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앞을 다듬다

12월 2일의 제목은 '뭘까요'였다. 도로만 얹힌 초록 벌판을 두고 댓글이 알아맞히기를 하다 아흐레 뒤 서울역 앞으로 밝혀지기까지, 그리고 그 앞의 가을 넉 달까지. 도로의 기하학에 매달린 한 계절의 기록.

어제 만들던 교차로
어제 만들던 교차로© ㅊㅅ

12월 2일, 게시판에 사진 다섯 장이 올라왔는데 제목은 뭘까요였고 본문은 다섯 글자였다. 머리아프네여.

사진에 도시는 없었고, 허허벌판인 초록 지면 위에 회색 도로만 여러 겹으로 얹혀 있었다. 램프가 갈라졌다 다시 합쳐지며 길쭉한 덩어리를 이루고 건물도 나무도 없이 물웅덩이만 몇 개 비쳐서, 무엇을 만드는 중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제목이 뭘까요였다.

01알아맞히기

댓글은 곧바로 알아맞히기가 되었다. 땅이 많이 파먹혔다는 말에는 두더지가 살았나 보다는 답이 돌아왔고, 복작복작하다는 말에는 더 복작복작해진 후속 글을 올렸다는 답이 붙었다.

그 후속 글은 다음 날 올라왔는데, 제목은 어제 만들던 교차로였고 본문은 세 줄이었다. 의식의 흐름대로 만들고 있긴 한데 너무 어렵다는 것, 그리고 약간 심장 위쪽 같기도 하다는 것. 실제로 사진 속 구조물은 굵은 관 여러 가닥이 위쪽에서 갈라져 나오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의식이 아주 잘 흐르는 것 같다는 농담에는 정상이라 다행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전히 알아보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다. 아직도 이게 뭔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고백이 있었고, 저런 도로는 자기라면 하나도 구현하지 못하겠다는 감탄이 있었으며, 도로는 무엇을 쓰고 있느냐는 실무적인 질문도 왔다. 답은 일부만 만든 것이라 기본 도로와 1차로 도로만 쓰고 있다는 것이었고, 저게 되기는 되느냐는 물음에는 하면 되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아래 한 사람이 이렇게 적었다. 이제 서울역 건물 자재만 나오면 완벽하겠다고. 그 도로가 어디인지는 그때 이미 밝혀져 있었던 셈인데, 정작 만든 사람이 지명을 적기까지는 아흐레가 더 걸렸다.

잘 만든 교차로일수록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02마이너스 1점

이 사람이 도로만 다룬 것은 겨울부터가 아니어서, 가을에 이미 넉 달치가 쌓여 있었다.

9월 말에 올라온 글의 제목은 시험기간이니까 요금소였다. 시험기간이라 대충 생각나는 것만 만들었다면서도 손은 꼼꼼했다. 땅을 깎아 낸 구간에는 연석을 놓고 나무를 지웠고, 흙을 쌓아 올린 구간에는 펜스를 세웠다. 지형은 일본 시만토의 실제 지도를 썼는데, 어느 정도 한국 강산과 어울리는 지형이라는 이유였다.

지도를 들여다보다 작업이 늘기도 했다. 고속도로에 접속하는 도로가 옛날에 지어진 국도 느낌이 나는 곳이라 그 느낌대로 더 지었고, 지도를 보고 감이 오는 대로 우체국과 기업 수련원처럼 보이는 건물을 넣었다. 담장 아래로 개구멍을 두 개 뚫었는데 생각보다 예쁘게 나와 만족스럽다는 말도 적혀 있다. 마지막 줄은 저 공사장에 뭘 넣으면 좋을지 추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글에 짧은 댓글이 하나 달렸다. 회차로가 없으니 마이너스 1점을 주겠다는 것. 안타깝게도 현실 반영이라는 농담이 답으로 돌아왔지만, 바로 다음 날 올라온 글의 제목은 피드백 반영 회차로였다.

