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와 대전, 지방의 겨울

아주 옛날의 대구 중앙로, 시민과 함께 새로워지는 대전, 인자수성의 수성구. 가을에 서울 지하철 급행화로 시작한 연재가 겨울에 지방 도시로 내려가며, 스크린샷마다 관공서 홍보물 같은 표지를 두르기 시작한 과정을 읽는다.

옛 대구 중앙로
옛 대구 중앙로© 한양

지난 가을호에서 우리는 스팀에서 가입한 신입이 서울 지하철 급행화를 게임 속에서 먼저 시공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그 연재가 겨울에는 남쪽으로 내려갔다.

01화면에 얹힌 표지들

겨울의 이 연재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도시가 아니라 화면에 얹힌 표지들이다.

중앙로 사진의 왼쪽 위에는 광역시의 로고와 영문 표기가 관공서 문서처럼 박혀 있고, 화면 아래에는 지하철 역명판을 본뜬 주황색 띠가 가로로 깔려 있다. 왼쪽에 명덕, 가운데 원 안에 1호선을 뜻하는 숫자와 반월당, 오른쪽에 중앙로. 대전 사진에는 하늘색 붓글씨체의 도시 이름이 한가운데에 빛나고, 수성구 사진에는 도시 이름 아래로 표어 넉 자가 붓글씨로 얹혀 있다.

게임 스크린샷에 이런 것을 두르는 사람은 흔치 않다. 대개는 화면을 그대로 올리거나 기껏해야 날짜를 적는데, 이 연재는 매번 지방자치단체가 낸 홍보물의 형식을 흉내 낸다. 도시를 옮겨 짓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도시가 스스로를 내보이는 방식까지 함께 옮겨 왔다.

02아주 옛날의 중앙로

12월의 첫 게시글 중 하나가 그 중앙로였다. 제목에는 아주 옛날이라는 말이 붙었고, 본문은 지명 나열이 전부였다. 대구 반월당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

사진 속 거리는 어둡지 않다. 좁고 깊은 협곡 같은 상가 사이로 간판이 층층이 붙어 있고, 그 사이에 광장이 하나 열려 있다. 간판 가운데는 일본어로 적힌 것도 여럿 섞여 있어, 어느 시절 어느 거리를 옮긴 화면인지 사진만으로는 잡히지 않는다. 기준으로 삼은 시절을 원문은 밝히지 않았고, 편집부도 그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댓글에는 대구 시민이라며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평이 달렸고, 큰 도시 분위기가 좋다는 말도 이어졌다. 다른 댓글은 감상 대신 걱정을 했다. 이렇게 빽빽하면 렉이 걸리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대전도 기대한다는 요청이 붙자 그 옆에 아산도 기대하겠다는 말이 따라붙었고, 그는 대전은 이미 작업 중이니 오래 걸리지 않게 보여 주겠다고 답했다.

03시민과 함께

새로운 대전
새로운 대전© 한양

이틀 뒤에는 대전이 올라왔다. 제목은 새로운 대전, 시민과 함께. 본문은 없었다.

이런 문구는 한국 지방자치단체가 내거는 표어의 어법을 닮았다. 다만 이 표어가 실제 대전시의 것인지, 아니면 그 어법만 빌려 지은 것인지는 원문에 적혀 있지 않다. 확실한 것은 그가 도시 이름 옆에 시민을 세워 두었다는 사실뿐이다.

댓글의 반응은 도시보다 감각에 가까웠다. 이 느낌이 뭔가 익숙하다며 대전의 기운이 솟아난다고 적은 사람이 있었고, 야경이 감동적이라는 말과 대전 하면 그 지역 야구단이라는 외침이 뒤따랐으며, 일주일 전에 대전에 다녀왔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그는 대전의 대표적인 도심 시가의 특징을 더 보완한 뒤 다시 공유하겠다고 두 번에 걸쳐 답했다.

04인자수성

수성구
수성구© 한양

보름 뒤 다시 대구였다. 이번에는 수성구였고, 제목 앞에 인자수성이라는 말이 붙었다.

