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es — 2019-winter

흰 겨울을 꿈꾸다

가을에 철도 중심으로 자라던 들안에 눈이 내렸다. 'Early winter', 'Dreamlight', 'Happy snowy day' — 한 계절을 눈으로만 기록한 도시의 겨울, 그리고 댓글에서 오간 동아시아 짬뽕 논쟁과 마지막 날의 기후 변경까지 읽는다.

흰 겨울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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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호에서 우리는 공항을 완성하고 아흐레 만에 새 도시에 삽을 뜬 사람을 다뤘다. 그가 시작한 도시의 이름은 들안이었고, 방향은 철도 중심이었다.

겨울에 그 도시에 눈이 내렸다. 그리고 그는 세 번, 눈만 찍었다.

01세 개의 제목

12월에 들안에서 올라온 글은 세 편이고, 제목은 이랬다.

Winter Dream, Early winter.
Winter, Dreamlight.
Happy snowy day!

세 제목 모두 영어였고, 모두 겨울이었으며, 도시의 진행 상황은 한 줄도 알려 주지 않는다. 역이 몇 개 늘었는지 어느 구역을 새로 열었는지 말하지 않고 다만 눈이 내렸다고만 한다. 도시를 짓는 게시판에서 이런 제목은 드문 편인데, 대개는 무엇을 지었는지부터 밝히기 때문이다.

본문도 제목만큼 짧았다. 첫 글에는 도시 이름 아래에 겨울과 마지막 계절과 겨울꿈을 나란히 늘어놓은 영어 한 줄이 있었고, 두 번째 글에는 크리스마스이브와 꿈꾸기 위한 흰 겨울이라는 한 줄이 있었다. 문법을 따지면 어긋난 데가 있지만 뜻은 분명하다.

마지막 글의 본문만 두 줄로 조금 길어졌다. 도시의 불빛과 눈 내리는 밤을 적고, 추운 날씨가 사람을 가깝게 만든다는 말을 덧붙였다. 세 글을 통틀어 반복되는 낱말은 눈과 겨울과 꿈, 그리고 도시 이름뿐이다.

02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사진) Happy snowy day. 자갈과 지붕에 눈이 얇게 앉았다.

마지막 글에 처음 달린 댓글은 감탄이 아니라 불평에 가까웠다. 뭔가 눈 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답은 솔직했다. 너무 새하얀 나머지 건축하면서도 힘들었다고 그는 적었다.

사진을 보면 그 말이 이해된다. 선로 자갈과 승강장 가장자리와 건너편 지붕에 눈이 얇게 얹혀 있을 뿐, 도시를 통째로 덮은 흰 벌판 같은 것은 없다. 남색으로 가라앉은 하늘과 잎을 다 떨군 가로수가 겨울을 대신 알린다. 눈이 소복이 쌓인 어느 겨울날 들안신도시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그는 다른 댓글에 적었는데, 화면의 눈은 소복이라는 말에 한참 못 미친다.

눈이 얇게만 오는 화면에서 계절을 만드는 것은 눈이 아니라 빛이다. 색이 빠지고 형태만 남으면 지붕의 각도와 선로의 직선과 건물이 늘어선 리듬이 드러난다. 지난 겨울호에서 우리는 눈 덮인 경복궁을 보며 처마 선이 더 또렷해진다고 적었는데, 들안에서는 눈보다 잿빛이 그 일을 했다.

눈 자체를 두고도 말이 오갔다. 하늘에서 고체화된 석유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무섭다는 댓글에 그는 옛 노래의 첫 소절로 받았고, 눈은 겨울밤이 제일 감성적인 것 같다는 말도 다른 자리에 남겼다. 사하라에도 눈이 내리기를 바란다는 농담이 붙었다가 무슨 소리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03동아시아 짬뽕

(사진) Early winter. 기와지붕에만 눈이 앉은 골목.

댓글에서 가장 자주 나온 화제는 이 도시가 어느 나라냐는 것이었다. 매우 한국스러운 와중에 일본스러움을 살짝 끼얹었다는 평에 그는 두 분위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 답했고, 한국적이면서 한국적이지 않으면서 한국적이라는 평에는 동아시아 짬뽕 콘셉트라고 받았다. 조선은 아니라는 농담에는 대한이라고만 답했다.

