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로 90번지
봄 특집호가 다룬 블록 한옥 마을에 여름 끝에 다시 손이 갔다. 사흘 사이에 세 편이 올라왔고, 담과 부속채와 가옥 두 채가 새로 섰다. 옆 공원을 짓는 사람에게 허락을 받아 배너를 얻어 오고, 집 한 채를 소개하면서 도로명과 번지수를 먼저 적는다.
8월 22일 새벽, 블록 게시판에 한옥 사진 열 장이 올라왔다. 제목 아래 첫 줄은 오랜만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앞서 진행된 두 작업의 기운을 이어 가고자 오랜만에 황남동에 손을 대 보았다는 것이었다.
봄 특집호에서 이 매거진은 같은 사람이 쌓은 읍성을 다뤘다. 그 앞에 능참봉마을이 있었고, 4월에 가옥 몇 채와 갈비집과 초등학교가 지어진 뒤로 마을 쪽 소식은 한동안 없었다.
01담부터 손을 댔다
첫 편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갈비집 뒷골목의 풍경이고 그다음이 간단한 부속채다. 그러고 나서 담이 나온다. 왠지 손대고 싶어서 만들어 본 화려한 담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고, 그 아래에 바람이 하나 적혀 있다. 문양이 있는 블록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블록으로 짓는 일에서 재료의 종류는 그대로 표현의 한계가 된다. 벽돌과 나무와 돌의 가짓수가 정해져 있어서 담에 무늬를 넣으려면 있는 블록을 조합해 짜야 하고, 그래서 화려한 담 한 장 뒤에 그런 문장이 붙는다.
벤치 자리에는 괄호가 달렸다. 쉬어 갈 수 있는 벤치라고 적어 놓고 괄호 안에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마을 전체를 찍은 화면에는 다른 종류의 단서가 붙었는데, 금관로에서 본 모습인데 공사 중인 곳이 많아서 어수선하다는 말이었다.

댓글은 두 줄이었다. 마을 이름을 한 글자 비틀어 부르는 농담이 달렸고, 슬프다는 답이 돌아왔다.
02허락 하에 얻어왔습니다
같은 날 오후에 두 번째 편이 올라왔다. 첫 문장이 이 마을의 성격을 보여 준다. 다른 사람이 작업 중인 비각공원 옆에 아담한 집 한 채를 지어 봤다는 것이었다.
서버를 함께 쓰는 도시에서는 옆자리에 다른 사람의 공사가 붙는다. 그래서 이 편의 마지막 화면은 자기가 지은 집이 아니라 그 집과 옆 공원이 함께 들어간 구도이고, 캡션도 공원과 함께라고만 적혀 있다.
중간에 한 줄이 더 있다. 영빈관에 사용된 배너를 허락 하에 얻어 왔다는 것이었다. 다른 건물에 쓰인 장식을 가져오면서 허락을 받았다고 굳이 적어 둔 대목인데, 같은 서버 안에서 자재가 오갈 때 이 게시판이 어떤 표기를 남기는지 보여 준다.
댓글에서 공원을 짓던 사람이 자기 공원의 이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적었고, 이름도 모르면서 수주를 받았다니 놀랍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옥이 현실적이고 아름답다는 말에는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에 신경을 좀 써야겠다는 답이 붙었다.
영빈관에 사용된 배너를
허락 하에 얻어왔습니다.
03지산시 금관로 90
이틀 뒤의 세 번째 편은 서른두 장이었다. 첫 줄은 자백에 가깝다. 외관 꾸미기에 맛이 들린 것 같다고 그는 적었고, 물음표를 괄호 안에 넣어 외관이라는 말에 스스로 단서를 달았다.
두 번째 줄이 이 연재에서 새로 나타난 형식이다. 지산시 금관로 90에 위치한 가옥이라는 소개였다. 집을 무엇이라 부르지 않고 어디에 있는지로 먼저 적은 것인데, 이 마을에는 이미 금관로라는 도로가 있고 황남시장으로 가는 길이 있어서 번지수를 붙일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소개는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순서다. 정면에서 본 모습, 대문 앞, 대문을 통과하면 나오는 한옥으로 둘러싸인 마당. 그다음에 방들이 하나씩 나온다. 길가 쪽 작은 방과 북쪽 큰 방이 나오고, 큰 방 옆에 전통 주방이 있다는 설명이 붙는다.

04불이 타고 있는 아궁이
주방 다음의 세 줄이 이 편에서 가장 짧고 가장 자세하다. 불이 타고 있는 아궁이라는 한 줄, 뭔지 모르지만 만들어 둔 무언가라는 한 줄, 이것저것 올라가 있는 찬장이라는 한 줄이다. 지어 놓고도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하는 물건이 집 안에 있다는 것을 그대로 적어 둔 셈인데, 인테리어에 신경 써야겠다던 이틀 전의 답글이 여기서 실행된 모양새다.
그다음은 대청마루에서 바라보는 푸른 마당이고, 서쪽에 딸린 사랑채로 건너간다. 세 개로 나뉜 것 같지만 방은 두 개뿐이라는 설명이 붙고, 남쪽 작은방을 소개하면서 큰 방은 못 찍었다는 말이 딸린다.

마지막 몇 장은 다시 바깥으로 나간다. 마당의 핵심인 작은 정원이라는 설명이 붙은 화단, 바깥으로 창이 나 있다는 벽면, 그리고 주방 쪽에서 뒷골목으로 통하는 문이다. 첫 편에서 갈비집 뒷골목으로 시작한 사흘이 세 번째 편의 뒷골목 문에서 닫히는데, 그사이 담과 부속채와 가옥 두 채가 늘었다.
05주소가 붙는 마을
이 마을의 4월 작업은 이 매거진의 봄 특집호에서 한 차례 바로잡힌 적이 있다. 초고에서 단독 작업으로 썼다가 원문을 대조해 고쳤는데, 한옥을 지은 사람과 재조합해 배치한 사람과 갈비집 인테리어를 맡은 사람이 각각 달랐다.
8월의 세 편에도 같은 성질의 표기가 남아 있다. 옆 공원은 다른 사람이 작업 중이고, 배너는 허락을 받아 얻어 왔으며, 마지막 화면은 두 사람의 작업이 나란히 들어간 구도다. 각자 다른 맵에서 혼자 완성해 보여 주는 쪽과 달리, 이쪽에서는 누구에게 무엇을 받았는지가 본문에 적힌다.
세 편의 끝에는 매번 같은 한 줄이 붙어 있다. 서버 안에서 이 마을로 곧장 이동하는 명령어이고, 사진을 보고 직접 가 볼 수 있게 적어 둔 안내다. 그리고 세 번째 편에서 처음으로 집 한 채에 도로명과 번지수가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