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남해입니다

서버 안의 가상 광역자치단체가 관광 홍보 캠페인을 만들었다. 카피와 포스터가 있고, 여행 안내서가 있고, 면적 계산 서비스까지 있다. 도시를 짓는 일이 도시를 파는 일까지 나아가는 과정.

남해도 메인 홍보 이미지
남해도 메인 홍보 이미지© 티디비

5월 말, 마인크래프트 게시판에 광역행정이라는 말머리를 단 글이 올라왔다. 2020 남해도 메인 홍보 이미지.

남해도는 서버 안의 가상 광역자치단체이고, 그 아래에 신내와 지산과 아리울이 있다.

01캠페인의 카피

포스터는 한 장짜리 합성 이미지다. 왼쪽에는 유리와 금속의 고층 건물이 늘어선 도심이 있고, 오른쪽 언덕에는 목조 다층 탑과 한옥 지붕이 올라앉아 있으며, 그 사이를 저녁 구름이 지난다. 왼쪽 위에 카피가 흰 글씨로 놓이고 오른쪽에 제목이 크게 앉는다.

남해문화를 향유하며 셰익스피어를 꿈꾸는 문학소년부터
살아숨쉬는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와
바쁜 도심 속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비즈니스맨
그리고 자연 속에서 치유와 안정을 얻는 사람들.
이곳은 남해입니다

네 부류의 사람을 나열하고 마지막에 지역명을 놓는 구조인데, 실제 지역 관광 캠페인이 흔히 쓰는 형식이다. 이 지역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고 당신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는 초대이며, 네 부류는 남해도의 도시 구성과 하나씩 대응한다. 문화를 향유할 곳, 역사를 연구할 곳, 도심의 여유를 즐길 곳, 자연에서 치유를 얻을 곳.

이튿날 두 번째 포스터가 올라왔고 카피는 사람에서 장소로 옮겨 갔다. 천년고도가 내뿜는 역사의 숨결, 대도시에서 누리는 백만가지 문화, 대자연이 머금은 놀라운 생명력. 첫 포스터 끝에는 이 캠페인이 계속된다는 예고가 붙어 있었으니, 한 장으로 끝낼 생각이 아니었다.

02도지사 김갑수

댓글에서 이 캠페인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한구석에 도지사 서명이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는 말이 달리자, 만든 사람이 곧바로 답했다. 남해도지사 김 갑 수. 뒤이어 다른 사람이 남해도지사 김갑수 씨라고 받았다. 존재하지 않던 도지사가 댓글 세 줄 만에 이름을 얻었다.

만든 사람 자신도 카피를 한 줄 더 보탰다. 대도시부터 자연, 전통부터 현대까지, 남해를 이르는 말은 다양하다고. 광고 문안을 댓글에서 이어 쓰는 셈이다.

농담도 광고의 형식을 따랐다. 두 번째 포스터 아래에는 영어 시험 문제 흉내가 올라왔다. 여기가 어디냐는 물음에 알맞은 답을 고르라며 보기 넷을 늘어놓았는데, 정답으로 보이는 문장 옆에 아 브로, 디스 이즈 동해라는 오답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관광 캠페인이 나오자마자 그 캠페인을 재료로 삼은 패러디가 붙은 것이다.

포스터의 실용적인 효과도 있었다. 마인크래프트를 사야 하나 묻는 사람에게 만든 이는 지도로도 구경할 수 있다며 접속 방법을 알려 주었다. 홍보물이 실제로 사람을 부르는 데 쓰였다.

03여행 안내서와 면적 계산 서비스

홍보 이미지 2
홍보 이미지 2© 티디비

홍보물은 포스터만이 아니었다. 열흘 앞서 같은 도(道)의 다른 도시에서는 가상의 여행 안내서가 나왔다. 블록을 돌아다니는 외로운 여행자를 위한 첫 가이드북이라는 소개와 함께 세 도시 편이 동시에 출간됐고, 값까지 붙었다. 두 도시 편은 만 육천 원과 만 팔천 원, 아직 개발이 덜 된 한 도시 편은 이천오백 원이었다. 그 편은 친환경 종이에 인쇄된 내용도 없어 뒷면에 케첩을 짜도 안전하니 꼭 구입하라는 소개가 달렸다.

