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시 4대 총선거
가상의 나라 아레시에서 총선이 열리고 개표방송이 만들어졌다. 봄·가을·겨울호에 걸쳐 다룬 '도시정리 프로젝트'의 세계관이 통계에서 정치로 넘어간 순간을 읽는다.
이 매거진은 지난 세 호에 걸쳐 한 연재를 따라왔다. 자기가 만든 옛 도시들을 통계청 직원이 인구조사를 하러 방문한다는 설정의 도시정리 프로젝트다.
그 연재에는 늘 같은 형식의 기록표가 붙었다. 생일, 인구, 진행시간, 하위 행정구역, 그리고 선거구.
선거구라는 항목이 계속 걸렸다. 도시의 인구를 세는 데 선거구가 왜 필요한지, 그 나라에 정말 선거가 있는지. 2020년 6월 6일에 답이 올라왔다.
01제4대 아레시 총선·지선
제목은 아레시 4대 총선거였고 부제에는 개표방송이라는 말과 방송사의 약칭이 붙어 있었다. 본문은 마침표 하나가 전부였고, 대신 사진이 스물여덟 장이었다.
4대라는 숫자는 앞서 세 번의 총선거가 있었다는 표시다. 그 역사는 지난 가을호에서 다룬 시청시 기록에 이미 적혀 있었다. 2017년에 치러진 첫 선거에서 사실상 사장된 도시였던 시청시에 급진적인 정당의 대표가 지사로 당선되어 한때 화제가 되었고, 초심시와 다신시 사이의 지역감정 때문에 양당제처럼 전개되리라던 예상이 그때 뒤집혔으며, 그 사건이 지금까지 분리주의 계파가 안정적인 지지 기반을 갖는 원인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2대 총선에서 그는 연임했다. 한동안 텀이 있다가 치러진 3차 선거에서는 다른 정당 인물이 당선되며 시청시의 정치 구조가 상당히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젊은층이 대도시로 빠져나가며 인구가 계속 줄어든 것이 주된 영향으로 알려져 있다고 기록은 적었다. 지난 겨울호에서 다룬 인구 1,098명의 지금시는 2대 선거에서 주요 정당 인물의 당선용 선거구였다.
02화면 한 장
편집부가 판독한 것은 스물여덟 장 가운데 지면에 실은 한 장뿐이다. 그 한 장만으로도 이 게시물이 무엇을 흉내 내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화면 왼쪽 위에 제4대 아레시 총선·지선이라는 작은 글씨가 있고, 오른쪽 위에는 방송사 로고가 고화질 표시를 달고 붙어 있다. 가운데 큰 글씨는 선거구 이름이다. 뉴쿼드.
그 아래로 후보 셋이 정면을 보고 서 있다. 왼쪽 한 명은 파란 사선 배경 위에 당선 도장이 찍히고 53.2퍼센트라는 숫자가 붙었으며, 오른쪽 두 명은 각각 33.6퍼센트와 9.2퍼센트다. 얼굴은 게임 안 시민의 입체 모형을 그대로 세워 놓은 것이라 표정이 없다. 후보 이름은 지면에 옮기지 않는다.
화면 맨 아래에는 정당별 예상 의석이 아홉 칸으로 늘어서 있다.
| 정당 | 예상 의석 |
|---|---|
| 시민주 | 90–105 |
| 바겐세일 | 75–88 |
| 고유 | 62–77 |
| 기와 | 62–74 |
| 세계자유 | 55–68 |
| 시청복고 | 33–47 |
| 신초심 | 27–42 |
| 올바른수도 | 15–23 |
| 아레시라마연합 | 2–4 |
그 왼쪽에는 2020, 아레시 4대 총선거, 그리고 현재 개표율 1.3퍼센트라고 적혀 있다. 개표가 거의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 예상 의석부터 띄우는 것은 한국 개표방송의 오랜 관행이고, 이 화면은 그 관행까지 함께 옮겨 왔다.
03정당 이름을 읽는 법
아홉 개 이름 가운데 몇은 아레시의 도시 이름과 겹쳐 읽힌다. 시청복고와 시청시, 신초심과 초심시, 바겐세일과 세일시. 시청시 기록에 등장하는 바겐세일당과 시민주당이 이 표에 그대로 있으니, 정당 목록 자체가 3년 전 첫 선거 때부터 이어져 왔다.
도시마다 자기 정당이 있는 구조라면 제4도시 논란이 왜 그렇게 오래갔는지도 조금 설명이 된다. 순위 다툼이 곧 의석 다툼이 되기 때문이다.
나라가 있고, 선거가 있고,
그것을 중계하는 방송사가 있다.
04선호투표제니까요
댓글에서 한 사람이 표가 균등하게 나뉘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답은 여섯 글자였다. 선호투표제니까요.
선호투표제는 후보에게 순위를 매겨 투표하는 방식이다. 한 표가 1순위 후보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순위를 따라 옮겨 가기 때문에 군소 정당도 표를 얻는다. 아홉 개 정당이 2석에서 105석까지 촘촘히 늘어선 예상 의석표는 그 제도를 넣었을 때 나오는 모양이다.
가상의 나라에 선거를 도입한 사람이 투표 방식까지 정해 두었다는 사실이 이 댓글 하나에서 드러난다. 인구 1,098명의 도시가 캐스팅보트를 쥔다는 겨울호의 기록도, 표가 순위를 따라 옮겨 다니는 제도 위에서라면 그저 농담만은 아니게 된다.
05소비한 시간을 구하시오
댓글에는 모의고사가 하나 출제됐다. 과목명은 플레이시티 고사 기와 영역이었다.
단답식 1번, 배점 7점. 이 어마무시한 게시물을 올리기 위해 작성자가 소비한 시간을 구하시오.
답은 0초였다. 역시 예상대로 영겁의 시간이 걸렸다는 채점이 그 아래 붙었다.
스물여덟 장짜리 개표방송을 만드는 데 실제로 얼마가 걸렸는지 그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다른 댓글에는 이건 영상으로도 나와야 한다는 요청이 있었고, 화면에 스친 어느 계파 이름을 실제 조직 이름으로 잘못 읽고 놀란 사람도 하나 있었다.
06세는 일에서 뽑는 일로
이 연재는 이 게시판에서 가장 오래 이어지는 것 가운데 하나다. 2019년 봄에 세인스와 이차선시로 시작해 가을에 시청시, 겨울에 지금시를 지났고, 2020년 여름에 총선거에 이르렀다.
그 사이에 하는 일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옛 도시를 찾아가 인구를 세는 일이었고, 통계청은 판단하지 않고 다만 센다고 우리는 봄호에 적었다. 이제 그 통계 위에 정치가 얹혔다.
2018년의 칸도르는 도시의 연혁과 축제를 만들었고, 우미국은 왕실의 궁 목록으로 지리를 설명했으며, 2019년의 여울은 고속도로 분기점의 40년 연혁을 백과사전 문체로 적었다. 모두 도시나 시설 하나에 붙는 설정이었다. 아레시는 도시가 여럿이고, 그 사이에 순위가 있고, 순위를 둘러싼 논란이 있으며, 이제 표를 세어 대표를 뽑는다.
다음 선거가 언제인지는 적혀 있지 않다. 다만 화면 아래쪽의 개표율은 1.3퍼센트에서 멈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