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명이 초심으로 돌아갔습니다
9월, 마인크래프트 서버의 한 신도시 아파트 단지 안에 초등학교가 문을 열고 입학식이 열렸다. 참석자는 저마다 서버에서 도시와 병원과 신문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사진 끝에는 열세 명이 초심으로 돌아갔다는 한 줄이 적혀 있다.
마인크래프트 서버의 도시들은 문서로 시작한다. 신청서를 내고 좌표를 적고 도로망을 그려 허가를 받은 뒤에야 땅이 생기고, 그렇게 생긴 도시는 행정보고서를 내고 계획도를 올리고 인구를 집계한다. 이 매거진이 블록 편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반복해서 확인한 것이 그 절차였다.
그런데 절차가 갖춰지고 나면 그 안에서 생활이 벌어진다. 도시가 서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학교가 문을 열면, 그다음에는 그 학교를 쓰는 장면이 필요해진다. 9월에 올라온 글 하나가 그 장면을 정면으로 보여 준다. 제목은 북강초등학교 입학식이었다.
01화명시 별빛신도시 안에
본문의 첫 줄은 주소다. 북강초등학교, 화명시 별빛신도시 래미안 에듀플라츠 내 개교. 도시 이름과 신도시 이름과 아파트 단지 이름이 차례로 나오고 그 안에 학교가 있다는 순서인데, 학교가 먼저 있고 단지가 들어선 것이 아니라 단지 계획 안에 학교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틀 뒤에 올라온 같은 사람의 글이 그 단지를 다룬다. 단지 전경과 배치가 먼저 나오고 주민 시설이 이어지는데, 호수와 놀이터와 작은 문고와 정원이 차례로 소개되고 그다음이 중학교와 초등학교다. 어린이 전용이라고 괄호를 친 미로가 그 뒤에 붙는다.
글의 끝은 분양 안내를 흉내 낸 문장들이다. 학교와의 접근성, 충분한 녹지와 그늘, 자녀 교육에 안성맞춤, 후문과 정문과의 동선, 탁 트인 뷰까지. 그리고 매매와 전세와 월세 가격이 숫자로 적혀 있다.
단지는 그전부터 지어지고 있었다. 나흘 앞서 올라온 글의 제목에는 공정률이 괄호 안에 백분율로 적혀 있는데, 완공 보고가 아니라 진행 보고를 먼저 올리는 방식이다. 서버 안에서 아파트 한 단지가 올라가는 동안 그 과정이 몇 차례에 걸쳐 게시판에 보고되고 있었다.
지면에 실은 화면에서 단지는 짙은 색 고층 아파트 여러 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왼쪽으로 여러 갈래의 철길이 지나가며 오른쪽에는 노란 중앙선을 그은 넓은 도로가 붙어 있다. 광고 문구에 적힌 접근성과 동선이 화면에서도 확인되는 배치다.
02혼자 지은 단지가 아니다
이 단지 역시 한 사람의 작업이 아니다. 본문 맨 앞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고맙다는 한마디가 놓여 있고, 댓글에서는 채색 작업을 도와주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라는 사과가 나온다.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고, 결국 도색은 했다는 말이 그 아래 붙었다.
역할 분담이 오간 대목도 그대로 남아 있다. 조경 쪽으로는 도와줄 수 있다면서, 아파트 외벽 같은 것은 다른 사람이 계획했으니 조경을 돕겠다는 말이었다. 아파트 한 단지에 계획하는 사람과 외벽을 맡는 사람과 채색을 맡는 사람과 조경을 맡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03입학사진, 진짜 입학사진
입학식 글은 학교 행사 앨범의 구성을 그대로 따랐다. 첫 사진에는 입학사진이라고 적고 괄호 안에 준비라고 써 두었으며, 그다음 사진에 진짜 입학사진이라고 적었다. 준비 화면과 실제 화면을 나란히 놓는 것은 실제 학교 행사 사진첩에서도 흔한 구성이다.
지면에 실은 화면이 그 단체 사진이다. 벽돌과 파란 패널로 마감한 학교 건물 앞에 흰 계단과 기둥이 있고, 그 앞과 옆으로 여러 캐릭터가 앉거나 서 있다. 저마다 다른 외형을 하고 있어서 갑옷을 입은 쪽도 있고 검을 든 쪽도 있으며, 앞쪽 모래밭에 그림자가 길게 떨어진다.
사진 사이사이에는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다. 참석자를 한 명씩 짚어 준 것인데, 이 서버에서 도시를 맡고 병원을 세우고 신문을 내고 아파트를 짓던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서버 안에서 각자 자기 몫을 하던 이들이 같은 날 같은 학교 마당에 모여 신입생 사진을 찍었다.

중간에는 쉬는 시간이 있고 수업 준비 중이라는 화면이 나오는데, 괄호 안에 무술이라고 적혀 있다. 초등학교 시간표에 없는 과목이지만 이 세계에서는 캐릭터가 검을 들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이 행사가 다른 데서 가져올 수 없는 것을 하나 갖고 있다면 배경이다. 학교 건물이 실제로 그 자리에 지어져 있고, 그 학교가 속한 단지가 그 옆에 서 있으며, 단지를 지나는 철길과 도로도 이미 놓여 있다. 입학식을 하려고 무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다 지어진 곳에 사람들이 모였다.
사진이 끝난 자리에 한 줄이 놓인다. 총 열세 명이 초심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지막 글자의 받침이 빠진 채로 적혀 있다.
042학기 현장체험학습
글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지금부터는 2학기 현장체험학습이라는 줄이 나오고, 괄호 안에 출발지와 목적지가 화살표로 연결되어 있다. 서버 안의 한 병원에서 출발해 어느 섬으로 가는 일정이다.
입학식을 하고 곧바로 2학기 현장체험학습으로 넘어가는 순서는 학사 일정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이 행사에 필요한 것은 학기의 순서가 아니라 모일 구실이었고, 학교 건물과 병원과 섬은 그때 이미 서버 안에 다 지어져 있었다.
이 계절에 같은 사람이 올린 다른 글들을 보면 도시를 새로 승인받고 개발 일지를 쓰고 역을 짓고 있었다. 승인 며칠 뒤의 근황을 올리고, 구청 건물을 지어 개발 일지 첫 회로 삼고, 다른 도시의 역을 본떠 자기 도시의 역을 짓는 공사 현황을 올리던 시기다.
서버의 제도와 문서가 한창 돌아가던 그 계절에 열세 사람이 하루를 내어 초등학생이 되어 보았고, 사진 끝에 붙은 한 줄이 그 하루를 요약한다.
총13명이 초심으로 돌아갔습니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