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으로 쌓은 읍성

이 특집호의 앞선 기사에서 우리는 사진으로만 남은 경복궁을 다뤘다. 그 궁을 지었던 사람이 같은 봄, 다른 게임에서 읍성을 쌓고 있었다. 전주 풍남문과 고창읍성 공북루를 블록으로 옮긴 기록. 그리고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풍남문
풍남문© Geff

이 특집호는 사라진 궁에서 시작했다. 2년 전에 지어졌고,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았으며, 지은 사람이 다시 볼 수 없다고 적은 그 경복궁이다.

그런데 같은 봄, 그 사람은 다른 곳에서 계속 짓고 있었다. 게임이 달랐을 뿐이다.

01한옥부터 다시

4월, 마인크래프트 서버의 한 마을에 한옥이 서기 시작했다. 지산 능참봉마을인데, 이름에는 내력까지 붙었다. 대릉원을 둘러싸듯 자리해 능을 지키는 참봉과 같다 하여 그렇게 불린다는 설이 전한다고 그는 적었고, 한옥도시로 불리면서 정작 제대로 된 한옥마을이 없던 지산시에 한옥마을이 생겼다는 말을 그 아래 붙였다.

궁궐이 아니라 마을이고 전각이 아니라 가옥이다. 선익동 가옥이 서고 작은 가옥이 그 틈을 메우고 함학왕갈비라는 갈비집까지 들어섰는데, 마을 이름의 내력은 댓글에 남았다. 서울 익선동을 뒤집어 5초 만에 지은 이름 아니냐는 지적에, 성은 선이요 이름은 익동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시티즈에서는 남이 만든 자재를 가져다 놓지만, 마인크래프트는 블록을 하나씩 쌓아 지붕의 곡선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 궁을 짓던 사람이 살림집부터 다시 시작했다.

02혼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마을은 한 사람의 작업이 아니다. 선익동 가옥에 대해 그는 이미 청라에 지었던 한옥 중 네 채가 배치되었고 다섯 번째로 보숙님이 지으신 한옥을 재조합해 주택을 하나 만들어 보았다고 적었으며, 이튿날 올라온 글의 부제는 더 노골적이다. 보숙님이 주신 한옥 재배치 2탄.

한옥을 지은 사람과 그것을 마을로 앉힌 사람이 다르다. 남이 만든 집을 받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해 골목을 만들다 보니 명칭이 제대로 붙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뒤따랐다.

숭인문과 첫 성벽
숭인문과 첫 성벽© Geff

지면에 실은 명패 사진이 그 작업을 요약한다. 가옥 이름 아래 날짜가 두 줄인데 윗줄은 2019년 7월의 이틀이고 아랫줄은 2020년 4월 4일이며, 지은 날과 옮겨 앉힌 날 아래로 두 사람의 이름이 빗금을 사이에 두고 나란하다. 문화재 안내판의 형식을 흉내 낸 명패에 원작자와 재배치자를 함께 적는 쓸모가 생겼다.

갈비집에서는 한 사람이 더 늘어난다. 함학왕갈비의 내부는 혜화님이 인테리어를 해 주셨다고 적혀 있고, 사진에는 고기를 굽는 혜화님과 쌈만 싸는 다인님이 등장한다. 갈비집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실현이 되어 버렸다는 문장이 글머리에 있으니, 이 건물은 농담이 먼저고 시공이 나중이었다.

성벽의 첫 문도 마찬가지여서, 지산읍성의 동문으로 쓴 숭인문은 혜화님이 지으신 흥인지문을 가져다 세운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집을 짓고, 내부를 꾸미고, 성문을 지어 주고, 손님으로 앉는 역할이 각각 다른 사람이다.

시티즈의 경복궁은 혼자 지은 궁이었고, 그래서 그 사람의 컴퓨터에서 사라졌을 때 함께 사라졌다. 능참봉마을은 처음부터 여럿의 손을 거쳤다.

