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 오피스 A에서 F까지

8월 하순부터 9월 초까지, 마인크래프트 서버의 한 특별시에 오피스 여섯 채가 알파벳 순서대로 올라갔다. 건물 사이마다 녹지 산책로가 놓였고, 부지가 모자란다는 문의가 그 사이에 한 번 끼어들었으며, 마지막 건물과 함께 짧은 인사가 올라왔다.

오피스 사이의 녹지 산책로
오피스 사이의 녹지 산책로© Hipass

마인크래프트 서버에서 도시를 가지려면 신청서를 내야 하지만, 도시를 갖지 않고도 지을 수는 있다. 이미 있는 도시 안의 빈 부지를 받아 건물을 올리는 방식인데, 도시 등록 조건 자체가 남의 도시에 먼저 여러 채를 지어 두는 것이므로 대부분의 사람이 이 경로를 먼저 지난다.

8월 하순, 한 특별시의 오피스 구역에서 그 작업이 시작됐다. 첫 글의 제목은 청라오피스A빌딩이었고 이레 뒤에 B빌딩이 올라왔으며, 9월에 들어서면서 속도가 붙어 하루에 두 채씩 묶여 올라오기 시작했다.

01C와 D, 그리고 산책로

9월 1일에 올라온 글은 세 가지를 한꺼번에 다룬다. C빌딩과 D빌딩, 그리고 그 사이의 녹지 산책로다. 본문은 설명이 거의 없이 소제목과 사진으로만 이어지는데, 가운데가 D빌딩이고 왼쪽이 C빌딩이라는 배치 안내와 중앙 보도라는 한마디, 산책로에서 본 C빌딩이라는 시점 표시, 그리고 빌딩숲이라는 두 글자가 사진 사이에 하나씩 놓여 있다.

맨 끝에는 부지 선정과 C빌딩 건축 과정이라는 줄이 있다. 완성된 모습을 먼저 다 보여 준 뒤 마지막에 과정 화면을 붙이는 순서인데, 이 서버의 건축 글에서 자주 보이는 구성이다.

부지 선정이 첫 단계로 적혀 있다는 점은 그냥 지나칠 대목이 아니다. 자기 땅에 짓는다면 어디에 세울지가 곧 설계의 일부겠지만, 남의 도시 안 오피스 구역에 짓는 경우에는 비어 있는 자리를 먼저 찾아야 하고 그 자리의 크기가 건물의 크기를 정한다. 건축 과정 화면 앞에 부지 선정이 놓인 순서가 그 사정을 그대로 보여 준다.

산책로에서 올려다본 오피스
산책로에서 올려다본 오피스© Hipass

댓글은 한 채를 지목했다. 곡선이 인상적인 C빌딩이라는 말이었는데, 답에는 자랑 대신 고생이 적혀 있었다. C빌딩을 짓다가 다시 짓고 싶은 마음이 몇 차례나 들었다는 것이었다. 블록을 하나씩 쌓아 곡면을 만들어야 하는 재료에서 곡선은 가장 손이 많이 가는 형태다.

지면에 실은 두 화면이 이 구역의 성격을 보여 준다. 하나는 두 건물 사이를 위에서 내려다본 것으로 짙푸른 유리 외벽이 좌우 대칭으로 마주 서고 그 바닥에 잔디와 산책로가 깔려 있으며, 다른 하나는 같은 자리에서 위를 올려다본 것으로 초록 잎 블록이 화면의 절반을 덮는다. 사무실이 들어차는 구역인데 사진의 절반이 나무다.

02빈 오피스 부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같은 날, 같은 사람이 문의 게시판에 짧은 글을 하나 올렸다. 제목은 청라특별시 오피스구역 부족이었고 본문은 한 문장을 두 번 적은 것이 전부였다. 빈 오피스 부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댓글에서 이것이 혼자만의 사정이 아님이 드러난다. 자기도 그날 오피스 두 개를 지으려 했는데 부지가 없어서 하나만 짓고 나머지는 다른 도시에 짓고 있다는 말이 붙었고, 저번 주쯤 전례 없이 여럿이 달라붙어 부지를 마흔 개 언저리 만들었는데 벌써 다 녹았다는 한탄이 이어졌다. 다시 부지를 만들러 가겠다는 말이 그 아래 달렸고, 갑자기 죄송해진다는 말과 함께 자기가 열 개는 지었다는 자백이 마지막에 붙었다.

