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홍콩, 네온사인 정글

사이버펑크를 짓던 사람이 이번에는 실재하는 구역을 골랐다. 몽콕에서 시작해 세로로 매달린 한자 간판과 패방 너머의 골목시장을 세우고, 빌딩 사이에는 미개발 주거지를 일부러 남겼다. 2077년을 배경으로 삼은 홍콩의 봄.

네온사인 정글
네온사인 정글© 검은여우

이 사람의 도시는 늘 빽빽했다. 2019년 여름의 나이트시티는 맨땅 위에 네온을 켠 사이버펑크였고, 가을과 겨울의 레온하르트는 눈 덮인 산비탈을 층층이 채운 성채였다. 2020년 봄에 시작한 도시도 여전히 사이버펑크인데, 이번에는 무대가 실재하는 곳으로 정해졌다.

도시의 이름은 네오홍콩이고, 배경 연도는 2077년이다. 연재 제목에는 사이버펑크 시티라는 말이 매번 붙어 있다.

01몽콕에서 시작하다

3월 1일에 올라온 첫 글은 완성작이 아니라 평가 요청이었다. 홍콩 왕자오(旺角) 도심이라는 제목 아래 사진 두 장이 붙었고, 소품을 놓기 전이니 분위기만 봐 달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가 물은 것은 하나였다. 공각기동대 같은 느낌이 나느냐는 물음이었다.

같은 글에 작업의 어려움도 함께 적혀 있다. 홍콩 건물이 대부분 주상복합 형태라 만들기가 정말 힘들고, 생각보다 작업을 너무 쉽게 봤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한 줄이 더 붙어 있다. 어두운 분위기에 맞춰 칙칙하게 가려고 하는데, 작업하다 보면 그 분위기 때문에 손을 놓게 되고 급 우울해진다는 것.

왕자오는 몽콕의 광둥어 표기다. 한 달 뒤 연재 1화를 올리면서 그는 첫 구역을 몽콕으로 잡았다고 밝혔다. 사이버펑크를 짓되 어느 도시의 어느 동네인지를 먼저 못 박아 두는 방식이었다.

02세로로 매달린 간판

홍콩의 거리를 홍콩답게 만드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간판이 걸리는 방향이다. 대부분의 도시에서 간판은 건물 정면에 가로로 붙지만, 홍콩에서는 벽에서 거리 쪽으로 튀어나와 세로로 매달린다. 정면에 붙이면 그 건물 앞을 지날 때만 보이고 거리로 내밀면 블록 전체에서 보이니, 결국 모두가 내밀었고 거리 위로 간판의 층이 생겼다.

히어로 사진에 그 층이 그대로 나와 있다. 幸福樓酒家가 왼쪽 벽을 따라 아래로 흐르고, 맞은편에는 六福珠寶와 重慶森林이 나란히 켜져 있으며, 그 아래로 永安五金有限公司와 英皇珠寶와 新華旅遊의 간판이 겹쳐 붙는다. 길 위에는 검은 승합차와 노란 스포츠카가 서 있고, 사람들은 그 간판 아래를 지난다.

3월 23일, 소품 작업을 하다 멋져서 한 장 찍었다며 야경 한 장이 올라왔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말이 붙어 있었고, 이미 다 온 것 같다는 댓글이 달렸다. 그의 답은 짧았다. 저런 곳이 열 군데가 넘는데 이제 네 군데를 했다는 것.

같은 글에는 이 도시의 출처도 적혀 있다. 어떻게 이렇게 홍콩 맛이 나느냐는 물음에, 설날 전날 홍콩에 다녀와 느낌을 받아 왔고 이틀 동안 도시만 돌아다닌 기억이 있다고 그는 답했다. 그러자 홍콩에서 찍은 사진이었냐며, 이제 게임 스크린샷을 올릴 차례라는 농담이 뒤따랐다.

모두가 간판을 거리로 내밀었고,
결국 거리 위로 간판의 층이 생겼다.

03패방과 골목시장

골목시장
골목시장© 검은여우

거리 한가운데에는 기와를 얹은 패방이 서 있다. 붉은 기둥에 초록과 금빛으로 단청을 두른 문이고, 그 아래를 지나면 차양이 이어진 골목시장이 나온다. 좌판 옆에 나무통과 짐수레가 쌓여 있고, 붉고 흰 줄무늬 천막이 하나 펴져 있다.

3월 31일에 올라온 골목시장 사진에는 사원 공원도 함께 있었다. 실제 몽콕 야시장 같다는 댓글이 달리자 그는 지금 만드는 구역이 몽콕이 맞다고 답했고, 사원도 실재하는 곳이냐는 물음에는 원래 그 자리가 그냥 정원 공원이었는데 허전해서 만들어 봤다고 했다.