본문 미리보기도 실렸다. 한옥마을 항목에는 입장료와 개장 시간이 적히고, 유서 깊은 한옥이 즐비한 이곳에 최근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차리는 청년 사업가와 예술가가 모여들어 새로운 활기를 띠고 있다는 서술이 이어진다. 그렇다고 옛것이 없어진 것은 아니라며, 시집온 할머니가 50년간 지켜 온 갈비집을 꼭 들르라고 권한다. 그 갈비집은 봄 특집호 읍성 기사에서 실제로 지어진 건물이고, 안내서에 적힌 할머니의 이름은 그 집 인테리어를 맡은 사람의 이름이다.

6월에는 면적 계산 서비스까지 개시됐다. 일러스트레이터의 객체 면적 계산 스크립트를 수정하고 제곱미터와 제곱킬로미터 환산식을 세워 면적을 도출한다는 설명과 함께, 두 구역의 넓이가 소수점 여섯 자리까지 발표됐다. 예술섬 0.377268제곱킬로미터, 한 동의 일부 구역 0.760917제곱킬로미터.

정확도는 대략 1000조분의 1이라고 그는 적었다. 곡선이 없는데 왜 100퍼센트가 아니냐는 물음이 달리자, 0.36밀리미터 곱하기 0.36밀리미터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상의 도가 자기 땅을 실측해 통계로 내놓는다.

04행정보고라는 장르

같은 봄, 이 서버에는 행정보고도 여럿 올라왔다. 한 도시의 상반기 행정보고에는 도시 이름과 한자 표기, 구별 건축 현황, 주거 부문의 단지 목록과 세대 수가 차례로 적혀 있다. 더 프라우드 아파트 422세대, 더 클라우드 712세대, 파크로빌 엠시티 492세대, 합계 3,618세대.

이어서 동별 계획인구가 나온다. 봉승동 6,600에서 7,000명, 상곡동 12,000에서 13,000명. 일곱 개 동을 더하면 47,700명에서 57,400명이다. 교육 부문에는 고등학교와 국제학교가 오르고, 호텔 부문에는 여덟 곳의 객실 수를 합해 현재 1,906실 이상이라고 적었다.

아파트 단지의 세대 수를 세고 동별 계획인구를 추산하는 것은 도시계획 문서의 형식이다. 게임 안에는 실제로 인구가 살지 않는데도 계획인구를 적고, 손님이 들지 않는데도 객실 수를 합산한다.

이 매거진은 이번 호의 다른 기사에서 가상 국가의 총선거를 다뤘다. 한 사람이 자기 도시들 사이에 만든 제도였는데, 남해도의 홍보와 행정보고는 방향이 다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세계에서 자기 구역을 바깥에 설명해야 할 때 생기는 문서들이다.

05짓고, 알리고, 기록하기

이번 호부터 우리는 두 게시판을 함께 보는데, 두 곳의 성격 차이가 이 기사에서 가장 뚜렷하다.

시티즈 쪽의 도시는 작품에 가깝다. 혼자 만들고, 완성해서 보여 주고, 감상을 받는다. 잘 지었는지가 평가의 기준이다.

마인크래프트 쪽의 도시는 장소에 가깝다. 신청해서 허가받고, 다른 도시들과 나란히 서고, 사람을 부르고, 신문에 실리고, 행정보고를 낸다. 잘 지었는지만이 아니라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가 함께 평가된다. 한쪽에서는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다른 쪽에서는 도시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든다.

다음 호부터 우리는 블록 쪽의 지면을 조금씩 늘려 갈 예정이다. 그곳에는 아직 다루지 못한 것이 남아 있다. 도로망을 두고 벌어지는 토론, 역 이름을 정하는 공모, 유저 등록 정책을 놓고 백 글자씩 나누는 논쟁 같은 것들이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캠페인 카피·안내서 본문·면적 수치·행정보고 수치는 원문 그대로
  • '네 부류가 남해도의 도시 구성과 대응한다'는 편집부의 해석이며 원문이 그렇게 밝히지는 않았다
  • '남해도지사 김갑수'는 댓글에서 즉석으로 지어진 가상 인물이며 실재하는 회원이나 인물을 가리키지 않는다
  • 안내서의 '문혜화 할머니'와 인테리어를 맡은 회원의 이름이 겹친다는 지적은 편집부 해석이다. 지면에는 이름을 옮기지 않았다
  • 안내서 값의 원문 표기는 숫자이며, 지면에서는 한글로 풀어 적었다
  • 서버 접속 주소는 원문에 공개돼 있으나 지면에 옮기지 않았다
  • '홍보물이 실제로 사람을 부르는 데 쓰였다', '한쪽은 작품, 다른 쪽은 장소' 등 해석은 편집부 논평
  • 맺음의 '다음 호부터 블록 지면을 늘린다'는 편집 방침 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