을 위한 도시라고 답했다. 복선 위에 건널목을 놓은 것이 끔찍하다는 지적에는 시민 없는 세트장이라 괜찮은 부분이라고 했고, 열리지 않을 건널목이라는 놀림에는 그런 분위기를 노렸다고 받았다. 완성도가 높다는 농담이 오자 1초 만에 들통난 세트장 신세라고 적었다.

표지 사진이 그 성격을 그대로 보여 준다. 검은 오피스 타워 옆으로 붉고 흰 송신탑이 서 있고, 그 아래 일본식 목조 주택이 늘어서 있으며, 오른쪽 아파트 벽면에는 한국어 광고판이 붙어 있다. 철길은 화면 오른쪽 절반을 통째로 차지한다. 실재하는 어느 도시도 아니지만 카메라를 어디에 놓아도 그럴듯한 화면이 나오도록 배치되어 있다.

보정을 얼마나 먹였느냐는 물음에는 하나도 먹이지 않았다는 답이 달렸다.

04길을 잃는단 건

6월 15일 글에는 두 줄짜리 곡 표기 대신 짧은 글이 붙었다. 번호는 #000이었다.

잃어버린, 잃어버려야만 했던 장소가 왜인지 눈앞에 펼쳐져 있다고 그는 적었다. 말줄임표 세 줄을 지나 마지막에 한 줄이 더 있다. 길을 잃는단 건, 그 길을 찾는 방법.

길을 잃는다는 말은 도시를 짓는 사람에게 이중적이다. 만든 도시가 너무 복잡해져 자기도 길을 헷갈리는 순간이 있고, 무엇을 더 지어야 할지 방향을 잃는 순간도 있다. 도시가 커지면 어느 시점부터 진도가 느려지고, 사람들은 새 도시를 파거나 한동안 손을 놓는다. 지난 호들에서 다룬 부활과 중단과 재개는 모두 그 순환의 일부였다.

댓글은 그 문장을 진지하게 받지 않았다. 석유화학단지가 너무 넓어 길을 잃겠다는 말에는 그 단지가 이미 불에 타 없어졌다는 답이 돌아왔고, 숨바꼭질이라는 해시태그 한 줄이 그 아래 붙었다.

05바다를 들어라

Hear The Sea
Hear The Sea© 강

6월 말의 제목은 Hear The Sea였다. 바다를 보라가 아니라 들으라고 했다.

도시를 짓는 일은 압도적으로 시각적인 취미다. 스크린샷을 찍고, 구도를 잡고, 색을 만진다. 소리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게임 안에서 바다 소리는 실제로 나서 파도가 치고 갈매기가 울고 배가 지나가는데, 스크린샷에 소리가 담기지 않으니 대부분은 그것을 듣지 않는다.

이 도시의 콘셉트가 독특하다는 말에 작성자가 내놓은 답은 세 글자였다. 유럽한국. 유럽식 외관의 건물 사이에 한국 음료 광고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그 회사가 글로벌 기업인 모양이라는 농담도 함께 달렸다.

06이름이 아직 없는 도시

6월 21일 글의 끝에는 한 줄이 더 붙어 있었다. 도시 이름을 추천해 달라는 것이었다.

여덟 번에 걸쳐 그날의 기분에 이름을 붙이는 동안, 정작 도시에는 이름이 없었다. 댓글에는 네온이 제안되고, 강을 뜻하는 프랑스어가 제안되고, 석유와 다리를 붙인 네덜란드어풍 조합이 제안됐다. 작성자는 배를 나르는 도시라는 한 줄로 자기 도시를 설명했다.

사진으로 전달되지 않는 것들에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가 이 목록이다. 구름 아홉 개 위의 기분, 우리의 여름, 낙원, 길을 잃는다는 것, 그리고 바다 소리. 이번 호의 플레이리스트는 여기서 출발했다. 제목이 노래 같았으니 노래를 실제로 골라 보기로 했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제목 목록·곡 표기·LOST 본문·도시 이름 요청은 원문 그대로
  • 표의 가수·곡·앨범은 게시글 본문에 적힌 표기를 옮긴 것이며, 편집부가 음원·발매 정보를 1차 대조하지 않았다. 본문에도 그 사실을 적었다
  • '계절을 달력이 아니라 기분으로 센다', '카메라를 어디에 놓아도 그럴듯한 화면이 나오도록 배치되어 있다', '사진으로 전달되지 않는 것에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 등 해석은 편집부 논평
  • 게임 내 바다 소리에 대한 서술은 편집부 배경 서술
  • 02·03절의 사진 묘사는 게재 이미지에 보이는 범위
  • 댓글은 발언 내용만 옮기고 닉네임은 지면에 쓰지 않았다
  • 2019 여름호 [수안국제공항] · 가을호 [수안의 완성, 들안의 시작] · 겨울호 [흰 겨울을 꿈꾸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