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짓기 시작하다

지난 여름호에서 다룬 신서울이 9월 초에 끝났다. 메모리가 한계에 닿아 게임이 강제 종료된 날, 그는 억지로 끌고 가지 않기로 결정하고 도시를 놓아주는 글을 썼다. 열이틀 뒤 시작된 새 도시의 이름은 '새로 시작하는 도시'라는 뜻이었다.

새 도시의 첫 커스터마이징 대상이 된 역
새 도시의 첫 커스터마이징 대상이 된 역© 정프리

지난 여름호에서 우리는 한 도시의 동 이름을 따라가는 연재를 다뤘다. 소양이라는 구 아래 도일동과 신서동과 한성동이 차례로 지어지고, 부록이라는 이름을 붙인 곁가지 글이 그 사이사이에 끼어들던 도시였다. 그 도시의 이름은 신서울이었다.

9월 6일 새벽, 그 연재에 에필로그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얼마 전까지 한창 진행 중이던 것이 갑자기 웬 끝맺음인가 싶을 것이라는 문장이 두 번째 줄에 있고, 이렇게 갑자기 에필로그를 쓰게 될 줄은 자기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문장이 그 아래 이어진다.

0148기가를 너무 믿은 나머지

「신서울」 연재의 제목 화면
「신서울」 연재의 제목 화면© 정프리

원인은 본인이 밝혔다. 아마 자기 욕심이지 않았나 싶다면서, 48기가를 너무 믿은 나머지 도시 규모를 거의 메갈로폴리스급으로 설정한 것이 화근이었다고 그는 적었다. 아직 공개하지 않은 지역을 작업하고 세밀함이 부족한 곳을 손보던 도중, 신서울 작업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메모리 여유 공간이 모자라 게임이 강제로 종료됐다.

이전에도 한계에 가까워졌다는 언급을 한 번 했었는데 결국 그날이 왔다고 그는 썼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와 버려서 당황스럽다는 문장이 그 뒤에 붙는다.

억지로 버텨 가며 계속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예전에 다른 도시를 하면서 강제 종료를 억지로 견인해 진행하다 결국 부품을 몇 개 날려 버린 적이 있었다는 것이 하나이고, 신서울이 이미 소품과 데칼 개수의 최대치를 경신한 상태라 세부 작업 자체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글의 중간에는 예상 독자에 대한 짐작이 들어 있다. 자기 연재에 그렇게 관심이 없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게임에서 만드는 것 하나 그냥 버리는 데 뭘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나 싶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장황하게 쓰는 이유를 밝혔는데, 이것이 자기 성격의 일부이기도 하고 연재를 관심 있게 봐 준 사람들과 1년 가까운 시간의 일부가 되어 준 게임 속 작은 세상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에필로그에는 진척도와 광역철도 개통 현황을 정리한 화면이 함께 실렸다. 끝을 알리는 글에 진행 상황표가 붙은 셈인데, 마지막 회차에서까지 형식을 지킨 것이기도 하다.

끝까지 이끌어갈 수 있을만큼만 욕심부려서
제대로 다시 해보려합니다.

02마무리가 참 씁쓸합니다

글은 계획으로 넘어간다. 이번 기회에 신서울을 진행하면서 배운 부분들을 처음부터 적용해 작은 규모로 새롭게 시작해 보겠다는 것, 처음부터 하나씩 더 세세하게 해 보겠다는 것, 그리고 끝까지 이끌어 갈 수 있을 만큼만 욕심부려서 제대로 다시 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덧붙인 대목에서 계획이 한 번 더 어긋난다. 공개하지 않았던 지역을 외전 느낌으로 찍어서 공개하고 끝내려 했는데 파일이 열리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무리가 참 씁쓸하다는 말과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게 되다니 하는 말이 차례로 붙었고, 죄송스럽다는 말로 글이 끝난다.

댓글은 대체로 아쉬움이었다. 너무 멋진 도시였다는 말, 노선도만 봐도 도시 규모가 엄청나 보여 아쉽다는 말이 달렸고, 그 노선을 계획할 당시만 해도 정말 신나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메모리 부족 때문이라니 하는 탄식에는 다음 도시는 꼭 완전히 끝마치기를 바란다는 답이 붙었다.

03새로 시작하는 도시

새도시 도시 및 철도계획도
새도시 도시 및 철도계획도© 정프리

열이틀 뒤에 올라온 글의 제목은 프롤로그였다. 새로운 도시와 함께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인사로 시작하고, 도시 이름은 새로 시작하는 도시라는 의미로 지은 새도시라고 밝힌다. 영문 표기의 첫 글자와 끝 글자로 만든 상징까지 함께 실렸는데, 앞 글자는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강을 뜻하고 뒤 글자는 시민 의식과 평화로운 도시를 뜻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삼호분기점 일대
삼호분기점 일대© 정프리

첫 작업은 도시가 아니라 도로였다. 수도권 순환 고속도로와 강변 간선도로가 만나는 분기점부터 손을 댔고, 그 옆에 톨게이트가 서고 분기점 인근에 시골 마을이 하나 들어섰다. 마을 이름의 유래까지 적혀 있는데, 북쪽에 큰 호수 세 개가 있어 분기점 이름이 삼호이고 그중 동쪽 호수에 들어선 마을이라 동호 마을이라 부른다는 것이었다.

