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 두기, 대구

한 사람의 게시글은 스크린샷 설명이 아니라 기사문으로 쓰이고, 사진에는 시 로고와 서명이 박힌다. 그 형식 위에 그해 봄의 표어가 하나 얹혔다. 게임 화면과 진짜 사진을 섞어 놓는 장치까지, 도시를 옮겨 짓는 한 방식을 따라간다.

표어가 얹힌 동대구 번화가
표어가 얹힌 동대구 번화가© 한양

도시를 옮겨 짓는 사람은 보통 건물과 도로를 옮긴다. 대구를 짓던 이 사람은 도시가 자기를 설명하는 말투까지 함께 옮겨 왔다.

01현장기자입니다

그의 게시글은 스크린샷 설명이라기보다 기사문에 가깝다. 4월 마지막 날 올린 서울 영등포역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황금연휴가 시작하는 오늘, 서울 영등포역에 인파가 몰려 있다고. 전국 각지로 귀향길에 오르는 국민들이 오늘 아침 이미 환승을 거쳐 여기서 기차를 타게 되었다는 문장이 뒤를 잇고, 글은 영등포역 현장기자라는 서명으로 끝난다.

같은 달 도시계획 게시판에 올린 글은 아예 한 줄짜리 단신이었다. 대구 도심에 있는 한 전자회사 건물이 쇼핑몰로 변신할 예정이라는 문장 하나가 사진 일곱 장 위에 놓여 있다.

형식은 사진에도 있다. 지면에 실은 두 번째 화면 왼쪽 아래에는 시 로고와 정부 상징이 나란히 박혀 있고, 오른쪽 아래에는 작성자의 서명이 들어가 있다. 관광 홍보물이나 시정 자료가 쓰는 판형을 그대로 따랐다.

02서울과 부산과 대구

서울VS부산VS대구 중 서울
서울VS부산VS대구 중 서울© 한양

4월 17일 그는 서울VS부산VS대구라는 제목으로 사진 아홉 장을 올렸다. 본문은 네 줄이었다. 서울. 부산. 대구. 끝.

지면에 실은 화면은 그중 서울이다. 고층 업무 건물에 둘러싸인 너른 광장을 비스듬히 내려다본 구도인데, 광장 한가운데 화단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글자와 그 아래 로마자가 심겨 있고 주황색 붓 자국이 두 줄 사이를 가로지른다. 광장 둘레로는 붉게 칠한 버스 차로가 돌고 횡단보도와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이 그 바깥을 채운다.

댓글은 도시보다 재료를 봤다. 자기가 만든 자재가 보여 반갑다는 사람에게 그는 그 자재 덕분에 여기까지 만들 수 있었다고 답했다. 도봉과 강북이 뒤바뀐 것 같다는 지적에는 짧게 인정했고, 한국 도시를 많이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인사에는 더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03중간에 함정이 있네요

이 사람의 화면에는 장치가 하나 더 있다.

4월 14일 동대구의 높은 하늘이라는 글에 사진 여섯 장이 올라왔을 때, 첫 댓글은 중간에 함정이 있다는 말이었다. 게임 화면인 줄 알고 그냥 넘어갈 뻔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은 게임이 이렇게까지 발전했구나를 5초 동안 생각했다고 적었다. 몰래 넣었는데 역시 드러났다는 답이 돌아왔다. 여섯 장 가운데 한 장이 게임이 아니었다.

같은 장치가 아흐레 뒤에도 있었다. 마지막 컷까지 게임인 줄 알았다는 말과, 작품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지막 사진도 게임인 줄 알았다는 말이 나란히 달렸고 그는 진짜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답했다. 재현이 잘되면 진짜 사진 쪽이 게임처럼 보인다.

04표어가 걸린 화면

그 아흐레 뒤의 글이 4월 23일 자다. 제목에 그해 봄의 문장이 들어와 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대구의 힘입니다.

지면에 실은 첫 화면이 그 글의 사진이다. 간판이 벽면을 위아래로 가득 덮은 번화가 교차로를 높은 데서 내려다본 구도인데, 화면 왼쪽 절반을 커다란 옥외 광고판 하나가 차지하고 거기에 붉고 푸르고 주황인 글씨로 표어가 적혀 있다. 왼쪽 위 모서리에는 태극기가, 광고판 오른쪽 위에는 작성자의 둥근 로고가 얹혀 있다. 건너편 건물 옥상에는 도시 이름이 붓글씨로 크게 쓰여 있고, 아래 노면에는 천천히라는 글자가 세 번 반복된다.

