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시를 신청합니다
이번 호부터 마인크래프트 게시판을 함께 다룬다. 첫 기사는 도시 등록이다. 좌표를 적고, 800블록 안에 도로망을 그리고, 이미 지어 둔 건물을 지도 화면으로 증명하는, 신청서로 시작하는 도시들.
이 매거진은 여섯 호 동안 한 가지 게임의 도시만 다뤄 왔다. 혼자 맵을 열고 혼자 도로를 깔고 혼자 완성해 사진을 올리는 도시들이었으므로, 도시 이야기는 대체로 한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번 호부터 다른 게시판을 함께 본다. 마인크래프트 서버의 도시들인데, 이쪽은 시작하는 방식부터 다르다. 땅을 고르고 삽을 들기 전에 먼저 문서를 낸다.
01신청서
양식은 정해져 있다. 도시 이름, 신청자의 닉네임, 신청 위치를 X와 Z 좌표로 기재하고 스크린샷 첨부, 개발 계획은 가로와 세로가 각각 800블록을 넘지 않는 선에서 상세 도로망과 구역 계획, 그리고 도시 등록 조건 충족 여부. 여섯 칸을 채워야 접수가 된다.
3월에 접수된 한 신청서는 이렇게 채워져 있었다. 위치는 1240, -6824. 개발 계획은 해안도로를 따라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고 내륙에 시청 등 행정업무시설을 배치하며, 박물관과 미술관 같은 문화시설을 다수 두어 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보행자를 우선하는 도로 설계, 자연친화적 도로 조성이라는 두 줄이 그 뒤에 붙었다.
같은 달 접수된 다른 신청서의 개발 계획은 세 줄로 끝난다. 도시 중앙에 공원 건설, 강 근처에 오피스 건설, 공원 옆에 시청 건설. 양식이 같아도 채우는 밀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 차이가 그대로 남는다.
가로와 세로 길이가 각각 800블록을 넘지 않는 선에서
상세 도로망 및 구역 계획
02조건을 증명하는 사진

여섯 칸 가운데 손이 가장 많이 가는 것은 마지막 칸이다. 오천시 신청서의 그 자리에는 문장 대신 숫자가 열세 줄 늘어서 있다. Y 110, Y 115, Y 115, Y 120, Y 130. 신청자가 이미 서버 어딘가에 세워 둔 건물들의 높이 좌표다.
조건이 무엇인지는 한 해 앞선 신청서에 적혀 있다. 주택 여섯 동과 오피스 네 동을 이미 지었다는 것이 그때의 기준이었다. 자기 땅을 받기 전에 남의 도시 안에서 먼저 열 채를 지어야 하니, 이곳의 도시는 실적으로 자격을 얻고 시작한다.
증명하는 방법까지 정해져 있었다. 등록을 맡은 사람은 댓글로 요구했다. 조건에 충족하는 건축물의 위치를 입체 지도 화면으로 하나씩 올려 달라고. 이 기사에 실은 사진 두 장이 그 화면이고, 초록 벌판 위에 오피스 몇 채가 어색하게 모여 서 있는 풍경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도시가 아니라 증거로 찍힌 사진이다.
03기둥이 필요합니다
신청이 언제나 한 번에 통과하는 것은 아니다. 2019년 초의 한 신청서 아래에는 요구가 줄줄이 달렸다. 가로 세로가 각각 300블록을 넘지 않는지 표기해 달라는 요구, 광역도로는 교통법상 허가 대상이 아니니 참고하라는 안내가 차례로 붙었다.
그다음에 온 것은 건축에 대한 지적이었다. 기둥이 필요하고, 건축물이 주변 건물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한 것 같다고 그는 적었다. 그러고는 이유를 덧붙였다. 도시 등록 제도는 넓은 부지를 통째로 재량권으로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성의 있는 건축이 필요하다고.
신청자는 사진 두 장을 다시 올린 뒤 여섯 글자를 남겼다. 수정했스비낟. 그 뒤로 이 제도의 상한은 300블록에서 800블록으로 넓어졌지만, 심사가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는 점은 그대로 남았다.