프롤로그의 끝은 다짐이 아니라 걱정이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려니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면서, 여전히 신서울에 미련이 남은 모양이라고 그는 적었다. 새도시는 끝까지 해 보고 싶은데 과연 어디까지 버텨 줄지 벌써부터 긴장이 된다는 문장과, 부디 이번 연재는 끝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문장이 나란히 붙었다.

04벌써 40

10월 중순에 올라온 다음 글의 제목은 첫 커스터마이징이었다. 시골 마을을 작업하다 보니 자기는 시골 마을과 거리가 참 멀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면서, 작업 속도가 너무 나지 않아 잠시 철도 연결과 역세권 작업으로 시간을 보냈다는 근황이 앞에 붙는다. 처음 이 게임을 했던 그때처럼 밤을 새워 가며 작업했다는 문장이 그 뒤에 있고, 괄호 안에는 작업 시간의 60퍼센트가 간판 작업이었다는 자백이 들어 있다.

역을 만드는 방식이 이번에 바뀌었다. 그동안은 이미 완성된 역 자재를 놓고 그 위에 세부를 더하는 식으로만 해 왔는데, 도시를 새로 시작하면서 도시 이름처럼 새로운 시도를 해 봤다는 것이었다. 정거장 선로를 이용해 곡선 승강장을 처음 만들어 봤고, 아직 열차 수요가 없어 이용객이 없으니 승객이 정상적으로 이용할지는 모르겠다는 유보가 붙었다. 다행히 열차는 제자리에 정차한다고 그는 적었고, 정상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곳은 그저 열차만 잠시 멈췄다 떠나는 디오라마 정도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면에 실은 역 화면이 그 역이다. 승강장 지붕 아래에서 밖을 내다본 구도인데, 한국어 역명판이 기둥에 걸려 있고 그 너머로 초록 그물을 두른 공사 중인 건물과 타워크레인이 서 있으며 그 뒤로 완공된 고층 아파트가 늘어서 있다.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고속철도역이 들어서면서 주변이 급속도로 개발되고 있다는 설정을 실제 어느 역에서 가져왔다고 그는 밝혔다.

글의 마지막 줄에 숫자가 하나 나온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면서, 아직 별것 없는데 벌써 40이라는 숫자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괜찮겠느냐고 묻고 글이 끝난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중단 사유·경위·다짐·계획은 전부 본인이 밝힌 그대로다. 편집부는 사유를 추측하지 않았다(STYLE-GUIDE 3-3, 2019 봄호 `parkone` 기준)
  • '48기가'와 '40'은 본인이 적은 숫자를 그대로 옮긴 것이며 편집부가 해석을 붙이지 않았다
  • 사진 묘사(흑백 승강장과 제목 화면, 계획도의 범례와 호수 이름, 나무 사이로 보이는 고속도로와 고가, 역명판과 타워크레인)는 지면에 실은 네 장에 보이는 범위다
  • 01절 '글의 중간에는 예상 독자에 대한 짐작이 들어 있다'는 편집부의 요약이며, 이어지는 내용은 원문 그대로다
  • 이 기사에는 편집부 논평을 두지 않았다. 원문이 이미 자기 판단을 충분히 적었기 때문이다
  • 커버스토리의 첫 도시 종료와 이 기사의 신서울 종료가 같은 계절에 같은 원인으로 일어났다는 점은 편집부가 이은 연결이며, 두 작성자는 서로를 언급하지 않는다
  • [21978] 댓글 — Geff '너무 멋진 도시였는데 안타깝네요 ㅠㅠ 다음 도시 기대할게요!' / suri '노선도만 봐도 도시 규모가 엄청 큰거같네요 아쉬워라ㅜㅠ' → 정프리 '저 노선을 계획할 당시만해도 정말 너무 신나있었는데..ㅠㅠ' / kevinjoy '램 부족 때문이라니... 다음 도시라도 멋지게 완성되기를 기원합니다' → 정프리 '다음 도시는 꼭 완전히 끝마치길...ㅎㅎ' → 02절
  • 앞선 연재: 2020 여름호 [신서울](../2020-summer/sinseoul.md).
  • 지면 미게재: 도구·부품 실명(에셋→자재, 프롭→소품, PO간판→간판 작업, RAM→메모리, CPU와 메인보드→부품, 튕김→강제 종료), 실재 역명(천안아산역 → '실제 어느 역'). 회원 닉네임은 본문에 옮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