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봉인 전 마지막 사진
'도시 봉인 전 마지막 사진'과 '가입 1주년 기념 1년 동안의 변화'. 고속도로망을 손대려면 도시 반토막을 부숴야 한다는 이유로 도시를 닫은 사람과, 1년 전과 똑같이 아직 초보라고 적은 사람이 나란히 놓인 초여름의 게시판을 읽는다.
6월의 게시판에 제목 하나가 올라왔다. 도시 봉인 전 마지막 사진.
봉인은 삭제도 중단도 아니다. 파일을 닫아 두되 지우지는 않는 상태에 붙은 이름이고, 그 상태로 넘어가기 직전에 찍은 열 장이 글에 함께 올라왔다.
01눈팅만 하던 사람
글쓴이는 이 게시판에 글을 자주 올리던 사람이 아니다. 꽤나 정든 도시라 눈팅만 하던 여기 카페에도 올려 본다고 그는 첫 문단에 적었다. 아카이브를 훑어보면 이 글이 그가 이 게시판에 올린 첫 글이다. 도시를 닫기로 정한 날이 도시를 처음 내보인 날이었다.
콘셉트는 두 가지를 겹친 것이었다. 작년 말부터 조금씩 만들던 일본풍 교통 인프라, 그러니까 일본식 철도 노선과 고가 도시고속도로 위에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건축물을 얹었다.
요즘의 쓰임새도 함께 적혀 있다. 자재 제작에 힘을 쏟고 있어서 이 도시는 거의 자재 미리보기와 스크린샷 촬영용으로만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02구글어스인 줄 알았다는 사진
지면에 실은 사진은 그 겹침이 잘 보이는 한 장이다. 높은 곳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본 화면 한가운데 원형 광장이 있고, 광장 복판에 조각을 얹은 기념주가 서 있다. 광장을 둘러싼 것은 만사르 지붕을 얹은 6층 석조 건물이고, 거기서 방사상으로 뻗은 길마다 같은 높이의 건물이 이어진다.
오른쪽 아래에는 초록으로 산화한 돔 하나와 유리 지붕을 얹은 아케이드가 보인다. 길가에는 붉은 차양이 줄지어 있고 그 앞으로 차가 늘어서 있는데, 지붕 색과 창의 간격까지 한 동씩 다르게 들어가 있다.
첫 댓글은 감상이 아니라 착각이었다. 구글어스 사진을 올려놓고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고 한 사람이 적었다. 그 아래로 디테일이 좋다는 말과 그저 감탄만 나온다는 말이 이어졌고, 시네마틱을 꼭 찍어 보고 싶다는 요청도 하나 붙었다.
03도시 반토막
봉인의 이유는 글에 그대로 적혀 있다.
첫째는 지형이었다. 만들고자 하는 것들에 비해 지형 자체가 너무 좁았다. 둘째는 누적이었다. 소품을 놓고 또 놓는 사이 도로망이 너무 난잡해져서 슬슬 한계가 보였다고 그는 적었다.
결정적인 것은 세 번째였다. 고속도로망과 철도망을 건드리고 싶은데 그러려면 도시 반토막을 부숴야 한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라고 그는 썼다.
도시를 오래 만들면 나중에 놓은 것이 먼저 놓은 것을 붙든다. 초기에 깐 도로망 위로 건물과 소품이 얹히고 나면 그 도로를 다시 건드리는 비용이 도시 절반으로 불어난다. 새 도시로 넘어간다는 것은 그 비용을 치르지 않기로 한 선택이다.
이걸 하려면 도시 반토막을 부숴야 한다는 게
제일 큰 문제였습니다.
04가져갈 것 하나
봉인하는 도시에서 하나만 챙겨 나왔다. 만들다 만 바로크식 궁전이다. 이건 새 도시로 가져갈 예정이라고 사진 아래에 적혀 있다.