03이중 성곽이라는 설정

창의문
창의문© Geff

5월에 마을이 성으로 확장됐다. 지산의 옛 중심지를 복원한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지산읍성인데, 읍성은 궁장과 달리 그 안에 관아와 살림집과 시장을 함께 두른다.

이 성에는 설정이 붙었다. 지산읍성은 이중 성곽으로 계획되었는데 옛 성곽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기존 성곽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다. 이 한 줄이 성의 형태를 결정한다. 성 안에 또 하나의 성문이 서게 되기 때문인데, 창의문이라는 문이 옛 지산읍성의 북문이었다가 확장 과정에서 읍성 내부에 놓이게 되었다.

지어낸 내력은 성문에만 붙지 않는다. 성벽이 넘어가는 고개의 터널에도 이름이 있는데, 성을 확장하면서 고개를 가로질러 옛 언덕길이 막히는 바람에 가로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형태를 먼저 만들고 그 형태가 생긴 사연을 나중에 붙이는 순서다.

첫 호에서 우리는 서쪽이 잘려 나간 태원전을 다뤘다. 궁장이 잘리면서 궁역까지 잘린 그 모양을 재현도 그대로 따랐다는 이야기였는데, 지산읍성은 그 반대여서 실제로 있었던 훼손을 옮기는 대신 있을 법한 역사를 지어내 형태의 근거로 삼았다.

실제로 있었던 훼손을 옮기는 대신,
있을 법한 역사를 지어내 형태의 근거로 삼았다.

04어느 문을 본떴는가

선익동 가옥의 명패
선익동 가옥의 명패© 게시=Geff / 한옥 제작=보숙(강

이 성의 문들은 저마다 실재하는 문을 모델로 삼았고, 모델과 이름을 따로 가져오는 것이 이 성의 방법이다.

지산읍성의 문모델이름의 출처
풍남문 豊南門전주 풍남문원본 그대로
창의문 彰義門고창읍성 북문 공북루(옹성은 서문 진서루)서울 한양도성의 북소문 창의문
창신문 昌信門해미읍성 남문 진남문개성 나성의 성문 가운데 하나

창의문은 형태를 고창에서, 이름을 서울에서 빌렸다. 남문 이름에 대해서는 다른 것을 생각해 보려 했는데 어감이 좋지 않아 원본 그대로 풍남문이라고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 작명에 실패한 대목까지 그대로 적어 두었다.

세부 설명이 이 작업의 밀도를 보여 준다. 풍남문에서는 이전에 짓던 한옥과 달리 서까래가 아래로 기울어지도록 맞춰 지었고 그 덕에 창방뿐 아니라 도리에 칠한 단청도 잘 보이게 되었다고 그는 적었다. 문루 양쪽에는 같은 크기의 포루와 종루가 서고 종루 아래에는 종이 잘 울리도록 판 명동이 있으며, 창의문은 돌로 된 육축의 위쪽이 트여 목재가 드러나는 개거식 성문이라고 설명했다.

못 한 것도 함께 적혔다. 문루에 북이 걸려 있었던 것 같은데 잘못 본 느낌도 들고 대각선 건축의 한계 때문에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는 말이 창의문 편에 나오며, 창신문에서는 원래 홍예식인 성문을 평거식으로 살짝 손봤다고 밝혔다. 문 앞에는 옛 지산군수들의 선정비를 세워 두었다.

05완공된 문이 다시 공사 중이 되다

5월 중순, 연재는 한 편을 통째로 재작업 보고에 썼다. 첫 문장이 지난 연재 이후 전반적으로 대격변이 있었다는 것이었고, 바뀐 것은 다섯 가지였다. 흥인지문의 규모가 지형과 맞지 않아 지형을 통째로 뜯어고쳤고, 그 문을 남문으로 옮기면서 이름을 흥례문으로 바꾸었으며 기존 남문이던 풍남문은 강경읍성 서문으로 돌렸다. 새 동문으로는 경주읍성 향일문을 골랐고, 달라진 위치에 맞춰 성곽 선형을 다시 잡아 쌓고 동문 광장의 배치를 정하며 해자를 복원했다.

