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경복궁

궁을 지은 사람들은 언젠가 그 궁을 태운다. 2018년의 우발적 화재와 2020년의 의도된 재난 사이에서, 스스로 악의 없음을 밝힌 한 줄과 끝내 타지 않은 전각들을 기록한다.

불타는 경복궁
불타는 경복궁© 티디비

4월 초, 궁이 불탔다. 제목이 그대로였다. 불타는 경복궁.

이번에는 사고가 아니라 만든 사람이 놓은 불이었다. 다만 그 불은 뜻대로 붙지 않았다.

01두 번의 불

이 특집호의 앞선 기사에서 우리는 2018년의 화재를 다뤘다. 나무를 많이 심어 놓아 산불이 났고 정부청사는 어김없이 불탔으며, 그 광경을 보기 드문 산불이라며 열심히 찍었다는 기록이었는데, 그것은 사고였고 만든 사람은 구경꾼이었다.

2020년의 화재는 다르다. 불타는 경복궁이라는 제목을 달고, 같은 날 아침 불타는 서울과 불타는 성당이 뒤따랐으며, 이튿날에는 번외 영상까지 올라왔다. 구경하는 화재가 아니라, 재난을 소재로 삼기로 하고 일부러 낸 불이었다.

즉흥으로 찍어 올린 화면도 아니었다. 두 번째 글에는 작성 시간이 오전 8시 30분이라고 본문에 적혀 있고, 사진을 한꺼번에 올리려고 카페의 대용량 첨부 기능을 썼다는 설명이 그 아래 붙어 있다.

02악의가 없음을 밝힙니다

두 글의 본문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글은 절대 악의적 목적이 없음을 밝힌다는 한 줄이 제목 바로 아래 별표와 함께 붙어 있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먼저 적어 둔 문장이다. 실재하는 문화재가 불타는 장면을 올리면서 그것이 어떻게 읽힐지 스스로 헤아린 흔적이 이 한 줄에 남았다.

경복궁은 실제로 여러 번 불탔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어 270년간 빈터였고 일제강점기에 전각 대부분이 헐렸다는 이력을 첫 호에서 우리는 원문을 따라 정리한 적이 있다. 게임 속의 화재는 그러니 이미 일어났던 일과 겹치는 자리에 놓인다.

이 매거진은 이 기사에서 판단을 내리지 않고 기록에 그친다. 다만 만든 사람이 먼저 적어 둔 그 한 줄은 함께 옮겨 둔다.

03타지 않는 전각

본문에는 그 한 줄 다음에 사정이 하나 더 적혀 있다. 경복궁에 불이 났지만 자재를 만든 사람의 설정에 따라 경복궁 건물 상당수가 불에 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댓글에서 그는 같은 말을 더 짧게 되풀이했다. 타는 건물만 타고 안 타는 건물은 안 탄다고. 궁을 재현하려고 만들어진 전각 자재에는 애초에 불이 붙지 않도록 설정이 들어가 있었고, 그래서 궁을 태우려는 시도는 절반쯤 실패했다.

첫 호에서 궁을 지었던 사람이 예전에 그 전각들은 불에 타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 사실도 그가 댓글에서 떠올렸다. 자재를 오래 써 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알려진 성질이었다.

지면에 실은 사진이 보여 주는 것도 실은 문 한 채다. 이층 문루가 화염과 연기에 둘러싸여 있고 아치 세 개 안쪽까지 붉게 물들어 있지만, 불길은 대체로 건물 뒤편에서 타오르고 지붕과 기둥은 그을린 채 형태를 지키고 있다. 지붕마루 위에 줄지어 앉은 작은 짐승 장식도 그대로이고, 연기는 회청색으로 문루 위쪽에만 깔려 있다.

04댓글이 답한 방식

궁 쪽 댓글창에 가장 먼저 달린 것은 커다란 화재라는 한 줄이었다. 이어 한 사람이 조선왕조실록에서 1592년 궁성이 불타던 대목을 그대로 옮겨 붙였고, 다른 사람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있는 듯한 모습이라며 다시 경복궁을 중건하자고 적었다. 만든 사람은 그러면 대신 인경궁을 드리겠다고 답했다.

궁을 지었던 사람의 댓글은 짧았다. 슬프네요. 이튿날 올라온 번외 영상 아래에도 비통함이 느껴진다는 한 줄을 남겼다.

농담이 없지는 않았다. 좀비 사극의 제목을 물음표와 함께 적은 댓글에 만든 사람은 좀비들이 불을 무서워한다고 답했다. 다만 같은 날 함께 올라온 불타는 서울 쪽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어조였다. 불을 소주로 끄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에 알코올을 부으면 더 재미있어진다는 말이 붙었고, 오늘은 불에 굽는 특집이냐는 물음에는 숯을 좀 생산해야 할 것 같아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같은 사람이 같은 날 올린 두 글인데, 실록을 옮겨 붙이는 일과 슬프다고 적는 일은 궁 쪽에서만 일어났다.

05짓고 태우고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 티디비

같은 봄에 그는 새 건물도 만들고 있었다. 국회의사당이다. 지면에 실은 사진에서 그 건물은 청록으로 산화한 둥근 지붕을 얹고 정면에 굵은 열주를 세운 채 넓은 계단 위에 서 있는데, 둘레는 아직 풀밭이고 왼쪽에 사무동 한 채가 보일 뿐이다. 도시의 한 장면이라기보다 건물 한 채를 보여 주려고 찍은 화면에 가깝다.

그 글에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길게 적혀 있다. 텍스처를 굽는 작업을 처음 시도해 본 건물이라 표면을 계획적으로 배치하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원본 텍스처에 비해 품질이 다소 떨어졌지만, 처음 시도한 분야인 만큼 다음에는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는 말이었다. 품질이 떨어졌다면 원본은 얼마나 좋았던 것이냐는 댓글이 그 아래 달렸다.

한쪽에서는 궁을 태우고 한쪽에서는 의사당을 굽는 봄이었다. 도시를 짓는 사람에게 그 둘은 반대말이 아니었다.

첫 호에서 우리는 부순 도시는 남는다고 적었다. 영상 안에서만 부서지고 도시는 멀쩡히 남는다고. 2020년 봄의 경복궁도 그랬다. 불탄 것은 사진과 영상 안에서였고, 궁은 다음 사진에서 다시 서 있었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제목·기술 서술·작성자 단서 인용은 원문 그대로
  • 경복궁의 화재 이력(임진왜란·일제강점기)은 2018 겨울호에서 정리한 원문 근거를 따름
  • 05절 국회의사당 사진 묘사(청록 돔·열주·계단·둘레의 풀밭)는 게재 사진에서 확인한 것
  • '즉흥으로 찍어 올린 화면도 아니었다'는 대용량 첨부 사용과 작성 시간 표기에 근거한 편집부 판단이다. 원문이 준비 과정을 밝히지는 않는다
  • '구경하는 화재와 연출하는 화재', '파괴와 제작은 반대말이 아니었다'는 편집부 논평
  • 편집부는 이 소재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고 본문에 명시했다
  • 2018 겨울호 [요코, 재난을 찍는 일] · [경복궁, 눈이 내릴 때까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