도시를 짓는 사람보다 건물을 짓는 사람이 많으면 이런 일이 생긴다. 부지는 도시 쪽이 만들어야 하고 건물은 누구나 올릴 수 있으니, 부지가 만들어지는 속도와 채워지는 속도가 맞지 않으면 짓겠다는 사람이 지을 자리를 찾지 못한다.

03E와 F

완성된 건물 안에서 본 바깥
완성된 건물 안에서 본 바깥© Hipass

이튿날 E빌딩과 F빌딩이 함께 올라왔다. 구성은 앞 글과 같아서 건물 하나에 화면 몇 장, 그다음 산책로, 다시 건물 하나에 화면 몇 장, 다시 산책로 순서다. 지면에 실은 세 번째 화면은 그중 하나인데, 완성된 건물 안에서 창틀 너머로 바깥을 내다본 구도다. 흰 창틀 선이 화면을 세로로 나누고 그 너머에 마름모 무늬 외벽의 건물과 아래쪽 거리가 보인다.

사진이 끝난 자리에 문단이 하나 붙어 있다. 블록 서버에서 그동안 건축을 하면서 다양한 방법도 시도해 보고 자치시까지 구상하고 있었지만, F빌딩을 마지막으로 학업 때문에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과 여러분들 번창하시라는 인사가 이어진다.

답은 세 줄이었다. E빌딩 디자인이 좋다는 말과 안녕히 가시라는 말이 한 사람에게서 나란히 나왔고, 멋지다는 말이 그 아래 붙었으며, 창문에 있는 하얀 선은 무슨 질감 자료를 쓴 것이냐는 질문이 마지막에 달렸다.

건축에 대한 질문이 인사 뒤에 붙는 것은 이 게시판에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떠난다는 말과 어떻게 만들었느냐는 물음이 같은 자리에 놓여 있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남아 있지 않다. 창문의 흰 선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결국 확인되지 않은 채로 지면의 세 번째 화면에 그대로 남아 있다.

04여섯 채와 산책로

여드레 사이에 알파벳 여섯 자가 채워졌다. 자치시를 구상하고 있었다는 말이 마지막 글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오므로 이 사람이 어떤 도시를 만들려 했는지는 그 한 줄이 전부이고, 대신 남은 것은 오피스 여섯 채와 그 사이를 지나는 산책로다.

이 매거진은 봄호에서 이 서버의 도시 등록 제도를 다뤘다. 도시를 얻으려면 남의 도시에 먼저 열 채를 지어 실적으로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는 제도였는데, 여기서는 그 실적이 여섯 채에서 멈춘 채로 남았다. 다만 건물은 서 있고 산책로는 그대로이며, 부지가 모자라 다른 사람이 지을 자리를 찾던 그 구역에 여섯 자리가 채워져 있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건물 순서·날짜·인용·부지 부족 문답은 원문 그대로다. 활동 중단의 사유는 본인이 밝힌 한 줄(학업) 외에 어떤 것도 덧붙이지 않았다(STYLE-GUIDE 3-3)
  • 02절 마지막 문단('부지는 도시 쪽이 만들어야 하고…')은 봄호에서 정리한 제도를 근거로 한 편집부 설명이다
  • 04절의 '실적이 여섯 채에서 멈춘 채로 남았다'는 봄호가 정리한 등록 조건과 이 연재의 결과를 나란히 놓은 것이며, 이 사람이 도시 등록을 실제로 신청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자치시까지 구상하고 있었지만'이라는 본인의 말이 유일한 근거다
  • 사진 묘사(좌우 대칭의 유리 외벽과 바닥 녹지, 잎 블록에 덮인 올려다본 구도, 창틀 너머의 마름모 무늬 외벽)는 지면에 실은 세 장에 보이는 범위다
  • 01절의 '블록을 하나씩 쌓아 곡면을 만들어야 하는 재료에서 곡선은 가장 손이 많이 가는 형태다'가 편집부 논평이다
  • [서버문의] 게시판 글을 근거로 썼으나, 회원을 지목한 갈등 사안이 아니라 부지 수급에 대한 문의와 그에 달린 정보성 답변만 사용했다(STYLE-GUIDE 3-2 단서)
  • 제도 근거: 2020 봄호 [자치시를 신청합니다](../2020-spring/mc-jachisi.md) — 도시 등록 조건(주택 여섯 동·오피스 네 동)과 800블록 상한.
  • 지면 미게재: 서버 닉네임, 질감 자료의 실명(텍팩→질감 자료). 게임명은 본문에 명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