글씨를 어떻게 썼느냐는 물음에 그는 사진 편집 도구로 얹었다고 답했다. 표어는 게임 안에 세운 구조물이 아니라 다 찍은 화면 위에 올린 이미지였다.

본문은 짧았다. 번화가 장사가 식었지만 모든 시민이 거리 두기를 지켜서 오래가지 않도록, 우리 대구가 꼭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그리고 마지막 세 줄이 이렇게 이어진다. 사회적 거리 두기, 250만 대구 시민의 힘. 인간 사랑. 대구 사랑.

사회적 거리 두기!
250만 대구 시민의 힘!

댓글은 대부분 같은 말이었다. 대구 화이팅, 우리 모두 화이팅. 화이팅 하나에 그는 화이팅으로 답했고, 고수님이 댓글을 남겨 줘서 영광이라는 인사도 남겼다. 그러다 중간에 자기 댓글을 하나 끼워 넣었다. 여러분이 다 화이팅 하고 있지만 제 작품에 대해서도 평가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05게임 속에서는 이미

그가 대구로 돌아온 것은 3월 말이었다. 오랜만이라는 인사로 시작하는 글에서 그는 한동안 게임을 못 하다가 이제 대구에 돌아와 드디어 시간이 생겼다고 적었다. 한 회원이 요즘도 조심하시라는 말을 댓글로 남겼고, 그는 알겠다고 고맙다고 답했다.

같은 글에 만촌사거리 이야기가 있다. 지하 고속 순환도로 입구를 증설해서 이제 만촌오거리로 변신했다는 것, 새 백화점이 생기고 오거리 남측에 큰 철도 환승역도 증설해 아직 공사 중이라는 것. 그리고 한 장의 위치를 짚으면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실제로는 아직 미개발 지역이지만 제 게임 속에서는 이미 이렇게 되었습니다.

지난 가을호에서 그는 서울 지하철 급행화를 게임에서 먼저 시공하겠다고 했었다. 반년 뒤에도 방식은 같았다.

4월 26일에는 앞산에서 본 도심 전역을 올렸다. 다사읍부터 안심역까지, 칠곡군부터 화원읍까지. 이번에는 동대구뿐 아니라 대구 전역의 광역 버스 노선을 다 구현할 예정이라고 했고, 신천과 낙동강과 팔공산까지 넣어 분지 지형을 살리겠다고 덧붙였다. 대구에 대학이 많은데 어떻게 꾸밀 생각이냐는 물음에는 그 부분을 아직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같은 달, 다른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계절을 지났다. 해외도 못 나가고 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제목으로 인천대교와 공항 제1터미널을 찍어 올리고는 저는 떠난다고 적었는데, 여기에 다른 회원의 스크린샷을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면 일본 여행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뒤에 붙어 있었다.

4월 30일의 영등포역 글은 이렇게 끝난다. 이런 날에는 역시 가족분을 빨리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여러분도 연휴 잘 지내시길 바란다고. 버스 색이 다 똑같아 아쉽다는 지적에는 간선과 지선을 구별하는 것을 잊었다며 바로 수정하겠다고 답했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게시글 제목·본문·댓글 인용은 원문 그대로
  • 감염병 관련 서술은 원문 표현의 범위를 넘지 않았다. 편집부는 질병명·수치·피해 상황을 덧붙이지 않았고, 작성자 본인의 문장('번화가 장사가 식었지만', '한동안 게임을 못 하다가')과 표어만 옮겼다. 표어 안의 '250만'은 작성자가 쓴 문구의 일부다. 댓글에 있던 감염 상황 언급은 '조심하시라는 말'로만 옮겼다
  • 사진 묘사(광고판과 표어, 태극기와 로고, 옥상 붓글씨, 노면의 '천천히' / 광장의 화단 글자, 시 로고와 서명)는 지면에 실은 두 장에 보이는 범위
  • 03절의 '진짜 사진이 섞여 있다'는 판단은 댓글의 지적과 작성자의 인정('몰래 넣었는데 역시 드러냈어요')에 근거한 것이며, 어느 장인지는 원문이 밝히지 않았다
  • '재현이 잘되면 진짜 사진 쪽이 게임처럼 보인다'와 '도시가 자기를 설명하는 말투까지 함께 옮겨 왔다' 두 곳이 편집부 논평
  • 2019 가을호 [급행화, 게임에서 먼저] · 겨울호 [대구와 대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