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능선에 집착한 이유

2019 여름호에서 다룬 '능선 고증'의 이유가 1년 만에 밝혀졌다. 경복궁은 북악산과 뗄 수 없기 때문이라는 한 줄과, 산을 주인공으로 삼은 같은 봄의 연작을 읽는다.

북악산의 색
북악산의 색

2019년 여름호에서 우리는 산등성이를 맞춘 사람의 이야기를 다뤘다. 광화문광장에서 찍은 실제 사진과 대조해 가며, 북악산 뒤로 살짝 보이는 북한산의 봉우리까지 게임 안에 옮긴 작업이었다.

그때 우리는 그 작업이 왜 그렇게까지 정성스러웠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아무도 배경을 칭찬하지 않아도 배경이 틀리면 도시 전체가 서울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짐작으로만 적었다. 2020년 봄, 본인이 두 줄로 답을 내놓았다.

산 능선에 집착한 이유...
경복궁은 북악산과 뗄 수 없기 때문입니다!

01병풍처럼 자리잡은 산

같은 날 올라온 다른 글에 더 긴 설명이 있다. 서울 맵을 처음 만들 때부터 광화문광장에서 경복궁을 바라보았을 때 궁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과 북한산의 능선을 최대한 현실에 가깝게 표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리고 경복궁 뒤에 병풍처럼 자리잡은 산이야말로 경복궁을 표현하는 정체성 가운데 하나라는 것.

경복궁은 북악산을 등지고 앉아 있다. 궁의 중심축이 산봉우리를 향하도록 놓였고 광화문에서 북쪽을 보면 궁 너머로 산이 서니, 궁을 재현하려는 사람에게 북악산은 배경이 아니라 궁의 일부가 된다. 산을 대충 만들면 궁이 아무리 정확해도 그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첫 호에서 우리는 이 궁의 축 이야기를 길게 다뤘다. 배치도를 겹쳐 놓고 선을 맞추다가 궁 전체가 동쪽으로 쏠렸고, 신무문을 옮기니 아직 세우지도 않은 청와대까지 함께 밀렸다는 이야기였다. 축은 궁 안에서만 문제가 아니라 궁 바깥의 산까지 이어져 있었다.

02숨겨진 능선

그가 답을 내놓은 방식은 현실 사진과 게임 화면을 나란히 놓은 이미지 한 장이었다. 잘 만들었다고 말하는 대신 원본 옆에 놓는 방식이라 다르면 다른 대로 드러난다. 다만 그는 댓글에 광화문광장 사진은 과거 사진인 점을 참고해 달라는 단서를 먼저 달아 두었다.

반응이 오자 그는 화면의 한 곳을 더 가리켰다. 여기서 또 숨겨진 능선을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었다. 게임 화면을 크게 놓고 보면 짙은 북악산 능선 위로 창백한 봉우리 하나가 아주 조금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 그 봉우리가 북한산이다. 꽁꽁 숨겼다는 답이 그 아래 붙었다.

얼마나 시간을 들였을지 상상이 안 간다는 말에 그는 2년 전 서울 맵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라고 답했고, 말도 안 된다는 감탄에는 능선이 경복궁의 완성이라고 답했다. 바위 소품을 미친 듯이 찾아다니던 이유를 이제 알겠다는 댓글도 달렸다.

03산이 주인공이 된 봄

북악산의 색
북악산의 색

같은 주에 그는 산 자체를 여러 편에 걸쳐 올렸다. 북악산의 색, 북악산을 지키는 사람들, 그리고 이어폰이 필요하다는 안내가 붙은 북악산 시네마틱까지.

북악산의 색은 돌출된 암석 사이사이 숨겨진 자연을 감상해 보라는 짧은 안내와 함께 올라왔다. 사진에는 짙은 상록수 사면에 흰 화강암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고 그 사이로 붉고 노란 단풍이 은은하게 번져 있는데, 봄에 올라온 가을 풍경이라 이제 봄인데요 하는 댓글이 달렸다. 그는 올해 가을을 내다보고 만든다고 답했다.

