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N, 블록 안의 신문

'정직을 써 내려갑니다, BLOCK NEWS NETWORK.' 서버 안에 신문사가 있고 헤드라인과 시민 인터뷰와 광고가 있다. 독자가 놀리자 해명이 붙고, 정정은 댓글에서 이루어지는 신문.

약국 앞 대기줄
약국 앞 대기줄© 다인

마인크래프트 서버에는 신문이 있다. 이름은 BNN, 블록 뉴스 네트워크이고, 기사는 언제나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정직을 써 내려갑니다, BLOCK NEWS NETWORK.

발행처의 주소까지 적혀 있다. 이화시 00구 00동 이화대로 15. 구와 동은 아직 정하지 못해 동그라미 넷으로 비워 두었고, 그 아래에는 시민 여러분의 많은 제보를 바란다는 한 줄이 붙는다.

01헤드라인의 목록

동부선 개통
동부선 개통© 다인

봄에 이 신문이 낸 헤드라인을 늘어놓으면 한 도시의 사정이 보인다. 은산철도 전 노선 철거 후 재개발 가능성, 동부선 광역철도 마침내 개통, 용연신도시 신축 아름채 일조권 침해 논란, 들안자치시 오늘 첫 삽 떴다, 오천시청 호화청사 논란에 현빈 시장 어이없다, PE역 또다시 철거 완공은 언제쯤, 해강남도청 하월시 폐지 이후 또다시 원점으로.

철도 노선의 철거와 개통, 신도시의 일조권 분쟁, 청사 예산 논란, 도청 소재지 문제. 실제 지역 언론이 다루는 의제와 정확히 겹친다.

기사에는 사정도 적힌다. 동부선 개통 기사는 두 역의 공사가 모두 끝난 상태는 아니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이 철도 회사의 입장이라고 썼고, 철거 기사는 두 문장으로 끝난 뒤 본 기사는 속보이니 자세한 내용은 추후 기사에서 확인하라는 안내를 달았다. 헤드라인이 다루는 사건은 모두 서버 안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02시민 A씨

형식도 갖춰져 있다. 사진마다 ▲ 표시와 함께 설명이 붙고, 본문에는 시민 인터뷰가 따옴표로 인용된다. 3월의 한 기사에 실린 인터뷰는 이랬다. 마스크를 사려고 8시부터 나와서 1시간 동안 줄을 서고 있어요, 언제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발언한 사람은 시민 A씨다. 실제로는 그 자리에 서 있던 게임 캐릭터였을 텐데, 기사는 그 캐릭터에게 이름 대신 A씨라는 익명을 주고 따옴표를 붙여 발언을 옮긴다.

시민 A씨는 다시 등장한다. 오천시청 호화청사 논란 기사에서 A씨는 청사라는 것은 규모보다도 활용성에 주목해야 한다며, 앞으로 오천시가 시청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집중하겠다고 말한다. 시장의 반박과 균형을 맞추는 목소리다.

그런데 그 기사 댓글에서 기자가 한 줄을 흘렸다. 사실 저 시민 A씨는 오천시 관계자라는. 익명 취재원을 세워 놓고 그 정체를 스스로 댓글에서 밝히는 신문이니, 지면의 규칙과 댓글의 규칙이 서로 다르게 굴러간다.

정직을 써 내려갑니다,
BLOCK NEWS NETWORK.

03광고가 붙었다

초기 기사의 끝에는 광고 문의처가 적혀 있었다. 신문사 이름을 딴 전자우편 주소였는데, 물론 그런 주소는 없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기사 하단에 진짜 광고가 붙기 시작했다.

붙은 광고들은 이렇다. 구스타브 호텔 함학, 아리울시 니 얼굴 마라탕, 디아너 월드와이드, 두도 스테이 성죽루 시그니처컬렉션, 헬시온 인터내셔널 들안. 모두 서버 안 도시들의 업소이고, 도시를 짓는 사람들이 자기 건물에 붙인 상호다.

접수 창구는 결국 댓글이 되었다. 광고 문의라고 적은 댓글이 달리면 광고는 댓글로 보내 달라는 답이 달리고, 며칠 뒤 다른 기사 아래에 광고 넣습니다라는 한 줄이 올라온다. 광고가 붙기 시작한 것을 알아본 독자들의 인사도 함께 달렸다. 광고도 받기 시작했네요, 광고가 붙었군요.

광고가 붙자 광고를 둘러싼 사정도 생겼다. 호텔 광고가 실린 도시의 시장은 자기도 몰랐던 호텔 광고라고 적었고, 다른 독자는 그 호텔에 눈길이 간다며 빨리 그 도시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직 서지 않은 건물이 신문에 먼저 광고를 냈다.

04무상 광고 논란

3월 중순의 일조권 기사는 이 신문이 겪은 가장 곤란한 사건을 남겼다. 평소 햇빛이 잘 들어 인기이던 다세대주택 앞에 최대 35층 규모의 신축 아파트가 올라가면서 해 드는 시간이 한 시간씩 줄었다는 기사였다. 시공사 쪽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업이라고 일단락했고, 주민 일동은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했으며, 신도시 건설과는 일조권 침해가 예상된다고 확인했다.

기사 끝에는 해명이 붙어 있다. 본 기사는 해당 아파트 및 시공사와 관련해 광고성을 띠는 기사가 아니고 오로지 피해를 알리기 위해 작성된 기사이며, 부탁을 받은 사실 또한 일절 없다고.