그래서 완공 상태였던 남문이 다시 공사 중이 되었고 동문도 공사를 시작해야 해서 편을 나누기 애매해졌다고, 개발이 한 달째인데 그럴듯한 시가지가 아직 형성되지 못해 아쉽다고 그는 적었다. 앞선 편에서 이미 성벽의 곡률이 급하다며 다시 작업할 것 같다고 예고한 참이었으니, 재작업 루프에 갇히셨다는 댓글이 달릴 만도 했다.

고읍성 쪽도 구현할 곳이 너무 많아 차근차근 채워 나가겠다고 그는 남겼다. 이 연재에는 완공이라는 단어가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06같은 사람, 다른 재료

이 특집호는 한 계절에 세 개의 경복궁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지산읍성은 그중 네 번째로 세기 어려운 자리에 있다. 궁이 아니라 읍성이고, 자재를 놓는 대신 블록을 쌓았으며, 한 곳을 옮기는 대신 여러 곳을 섞어 새 고을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하는 일은 같다. 한국의 옛 건축을 들여다보고, 그 구조를 이해하고, 자기가 가진 재료로 다시 세우는 일이다. 역사문화도시 콘셉트가 제대로라는 감탄에 만들어진 역사라며 말끝을 흐리자, 역사는 원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 적도 있다.

이 연재에는 규칙이 하나 있어서, 글의 마지막 사진이 언제나 셀카다. 완성한 문루 앞에서, 터널 위에서, 지형이 뒤집힌 언덕에서 그는 자기 캐릭터를 찍는다. 대격변을 보고한 날의 셀카에 붙은 설명은 이랬다. 늘어난 건 마인크래프트 스킨뿐.

시티즈에서 지은 궁은 사라졌고 세이브 파일도 자재도 남지 않았다. 마인크래프트의 읍성은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서버 위에 있으므로 한 사람의 컴퓨터가 어떻게 되든 성은 거기 남는다. 글 끝에는 매번 같은 줄이 붙는다. 워프 지산. 다시 볼 수 없다고 적은 사람이 남긴 것은 사진이 아니라 주소였다. 이 특집호를 여기서 닫는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건축 용어 설명·모델 출처·이중 성곽 설정·가로재 지명 유래·마을 내력·재배치 5개 항목은 모두 원문 그대로
  • 02절의 공동 작업 서술은 원문 인용에 근거한다. 한옥 제작=보숙(강), 재조합·배치=Geff, 갈비집 인테리어=혜화(HYEHWA03), 동문 숭인문의 원본 흥인지문 제작=혜화, 사진 속 손님=다인
  • '문혜화 할머니'는 작성자가 가상 안내서에 쓴 인물이며, 인테리어를 맡은 회원의 닉네임과 겹친다는 지적은 편집부 해석이다
  • 명패 사진의 두 날짜 해석(지은 날·옮긴 날)은 편집부 판독이며 원문에 설명이 없다
  • 읍성의 일반적 성격(관아·살림집·시장이 함께 있는 성)은 편집부 배경 서술
  • '시티즈는 자재를 놓고 마인크래프트는 블록을 쌓는다', '형태를 먼저 만들고 사연을 나중에 붙인다', '농담이 먼저고 시공이 나중이었다'는 편집부의 대비와 논평
  • '서버에 있으므로 한 사람의 컴퓨터와 무관하게 남는다'는 편집부 논평이며, 서버의 존속을 보장하는 서술이 아니다
  • 맺음의 '워프 지산'은 연재 전편 말미에 붙은 이동 명령 표기를 옮긴 것이다
  • 표의 세 문 대응 관계는 원문 기재를 옮긴 것이며, 05절이 보고하듯 5월 17일 이후 남문·동문의 배정이 바뀌었다. 표는 각 편이 게시된 시점의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