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겨울을 꿈꾸다

가을에 철도 중심으로 자라던 들안에 눈이 내렸다. 'Early winter', 'Dreamlight', 'Happy snowy day' — 한 계절을 눈으로만 기록한 도시의 겨울, 그리고 댓글에서 오간 동아시아 짬뽕 논쟁과 마지막 날의 기후 변경까지 읽는다.

Winter, Dreamlight
Winter, Dreamlight© 강

지난 가을호에서 우리는 공항을 완성하고 아흐레 만에 새 도시에 삽을 뜬 사람을 다뤘다. 그가 시작한 도시의 이름은 들안이었고, 방향은 철도 중심이었다.

겨울에 그 도시에 눈이 내렸다. 그리고 그는 세 번, 눈만 찍었다.

01세 개의 제목

12월의 게시글 제목을 늘어놓으면 그것 자체가 한 계절의 기록이 된다.

Winter Dream, Early winter.
Winter, Dreamlight.
Happy snowy day!

세 제목 모두 영어였고, 모두 겨울이었으며, 도시의 진행 상황은 한 줄도 알려 주지 않는다. 역이 몇 개 늘었는지 어느 구역을 새로 열었는지 말하지 않고 다만 눈이 내렸다고만 한다. 도시를 짓는 게시판에서 이런 제목은 드문 편인데, 대개는 무엇을 지었는지부터 밝히기 때문이다.

본문도 제목만큼 짧았다. 첫 글에는 도시 이름 아래에 겨울과 마지막 계절과 겨울꿈을 나란히 늘어놓은 영어 한 줄이 있었고, 두 번째 글에는 크리스마스이브와 꿈꾸기 위한 흰 겨울이라는 한 줄이 있었다. 문법을 따지면 어긋난 데가 있지만 뜻은 분명하다.

마지막 글의 본문만 두 줄로 조금 길어졌다. 도시의 불빛과 눈 내리는 밤을 적고, 추운 날씨가 사람을 가깝게 만든다는 말을 덧붙였다. 세 글을 통틀어 반복되는 낱말은 눈과 겨울과 꿈, 그리고 도시 이름뿐이다.

02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Early winter
Early winter© 강

마지막 글에 처음 달린 댓글은 감탄이 아니라 불평에 가까웠다. 뭔가 눈 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답은 솔직했다. 너무 새하얀 나머지 건축하면서도 힘들었다고 그는 적었다.

사진을 보면 그 말이 이해된다. 선로 자갈과 승강장 가장자리와 건너편 지붕에 눈이 얇게 얹혀 있을 뿐, 도시를 통째로 덮은 흰 벌판 같은 것은 없다. 남색으로 가라앉은 하늘과 잎을 다 떨군 가로수가 겨울을 대신 알린다. 눈이 소복이 쌓인 어느 겨울날 들안신도시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그는 다른 댓글에 적었는데, 소복이라는 말과 화면 사이의 거리가 이 도시의 겨울을 그대로 보여 준다.

눈이 얇게만 오는 화면에서 계절을 만드는 것은 눈이 아니라 빛이다. 색이 빠지고 형태만 남으면 지붕의 각도와 선로의 직선과 건물이 늘어선 리듬이 드러난다. 지난 겨울호에서 우리는 눈 덮인 경복궁을 보며 처마 선이 더 또렷해진다고 적었는데, 들안에서는 눈보다 잿빛이 그 일을 했다.

눈 자체를 두고도 말이 오갔다. 하늘에서 고체화된 석유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무섭다는 댓글에 그는 옛 노래의 첫 소절로 받았고, 눈은 겨울밤이 제일 감성적인 것 같다는 말도 다른 자리에 남겼다. 사하라에도 눈이 내리기를 바란다는 농담이 붙었다가 무슨 소리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03동아시아 짬뽕

Happy snowy day
Happy snowy day© 강

댓글에서 가장 자주 나온 화제는 이 도시가 어느 나라냐는 것이었다. 매우 한국스러운 와중에 일본스러움을 살짝 끼얹었다는 평에 그는 두 분위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 답했고, 한국적이면서 한국적이지 않으면서 한국적이라는 평에는 동아시아 짬뽕 콘셉트라고 받았다. 조선은 아니라는 농담에는 대한이라고만 답했다.

사진이 그 문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른 겨울 사진의 한가운데에는 초록 판자를 두른 낡은 목조 건물이 있고 그 처마에 한국 대형 서점의 간판이 걸려 있는데, 바로 옆 타일 건물 1층에는 일본계 편의점이 들어서 있다. 눈은 목조 건물의 기와에만 얇게 앉았다.