이후 그가 올린 글들이 첫 문단의 말과 맞아떨어진다. 6월 말에는 며칠 전 만든 모형 셋의 표면 작업을 끝냈다는 글을 올리며 셋 다 같은 표면을 공유하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고, 이번 주 안에 완성할 수 있겠다고 적었다. 표면에 입힐 사진은 어디서 가져오느냐는 물음에는 보통 거리 사진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자료 사이트에서 가져오고 때로는 직접 그린다고 답했다.
7월에는 파리 관련 자재만 만들다가 한 번쯤 다른 도전을 해 보고 싶었다며 종로에 있는 한국 최초의 고층 건물을 모형으로 만들어 올렸다. 벌여 놓은 게 많아 언제 완성될지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모형만 해 놓은 게 산더미라고 덧붙였다.
도시는 닫혔고 작업은 옮겨 갔다.
051년 동안의 변화

보름 전에는 성격이 정반대인 글이 있었다. 가입 1주년 기념, 1년 동안의 변화.
정확히 1년 전인 2019년 5월 30일, 같은 사람이 이 게시판에 첫 글을 올렸다. 입문자라고 자기를 소개하며 유튜브를 보면서 눈만 높아지고 손은 못 따라간다고, 나중에 3차원 모형 도구도 배워 보겠다고 적은 여섯 장짜리 글이었다. 댓글에는 전혀 초보 같지 않다는 말과 겸손한 고인물이라는 말이 붙었고, 원래 초보라고 할수록 고인물인 법이라는 말도 있었다.
1년 뒤의 글은 열일곱 장이었다. 플레이 시간 396시간 동안의 변화라는 설명과 함께 복합역사와 지남역과 차량기지와 서울역과 경사진 학교와 공항과 만들다 만 두 번째 서울역이 차례로 놓이고, 마지막에 요즘이 온다. 공항 사진 아래에는 완성 못 해서 아쉽다는 말이 붙어 있고, 전체를 다 늘어놓은 뒤에는 이렇게 보니까 별로 안 만들었다는 문장이 끝을 맺지 못한 채 끊겨 있다.
자기 소개는 1년 전과 같았다. 괄호 안에 초보에서 초보라고 적었다.
댓글에는 축하 대신 반박이 달렸다. 플레이 시간과 실력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이 먼저 왔고, 도로의 연금술사라는 호칭에는 연금술사라뇨 아직 초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공항이 멋있다는 말에는 그것도 완성 못 해서 아쉽다는 답이 다시 붙었다. 늘 본받고 싶은 실력이라고 적은 사람에게는, 본받다뇨 저야말로 그쪽 도시를 잘 보고 있다는 답이 갔다. 그렇게 적은 사람은 이번 호 첫 기사에서 제목마다 노래 이름을 달던 그 사람이다.
06상반기의 끝
같은 달에 한 사람은 도시를 닫았고 한 사람은 1년을 돌아봤다. 닫은 사람은 이유를 셋으로 적었고, 돌아본 사람은 1년 전과 똑같이 아직 초보라고 적었다.
2020년 6월로 이 매거진이 다룰 수 있는 기록이 일단 멈춘다. 아카이브에 반입된 자료가 여기까지다.
반년 동안 이 게시판에서는 도로 체계가 바뀌었고, 경복궁이 세 개나 지어졌으며 그중 하나는 사진으로만 남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상의 나라에서는 네 번째 총선거가 치러졌고, 마산에는 공항과 대학이 한 주 사이에 생겼으며, 누군가는 게시글 제목에 노래 같은 문장을 붙이며 여름을 맞았다.
다음 반년의 기록이 반입되면 확인할 것이 몇 가지 있다. 봉인된 도시가 다시 열렸는지, 신서울에 몇 개의 동이 더 생겼는지, 백색도시가 마침내 어떤 이름을 얻었는지, 그리고 이번 호의 이름 없는 도시에는 어떤 이름이 붙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