원문은 이 넉 자를 한자로 함께 적었고, 사진에도 도시 이름 아래에 붓글씨로 쓴 같은 넉 자가 얹혀 있다. 마지막 두 자는 지역 이름 수성(壽城)의 한자 그대로다. 편집부는 이것을 논어의 인자수(仁者壽), 곧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는 구절에 지역 이름을 겹쳐 놓은 말로 읽었다. 다만 이 표어를 실제 자치단체가 쓰고 있는지, 쓴다면 공식 풀이가 무엇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여기까지가 편집부의 독법이다.

본문에는 다른 문구도 있었다. 경상 지역 부의 상징이라는 말과 대한민국 행복 도심이라는 말, 백화점과 방송국 건물을 하나씩 짚은 지명 나열, 그리고 범어 사거리 근처를 다시 하고 있다는 근황. 표어와 지명과 공사 보고가 한 화면에 섞여 있다.

건물과 도로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스스로를 내보이는 방식까지 옮긴다.

이 글에는 짚어 둘 대목이 하나 더 있다. 마지막에 붙은 사진 한 장이 게임 화면이 아니었다. 어느 건물이냐는 물음에 그는 사진가의 이름과 사회관계망 주소를 밝히며 실제 대구를 찍은 작품이라고 답했고, 물어본 쪽은 시티즈가 아니었느냐며 놀랐다.

05모든 광역시

도시 몇 개를 연재하는 것이냐는 물음에 그의 답은 짧았다. 모든 광역시가 같이 발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다 만드시는 것 같다는 말에는 광주가 아직이라고 답했고, 다음은 울산이냐는 물음에는 아름다운 태화강이라고만 받았다. 자기가 사는 달성군은 없느냐는 사람에게는 있을 거라고 했다.

11월의 대구 야경에는 고향이 대구라는 사람이 나타나 어디 사느냐고 서로 물었고, 달서구라는 답에 그는 2호선 역세권이라고 받았다. 드론을 어떻게 그 높이까지 띄웠느냐는 댓글도 있었는데, 답은 지도 전체를 열어 주는 설정을 쓴다는 것이었다. 12월 초에 올린 경도시는 가상의 도시였고, 경도면 교토가 아니냐는 지적에 그는 맞다고 인정했으며, 그 화면의 팸플릿에서 일본 만화 제목을 알아본 사람도 있었다.

한국 도시를 옮겨 짓는 작업은 압도적으로 서울에 쏠려 있다. 이 매거진이 다뤄 온 기사만 봐도 경복궁과 광화문, 여의도 파크원, 서울맵의 능선, 강남, 지하철 급행화가 이어진다. 자료가 많고 알아보는 사람이 많고 랜드마크가 뚜렷하기 때문인데, 대구를 지으면 대구인 줄 알아보는 사람은 훨씬 적다.

그래서 겨울의 이 연재는 눈에 띈다. 알아보는 사람이 적은 도시를, 표어와 역명판과 로고까지 붙여 가며, 광역시를 하나씩 채워 나간다. 가을에 이 사람은 부산의 지형을 보며 지하철이 없다면 이런 지형의 교통 문제를 어떻게 풀겠느냐고 물었다. 그 물음은 서울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제목('아주 옛날의', '시민과 함께', '인자수성')과 [10583] 본문 문구는 원문 그대로
  • '인자수성'의 한자·출전 풀이(仁者壽/논어)는 편집부의 해석이며 원문에 설명이 없다. 실제 대구 수성구가 이 표어를 쓰는지, 쓴다면 공식 풀이가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본문에도 유보를 명시했다. 발행 전 확인 필요
  • '새로운 대전, 시민과 함께'가 실제 대전시 표어인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본문은 '어법을 닮았다'까지만 적었다
  • '한국 도시 재현이 서울에 쏠려 있다'는 이 매거진이 다룬 기사들에 근거한 편집부 관찰
  • 중앙로 화면 묘사(협곡 같은 상가, 층층의 간판, 일본어 간판이 섞여 있는 점, 열린 광장)는 지면에 실은 사진에 보이는 범위. 옛 중앙로의 시대 고증은 원문에 없어 적지 않았다
  • 가을호 [급행화, 게임에서 먼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