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볼 수 없는 도시

이 매거진의 첫 호를 채웠던 경복궁의 원작자가 2년 만에 그 연재를 다시 올렸다. 다만 도시는 이미 사라졌고 남은 것은 사진뿐이다. 재연재라는 형식과, 다섯 회 만에 멈춘 그 연재에 관하여.

육조거리
육조거리© Geff

이 매거진의 첫 호는 경복궁 이야기로 한 계절을 닫았다. 궁장과 육조거리에서 시작해 태원전과 향원정까지 삼문삼조의 질서가 하나씩 채워지고, 마지막에는 다 지어진 지붕 위로 눈이 내리던 이야기였다.

2년이 지나 그 궁이 다시 게시판에 나타났다. 제목은 경복궁을 추억하다. 지은 사람이 그때의 사진을 순서대로 다시 꺼내 올린 재연재였고, 첫 회 도입부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짧게 적혀 있었다.

01재연재라는 형식

2018년에 연재했던 경복궁 연재의 재연재라는 것, 사실상 자신의 마지막 역작이라 할 수 있는 도시라는 것, 그리고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지만 사진이나마 남아 있어서 다시 떠올려 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것. 사정이랄 것은 이 세 줄이 전부였다.

다시 볼 수 없다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본문에 적히지 않았고, 대신 댓글에 남아 있었다. 다시 만들어 볼 생각이 없느냐는 물음에 그는 의욕을 완전히 잃었기에 불가능하다고 답했고, 사정을 더 묻는 자리에서는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말끝을 흐렸다. 옆에서 다른 사람이 대신 알려 주었다. 세이브를 날리셨답니다.

그 한 줄로 이 연재의 성격이 정해진다. 첫 호에서 우리가 여섯 편에 걸쳐 따라갔던 궁은 이제 열리지 않는 파일이고, 남은 것은 그때 찍어 둔 사진뿐이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지만
사진이나마 남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02사라진 부품

세종대로
세종대로© Geff

사라진 것은 도시만이 아니었다. 정부서울청사 본관 사진 아래에 그는 언젠가 사라져서 이제는 볼 수 없는 자재라고 적어 두었다.

창작마당에 올라온 자재는 만든 사람이 내리면 그대로 없어지고, 그 자재를 쓴 도시는 다시 열어도 그 자리가 빈 채로 뜬다. 정부청사 자재가 있었느냐고 놀라는 댓글에 그는 의외로 없어진 자재가 많다고 답했다. 반대로 광화문은 게임 초기 자재인데도 품질이 좋아 오래 사랑받았다고 첫 회에 적혀 있는데, 그 대목에는 광화문 자재의 역사가 은근히 길다는 감탄이 달렸다.

첫 호에서 우리는 자재 삭제로 도시 하나가 통째로 피해를 입은 사건을 다루면서, 도시는 게임 속에 있지만 도시를 떠받치는 자재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고 적었다. 이 궁에서는 그 일이 두 겹으로 일어나 있었다. 도시를 담은 파일이 없어졌고, 그 도시를 이루던 부품 몇 개도 따로 없어졌다.

03한옥이 열 개 될까 말까

재연재에는 그때의 조건도 함께 적혔다. 이 시절만 해도 한옥 자재가 열 개나 될까 말까 했다는 것.

이 많은 한옥을 한 사람이 다 만들었느냐는 댓글에 그는 다음 회에서 그 한옥 없이 어떻게 전각들이 구현되었는지 보게 될 거라고 답했다. 실제로 세 번째 회는 없는 자재로 꾸며 준 국립고궁박물관이라는 설명과 함께 올라왔고, 실제 형태와는 차이가 많지만 이 정도가 한계였다는 말이 뒤따랐다. 궁역 안에 박물관이 두 곳 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둘을 묘사할 만한 자재가 없다는 아쉬움 역시 같은 회에 있다.

세종대로에서 본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본 광화문© Geff

사진을 보면 그 조건이 그대로 보인다. 광화문과 궁장은 이미 반듯하게 서 있는데 담장 안쪽은 통째로 초지이고, 멀리 다른 나라의 탑 한 채가 국립민속박물관 자리를 대신해 홀로 솟아 있다. 세 번째 회는 그 화면에 텅 빈 경복궁 궁역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첫 호에서 우리는 그 대체를 부족함으로 적었는데, 2년 뒤의 재연재는 그것이 부족이 아니라 그 시절 가진 것의 전부였음을 확인해 준다.

04오지 않은 날

세 번째 회 댓글에 북악산 깎는 그날이 기대된다는 말이 달렸다. 답은 과거형으로 돌아왔다.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았는데요.

같은 어조가 회마다 반복된다. 다시 보고 싶은 도시라는 말에는 저도요라는 두 글자가 붙고, 시티즈를 다시 시작하라는 권유에는 답이 달리지 않는다. 산불이 났던 회를 지나 다음 회에 이르자 이번에는 불이 안 났다는 농담이 달렸고, 마지막 회에서 지금 기준으로도 아름답다는 말에 그는 아무래도 많이 보던 모습이라 그럴 거라고 답했다.

칭찬을 받는 자리마다 한 걸음 물러서는 답이 붙는다. 자기 도시를 자기가 소개하면서도 그 도시를 이미 남의 것처럼 다루는 어조가 다섯 회 내내 유지된다.

05추억한다는 동사

연재의 제목이 정확하다. 경복궁을 짓다도 아니고 경복궁을 복원하다도 아니고, 경복궁을 추억하다.

추억한다는 말은 대상이 지금 곁에 없을 때 쓴다. 이 연재는 처음부터 상실을 전제로 출발해서, 사진을 순서대로 올리고 그때 무엇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한 다음 지금은 볼 수 없다고 덧붙인다. 우리가 이 매거진에서 하는 일과 형식이 거의 같은데,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남의 도시를 다루고 그는 자기 도시를 다룬다.

다섯 번째 회는 외조와 치조를 둘러본 뒤 이제 경회루로 가 보자는 말로 끝난다. 그 다음 회는 올라오지 않았다. 사진은 아직 남아 있었을 텐데 재연재는 경회루 앞에서 멈췄고, 같은 봄 그는 블록 게시판으로 옮겨 가 읍성의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이번 특집호의 마지막 기사가 그 성벽에서 시작한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인용은 모두 원문 그대로
  • 03절 사진 묘사(궁장 안쪽이 비어 있고 멀리 탑 한 채가 솟아 있다)는 게재 사진에 보이는 범위
  • '추억한다는 말은 대상이 지금 곁에 없을 때 쓴다', '자기 도시를 이미 남의 것처럼 다루는 어조' 등 해석은 편집부 논평
  • 2018년 에셋 삭제 사건과의 연결은 편집부의 대비
  • 05절 '경회루 앞에서 멈췄다'는 아카이브 범위 내에서 확인한 사실이며, 카페 밖에 후속 회차가 있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못한다
  • 2018 겨울호 [경복궁, 눈이 내릴 때까지] · [어디까지 복원해야 하는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