해명이 왜 붙었는지는 댓글에 있다. 아파트가 저렇게 멋지게 보이면 오히려 돈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먼저 나왔고, 다른 독자는 무상 광고라며 아름다운 주거 문화를 이끈다는 분양 문구를 즉석에서 지어 붙였다. 그 뒤에는 아파트가 문제라는 기사인데 당연히 그 아파트한테 부탁받은 기사가 아니지 않느냐는 되물음까지 달렸다.

기자의 답은 뒤늦게 나왔다. 이분들이 오히려 아파트가 너무 예뻐 보여서 무상 광고를 해 줬다고 놀리길래 그래서 해명을 추가했다는 것이었다. 독자가 기사를 놀리자 신문이 해명을 붙였고, 그 해명이 다시 놀림거리가 되었다. 이 신문에 언론중재 절차가 있을 리 없으니 정정도 항의도 댓글에서 이루어진다.

05바깥이 안으로 들어올 때

3월의 마스크 기사가 특별한 것은 소재 때문이다.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던 일이 블록 안으로 들어왔다.

기사에 붙은 사진 설명은 이렇다. 하월시 소재의 한 약국에 이른 아침부터 시민들이 공적 마스크 대기줄을 서고 있으며, 지자체의 명령에 따라 그 약국에는 공익 요원이 배치되었다고. 이 기사의 첫 사진이 그 줄이다. 회색과 검정 블록으로 지은 상가 앞, 나무 울타리를 따라 캐릭터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고 줄은 화면 밖까지 이어진다.

본문은 이렇게 적었다. 전 세계로 확산되는 상황의 불안감에 블록의 시민들도 거리로 나섰다고. 그리고 한 줄을 덧붙였다. 아직 블록에는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시민들 사이의 공포는 점점 커지고 있다고.

게임 안에는 질병이 없고 캐릭터는 아프지 않는다. 그런데 기사는 없다고 하지 않고 아직 없다고 적었다. 가상의 세계가 현실을 흉내 내는 방법은 여럿인데, 건물을 옮겨 짓는 방법이 있고 제도를 만드는 방법이 있으며, 이 신문은 세 번째를 골랐다.

같은 계절 시티즈 쪽 게시판에서는 나가지 못한 사람들이 집에서 도시를 짓고 있었다. 이 매거진의 다른 기사에서 다룬 그 이야기와 이 신문의 기사는 같은 계절의 두 얼굴이다. 한쪽은 도시를 짓는 것으로 그 시간을 보냈고, 다른 한쪽은 그 시간을 기사로 썼다.

06서로에 대해 쓰는 공동체

들안 첫 삽
들안 첫 삽© 다인

들안자치시가 첫 건물을 세운 날의 기사는 이 신문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 기사는 새 도시의 위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청해시 위쪽에 자리하며, 해강북도의 온주시·용연신도시·함학시, 해강남도의 하월·망원·신포시, 그리고 같은 청산도의 청해·오천시 및 청라특별시로의 접근성이 뛰어나다고.

도가 여럿 있고 각 도에 시들이 있으며 특별시도 있다. 서버 안에 나라 하나만큼의 지리가 만들어져 있고, 신문은 새 도시를 소개하면서 그 지리 안에서의 자리를 짚는다. 실제 지역 뉴스가 하는 일과 똑같다.

정정도 바로 들어왔다. 첫 삽이 아니라 첫 블록 아니냐는 댓글에 기자가 그러네요 하고 받았다. 삽으로 흙을 뜨는 착공식이 없는 세계이니 관용구부터 어긋난다.

제보와 재촉도 댓글에서 오간다. 우리 시 기사는 언제 나오느냐는 물음에 올라왔다는 답이 달리고, 오늘 뉴스는 없느냐는 물음에는 기사를 좀 많이 뽑아 봐야겠다는 답이 달린다. 이 신문의 독자는 자기가 만든 사건을 읽는다.

4월의 도청 기사는 그 구조가 어디까지 가는지 보여 준다. 도청 부지로 정해졌던 도시가 폐지되면서 투표를 다시 했는데, 두 도시가 접전을 벌이다 종료 30초 전에 15표가 16표를 따라잡아 동점이 나왔다. 투표가 끝난 직후 두 도시의 시장은 아직 공사 중인 옆 도의 도청 마당에서 회담을 열었고, 경계에 도청 신도시를 세우는 방안은 반대하며 분청이 바람직하겠다는 데 뜻을 모았다. 기사는 마지막 줄에 다음 일정을 예고한다. 2차 회담은 12일 오후 해강남도의회에서 열린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헤드라인·인터뷰·해명문·광고·지리 서술은 원문 그대로
  • 감염병 관련 서술은 원문 기사의 표현 범위 안에서만 옮겼다. 원문 본문에 있는 질병명·국가별 확진자 수·기구 선언 등은 지면에 옮기지 않았고, 편집부가 실제 상황을 추가로 설명하지도 않았다
  • '없다고 하지 않고 아직 없다고 적었다', '지면의 규칙과 댓글의 규칙이 다르게 굴러간다', '독자는 자기가 만든 사건을 읽는다'는 편집부 논평
  • 시민 A씨가 게임 캐릭터였을 것이라는 서술은 편집부 추정이며, 오천시청 기사의 A씨에 대해서는 작성자 본인이 댓글에서 관계자라고 밝혔다
  • 광고 문의처(전자우편 주소)는 실재하지 않는 가상 주소이므로 지면에 옮기지 않았다
  • 05절의 대기줄 사진 묘사는 게재 이미지를 편집부가 직접 판독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