그 아래로 긴 문답이 이어졌다. 중국 정원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사이버펑크여도 중국 정원은 저런 느낌일 것 같다는 말에, 미래에는 다국적 문화가 형성될 듯해서 섞어 봤다는 답이 달렸다. 2077년이면 나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농담에는 조화나 조목이겠느냐는 되물음이 붙었고, 사원 입구의 홀로그램이 안 어울리면서도 너무 현실적이라는 감상으로 문답이 끝났다.

패방은 문이지만 막지 않는다. 지난 겨울호에서 우리는 판타지 도시의 백색관문을 두고 관문이 막는 장치가 아니라 보여 주는 장치라고 적었다. 네오홍콩의 패방도 큰길과 골목 사이에 서서 여기서부터 다른 구역이라고 알려 준다.

04중경삼림

간판 하나가 유독 눈에 띈다. 重慶森林, 그 아래 영문으로 CHUNGKING EXPRESS. 홍콩의 좁은 아파트와 편의점과 스쳐 가는 사람들을 담은 1994년 영화의 제목이고, 이 도시를 지은 사람은 그것을 네온으로 만들어 거리에 걸었다.

실제 홍콩에 그런 간판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건물을 아무리 정확히 옮겨도 분위기는 따라오지 않는데, 이런 인용 하나가 분위기를 단번에 불러온다. 아래층 간판들이 실제 상호를 그대로 옮겨 온 것과 달리 이 간판만 출처가 다르다는 점이 오히려 눈에 걸린다.

05빌딩 사이에 남겨 둔 것

레이아웃 완성
레이아웃 완성© 검은여우

4월 16일의 연재 3화 제목은 미개발 주거지였다. 빌딩들 사이에 자리 잡은 구역을 만들었고, 주변과의 빈부격차를 최대한 살려 거대한 빌딩 사이에서 시민들이 생존하는 콘셉트를 잡았다고 그는 적었다. 앞으로 이런 암울한 분위기가 많이 나올 것이라는 예고도 함께였다.

그리고 그 콘셉트의 이유를 길게 덧붙였다. 미래에 꼭 저런 일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아니고, 과거나 현재에 문제가 되는 빈부격차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런 배경이 나올 것 같아서, 이런 도시 모습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었다는 것. 화려한 빛과 조명이 있으면 주변에는 어둠이 있으니 그곳이 여기가 아니겠느냐고 그는 적었다.

사이버펑크는 대개 장르의 외형으로 소비된다. 네온과 비와 홀로그램 광고. 네오홍콩의 3화는 그 외형을 벗겨 낸 자리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작성자가 직접 적어 둔 드문 사례다.

이후의 연재도 같은 방향으로 갔다. 4화는 야우마테이의 실재하는 주차장을 옮긴 것으로, 고가도로가 건물을 관통하는 설계가 마음에 들어 가져왔으나 맞는 자재가 없어 손으로 전부 만들었다. 5화의 이름은 메가빌딩이었고, 디스토피아 감성을 살리다 보니 저 안에 착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 붙었다.

06초파일 준비

4월 말, 연재와 별개로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곧 다가올 초파일을 네오홍콩도 준비 중이라는 글이었다. 사이버펑크 테마의 사원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는 말과 함께였다.

전통 건물이 화려하다는 감상에 그는 중화풍 전통 건물이 얼마 없어 직접 만들게 생겼다고 답했다. 더 보고 싶다는 요청에는 동양풍 건물을 한번 다 만들어 보겠다는 답이 돌아갔다. 사원은 세웠는데 석가불상을 어디에 놓을지는 아직 고민이라는 말이 그 아래 붙어 있다.

2077년의 홍콩을 짓겠다고 시작한 도시가 봄이 끝날 무렵 부처님오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같은 사람의 다른 작업은 이번 호 Works 섹션에 있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간판 문구(幸福樓酒家·六福珠寶·重慶森林/CHUNGKING EXPRESS·永安五金有限公司·英皇珠寶·新華旅遊)와 패방·골목시장 묘사는 hero 및 골목 사진에서 확인한 범위
  • 홍콩 간판이 세로로 내밀리는 이유(가시성 경쟁)는 편집부 배경 서술
  • 《중경삼림》(1994, 왕가위) 설명은 편집부 해설. 원문은 간판만 세움
  • '왕자오는 몽콕의 광둥어 표기'는 편집부 보충. 원문은 두 표기를 각각 썼을 뿐 관계를 밝히지 않음
  • '사이버펑크는 대개 장르의 외형으로 소비된다'는 편집부 논평
  • 계보: 2019 여름호 [나이트시티] · 가을호 [레온하르트] · 겨울호 [이름 없는 백색도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