산을 지키는 사람들 편에는 산 중턱의 초소가 담겼고, 시네마틱에는 새소리와 풀소리를 들으며 숲속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는 감상이 달렸다. 능선이 실사와 거의 일치하는 데에 얼마나 노력이 들어갔겠느냐는 말도 있었다. 도시를 짓는 사람이 산을 주인공으로 네 편을 연달아 내는 일은 흔치 않다.

궁 안의 인공 산도 같은 주에 다뤘다. 경복궁 아미산을 두고 그는 가산이 한국 전통 조경 기법의 하나로 인공산을 조성하는 일을 가리킨다고 설명하고, 경복궁의 대표적인 가산으로 경회루 인공섬과 아미산을 들었다. 첫 호에서 우리는 그 언덕이 경회루 연못을 파낸 흙으로 쌓였다는 원문을 옮긴 적이 있다.

04프로젝트 서울

이 작업들에는 프로젝트 서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2018년부터 시작된 그 프로젝트에는 수많은 하위 프로젝트가 있으며 북악산도 그중 하나라고 그는 적었고, 경복궁과 국회의사당과 아미산이 같은 이름 아래 들어간다.

2018년의 서울 프로젝트와는 다른 사람의 작업이다. 첫 호에서 우리는 서울을 여섯 달 동안 걷다가 마흔일곱 장으로 완결한 연재를 다뤘고 그와 별개로 궁을 지은 연재를 다뤘는데, 2020년의 프로젝트 서울은 그 계보에 이어지는 세 번째 서울이 된다.

자연환경에까지 정성을 들인다는 칭찬에 그는 경복궁 자체만이 아니라 경복궁 뒷배경에 집착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상대는 이 땅에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켜본 산이니 충분히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하다고 받았다. 궁을 지어 본 사람과 산을 지은 사람이 주고받은 말이다.

같은 댓글창에서 그는 다음 계획을 흘리기도 했다. 청와대보다는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던 경복궁 후원을 만들어 볼까 싶다는 말이었는데, 후원까지 지은 세 번째 경복궁이 같은 봄에 다른 사람의 손에서 나타난다.

05집착이라는 단어

13K 전경
13K 전경

그가 스스로 고른 단어는 집착이었다. 산 능선에 집착한 이유.

집착은 대개 부정적인 말이지만 여기서는 자랑에 가깝게 쓰였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정확도를 스스로 요구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게시판에는 그런 집착이 여럿 있었는데, 기둥마다 다리 이름을 붙인 사람이 있었고 1u짜리 도로의 방향을 찾아낸 사람이 있었으며 운전면허학원의 연습 코스를 그린 사람이 있었다. 능선을 두고는 능선덕후라는 호칭이 댓글에서 즉석으로 붙었다.

사흘 뒤 그는 경복궁 전경을 13K 해상도로 찍어 올렸다. 원본은 15K였는데 카페에 올리려고 품질을 절반으로 줄여 변환했다는 설명이 붙었고, 원본 보기를 누르기가 무서운 크기라는 댓글이 달렸다. 크게 찍을수록 배경의 산도 크게 나오니 능선에 집착한 사람이 초고해상도를 택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사진에도 아쉬움은 붙었다. 다시 봐도 지붕이 살짝 하얀 것이 아쉽다는 말이었고, 만든 사람을 문화재청으로 보내야겠다는 농담도 함께 달렸다. 1년 전 우리는 고증이란 아무도 확인하지 않을 것까지 맞추는 성실함이라고 적었는데, 이제 그 성실함에 이유가 붙었다. 경복궁은 북악산과 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인용은 원문 그대로
  • 경복궁이 북악산을 등지고 축을 맞춰 배치되었다는 한 문단은 편집부 배경 서술이다. 원문은 '병풍처럼 자리잡은 산'까지만 말한다
  • 02절의 '창백한 봉우리 하나가 조금 얼굴을 내밀고 있다'는 지면에 실은 게임 화면에 보이는 범위이며, 원문 댓글의 '숨겨진 능선'과 대조해 확인했다
  • 03절의 사면·화강암·단풍 묘사는 게재 사진에 보이는 범위
  • '집착은 여기서 자랑에 가깝게 쓰였다' 등 해석은 편집부 논평
  • '세 번째 서울'이라는 계보 정리는 편집부의 구성
  • 2019 여름호 [능선을 고증하다] · 2018 겨울호 [경복궁, 눈이 내릴 때까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