사진이 그 문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른 겨울 사진의 한가운데에는 초록 판자를 두른 낡은 목조 건물이 있고 그 처마에 한국 대형 서점의 간판이 걸려 있는데, 바로 옆 타일 건물 1층에는 일본계 편의점이 들어서 있다. 눈은 목조 건물의 기와에만 얇게 앉았다.

한국적이면서 한국적이지 않으면서 한국적이군요.
동아시아 짬뽕 콘셉트랄까요.

첫 글에는 중앙선을 타고 지나가며 보는 서울 같다는 댓글이 달렸고, 그는 무슨 분위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서울이니 칭찬이겠다고 받았다. 열차 이야기도 이어졌다. 한국 열차 소품이 나오기를 기원한다는 그의 말에, 그 옆에서는 평판차가 나오기를 기원한다는 말이 붙었다. 지면에 실린 세 장이 모두 철길을 끼고 있는 도시에서 이 바람은 사소한 것이 아니다.

04테마를 어둡게 하는 법

두 번째 글의 댓글에는 배우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저런 건 어떻게 하느냐고 묻고, 자기도 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돌아온 첫 답은 탈락이라는 농담이었지만, 곧 요령이 이어졌다.

보고 따라 하고 또 보고 따라 했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다음은 목록이었다. 창작마당을 자주 구경하면서 마음에 드는 테마나 색보정 값을 찾아볼 것, 조명 보정 값도 조절해 볼 것, 오래 한 사람들이 풀어 놓은 설정값 꾸러미를 적용해 볼 것.

물어본 쪽의 고민은 구체적이었다. 자기가 만들면 풀이든 집이든 분위기든 전부 밝아진다고 했다. 겨울 사진의 그 잿빛과 남색은 눈이 만든 색이 아니라 그 설정값들이 만든 색이다.

05열대에서 제주도로

세 번째 눈은 12월 31일에 내렸다. 그리고 같은 날, 그는 글을 하나 더 올렸다. 제목은 수안, 새 출발이었다.

수안은 여름 내내 활주로 하나로 버티던 공항의 도시이자 가을에 공항동을 얻으며 완성된 도시다. 그 도시로 돌아가면서 그는 공항부터 차근차근 다시 시작한다고 했고, 콘셉트도 바꾼다고 밝혔다. 열대에서 제주도와 비슷한 기후로.

완성했다고 적었던 도시의 기후를 통째로 갈아 끼우는 결정이다. 본문에 적은 영어 한 줄도 그 말과 나란히 놓인다. 나의 작은 겨울, 열대가 아닌 휴양지.

댓글에서는 공항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물음이 나왔다. 완성품으로 나온 자재를 쓰는지 건물부터 탑승교까지 조립하는지 묻자 건물은 다 조립해서 쓴다는 답이 돌아왔고, 물어본 쪽은 이걸 보니 자기도 다 때려치우고 공항부터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자기도 그 조립 도구부터 익혀야겠다는 말에 그는 자기 도시에는 이상하게도 그 도구가 별로 필요 없더라고 답했다. 맵 테마를 알려 달라는 사람에게는 쓰고 있는 공식 테마의 이름을 그대로 일러 줬다.

지난 겨울호의 송정이 1년 9개월 만에 문을 열었을 때 그 재회는 폐허를 확인하는 일이었지만, 눈이 내린 마지막 날 이 사람은 멀쩡히 완성된 도시를 다시 열어 기후부터 바꾸기로 했다. 새로운 20년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댓글에 그가 붙인 답이 기후 변경 소식이었다.

눈 사진에 달린 마지막 문답은 게임 밖의 것이었다. 이번 겨울에도 눈이 올까요. 왔으면 좋겠네요. 들안에는 이미 내린 뒤였다.

해 질 무렵의 복선 철도. 자갈과 승강장 가장자리, 건너편 지붕에 눈이 얇게 얹혀 있다.
Happy snowy day. 자갈과 지붕에 눈이 얇게 앉았다.
이른 겨울의 낮은 상가 골목. 초록 판자를 두른 목조 건물의 기와지붕에 눈이 얇게 앉았고, 옆 건물 1층에는 편의점이 들어서 있다.
Early winter. 기와지붕에만 눈이 앉은 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