한국적이면서 한국적이지 않으면서 한국적이군요.
동아시아 짬뽕 콘셉트랄까요.

첫 글에는 중앙선을 타고 지나가며 보는 서울 같다는 댓글이 달렸고, 그는 무슨 분위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서울이니 칭찬이겠다고 받았다. 열차 이야기도 이어졌다. 한국 열차 소품이 나오기를 기원한다는 그의 말에, 그 옆에서는 평판차가 나오기를 기원한다는 말이 붙었다. 지면에 실린 세 장이 모두 철길을 끼고 있는 도시에서 이 바람은 사소한 것이 아니다.

04테마를 어둡게 하는 법

두 번째 글의 댓글에는 배우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저런 건 어떻게 하느냐고 묻고, 자기도 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돌아온 첫 답은 탈락이라는 농담이었지만, 곧 요령이 이어졌다.

보고 따라하고 보고 따라했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다음은 목록이었다. 창작마당을 자주 구경하면서 마음에 드는 테마나 색보정 값을 찾아볼 것, 조명 보정 값도 조절해 볼 것, 오래 한 사람들이 풀어 놓은 설정값 꾸러미를 적용해 볼 것.

물어본 쪽의 고민은 구체적이었다. 자기가 만들면 풀이든 집이든 분위기든 전부 밝아진다고 했다. 겨울 사진의 그 잿빛과 남색은 눈이 만든 색이 아니라 그 설정값들이 만든 색이고, 그래서 배우려면 도시가 아니라 설정을 물어야 한다.

05열대에서 제주도로

세 번째 눈은 12월 31일에 내렸다. 그리고 같은 날, 그는 글을 하나 더 올렸다. 제목은 수안, 새 출발이었다.

수안은 여름 내내 활주로 하나로 버티던 공항의 도시이자 가을에 공항동을 얻으며 완성된 도시다. 그 도시로 돌아가면서 그는 공항부터 차근차근 다시 시작한다고 했고, 콘셉트도 바꾼다고 밝혔다. 열대에서 제주도와 비슷한 기후로.

완성했다고 적었던 도시의 기후를 통째로 갈아 끼우는 결정이다. 본문에 적은 영어 한 줄도 그 말과 나란히 놓인다. 나의 작은 겨울, 열대가 아닌 휴양지.

댓글에서는 공항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물음이 나왔다. 완성품으로 나온 자재를 쓰는지 건물부터 탑승교까지 조립하는지 묻자 건물은 다 조립해서 쓴다는 답이 돌아왔고, 물어본 쪽은 이걸 보니 자기도 다 때려치우고 공항부터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자기도 그 조립 도구부터 익혀야겠다는 말에 그는 자기 도시에는 이상하게도 그 도구가 별로 필요 없더라고 답했다. 맵 테마를 알려 달라는 사람에게는 쓰고 있는 공식 테마의 이름을 그대로 일러 줬다.

지난 겨울호의 송정이 1년 9개월 만에 문을 열었을 때 그 재회는 폐허를 확인하는 일이었지만, 눈이 내린 마지막 날 이 사람은 멀쩡히 완성된 도시를 다시 열어 기후부터 바꾸기로 했다. 새로운 20년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댓글에 그가 붙인 답이 기후 변경 소식이었다.

눈 사진에 달린 마지막 문답은 게임 밖의 것이었다. 이번 겨울에도 눈이 올까요. 왔으면 좋겠네요. 들안에는 이미 내린 뒤였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세 제목, 본문 영어 세 줄, 댓글 인용은 원문 그대로
  • [10908] 본문 두 줄은 노랫말체 영어여서 지면에 직접 옮기지 않고 요지만 풀어 적었다
  • 사진 묘사(건널목과 전동차, 기와지붕의 얇은 눈, 목조 건물의 서점 간판과 옆 건물의 편의점, 복선 선로의 자갈)는 지면에 실은 세 장에 보이는 범위
  • '계절을 만드는 것은 눈이 아니라 빛', '소복이라는 말과 화면 사이의 거리', '배우려면 도시가 아니라 설정을 물어야 한다' 등 해석은 편집부 논평
  • 마지막 문단의 두 줄 문답은 [10908] 댓글 그대로이며, '들안에는 이미 내린 뒤였다'만 편집부 문장이다
  • 여름호 [수안국제공항] · 가을호 [수안의 완성, 들안의 시작] 참조. 2018 겨울호 [송정] 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