04이름을 적는 칸
3월의 또 다른 신청서는 도시 이름 칸을 이렇게 채웠다. 利化. 이로울 이, 될 화. 이화, 세상을 이롭게 하다. 로마자로는 EHWA. 그리고 자유 기재란에는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세상의 중심에서 외치다, 이화자치시.
로마자 표기를 두고 댓글에서 물음이 나왔다. 그런데 왜 영문 표기가 EHWA냐는 것이었다. 답은 짧았다. 엘을 넣기 싫어서라고. 바로 앞선 댓글에서 배꽃 이름의 여자대학이 아니었냐는 놀림이 지나간 참이었으니, 철자 하나를 덜어 낸 이유가 그 농담과 정확히 맞물린다.
이름 짓기는 다른 신청서에서도 이어진다. 오천시의 자유 기재란은 Premium을 바라보다, Ocheon이었고, 댓글에는 케이를 하나 더 끼워 넣어 Okcheon으로 해 보라는 제안과 천까지 Ok라는 말장난이 나란히 달렸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지방자치단체의 표어를 도시에 그대로 옮겨 심은 사람을 다뤘다. 인자수성 수성구, 시민과 함께 새로운 대전 같은 문구들이었는데, 여기서는 옮겨 오는 대신 직접 짓는다. 이름을 적는 칸이 있으니 이름을 짓고, 자유 기재란이 비어 있으니 표어를 만들어 채운다.
05계획은 달라진다

같은 신청자가 함께 올린 장기 계획도는 손으로 그린 지도다. 초록 지형 위에 노란 선과 흰 선이 격자로 그어져 있고, 범례에는 노란 선이 대형 도로, 흰 선이 일반 도로라고 적혀 있다. 칸마다 용도가 붙는다. 오피스단지, 박물관 등 문화시설, 아파트 단지, 대학교, 시립공원, 대형마트와 상업지구, 그리고 바다에 닿은 아래쪽 줄에는 호텔단지와 해변특색상업지구. 오른쪽 위에는 화살표 셋과 함께 개발 방향이 표시되어 있다.
도로망을 짜 달라는 부탁이 댓글에서 오간 것도 이 신청서다. 도로망은 다른 사람이 짜 주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신청자가 짜 주시면 좋겠다고 세 번 조르고, 그러면 더 안 짜 주지 않겠느냐는 놀림이 끼어든다. 계획도 한 장이 이미 여러 사람의 일이 되어 있다.
오래 지어 본 사람의 조언은 오천시 신청서 아래에 있다. 도시를 개발하다 보면 처음 계획한 것과는 은근히 달라진다고, 자기도 예전에 만든 두 도시가 계획과 많이 달랐다고 그는 적었다. 신청자가 흑흑이라고 답하자 조언은 그대로 참견으로 이어져서, 강변에 자전거 도로를 놓으라는 제안과 결국엔 처음 그곳으로 돌아온다는 말이 차례로 붙었다.
06허가는 댓글로 내려온다
들안자치시 신청서 아래에서는 짧은 문답이 오갔다. 기존 건물을 청라시에 옮겨 두었느냐는 확인에 네 옮겼다는 답이 달렸고, 그다음 줄이 허가였다. 승인되었습니다, 20.03.18 오후 9시. 도장이 찍힌 문서가 아니라 날짜와 시각이 적힌 댓글 한 줄이 이 도시의 인가장이다.
허가 아래로는 이웃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옆 도시를 짓던 사람은 청해시는 남아 있는데 이사 간 기분이라고 적었고, 청해 북쪽이니 북청은 어떠냐며 이름까지 하나 지어 주었다가 숙청 같다는 말장난을 돌려받았다. 같은 세계 안에서 옆자리가 정해진다는 것은 이런 일이다.
허가 다음 날 이 도시는 첫 삽을 떴고, 그 이틀 뒤에는 자기 이름이 실린 신문을 읽었다. 서버 안에 신문이 있기 때문인데, 그 이야기는 이번 호 다음 기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