요즘은 요금소에 대개 회차로를 짓지만 그러지 못한 곳은 램프 하나를 몰래 빼서 주변 농로로 잇는다고, 그런 형식의 회차로와 검문소를 반영했다고 그는 적었다. 댓글 한 줄에서 다음 글 한 편까지 걸린 시간이 하루였다.

03국룰

같은 날 교차로도 하나 올라왔다. 어제에 이어 작업했다는 말과 함께, 아직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차가 많이 없다는 설명이 붙었고, 사진 사이사이에 데칼질이라는 한마디와 대략적 선형이라는 한마디가 나뉘어 달렸다.

여기서도 댓글은 상호 검토가 되었다. 지하차도와 좌회전 차로 사이에는 화단이 국룰 아니냐는 지적에, 올리고 보면서 자기도 그 생각이 났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하차도 안이 파랗게 비친다는 사람에게는 지하 연결을 먼저 하고 지상을 나중에 지어 보라는 조언이 갔고, 요금소 자재는 도로를 하나밖에 연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여러 개를 자연스럽게 붙였느냐는 물음에는 겹쳐 놓는 도구와 2차로 고속도로가 만능이라는 답이 갔다. 도로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는 하소연에는 자기도 그렇다는 답이 달렸다.

도로에는 정답에 가까운 것이 있다. 건물의 생김새는 취향이지만 도로의 선형에는 설계 기준이 있어서, 곡선 반경과 시거와 차로 폭을 두고 서로 점수를 매길 수 있다. 국룰이라는 말이 댓글에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이 게시판에는 도로에 매달리는 사람이 유난히 많다. 2018년 겨울에는 1u짜리 짧은 도로 하나 때문에 차들이 관문 앞에서 로터리처럼 한 바퀴 돌던 일이 있었고, 봄에는 도시고속도로 기둥에 이름을 붙인 사람이, 가을에는 고가도로만 판 사람이 있었다.

04마을에 하나뿐인 약국

10월 초의 지방도는 도로보다 그 옆이 눈에 띈다. 원래 마을을 관통하는 좁은 안길만 있던 곳을 직선화해 옆으로 새 길이 난 느낌으로 만들었다고 그는 적었다. 그러다 보니 도로에 끼여 버린 논과 집이 생겼고, 그 집에는 방음벽을 달아 주었다.

재료는 실제로 지나다니며 본 것들이었다. 곤지암길을 지나다 보면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간이집이 줄줄이 서 있더라는 관찰이 적혀 있고, 큰 국도변 옛날 집에 조그만 가게가 붙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어 간판을 하나 붙였다는 설명도 있다. 그 결과 그 가게는 마을에 하나뿐인 약국이 되었다.

도로를 다루는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가 이 대목에 드러난다. 차로 폭과 곡선 반경만이 아니라, 도로가 지나간 뒤 남은 것들까지. 끼인 논, 방음벽, 간판 하나.

05서울역 앞

서울역 앞
서울역 앞© ㅊㅅ

12월 12일, 서울역 앞을 조금 건설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도로를 완성하고 차선을 긋고 고가 차도 교각을 대충 놓아 봤다는 것인데, 교통 관리 모드로 차선을 설정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는 말이 붙었다.

사진에는 아직 도시가 없어서, 초록 바닥 위에 넓은 교차로가 펼쳐지고 그 옆으로 검은 교각 여섯 개가 아무것도 얹지 않은 채 줄지어 서 있다. 교각부터 세우는 모습이 진짜 도로 건설 같다는 댓글이 달린 것이 이 사진이다.

본문 아래에는 다음에 할 일이 목록으로 적혀 있었다. 잡초 제거, 선을 똑바로 긋는 모드를 구독해 삐뚤빼뚤한 것 고치기, 통신 박스와 표지판 없애기. 그리고 두 가지를 물었다. 통신 박스와 표지판만 골라 없애는 모드가 있느냐는 것, 서울역 주변에 무슨 건물을 박으면 좋겠느냐는 것. 지우는 모드를 쓰면 죄다 싸그리 지워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두 물음 모두 댓글에서 답을 얻었다. 골라서 숨기는 모드의 주소가 하나 올라왔고, 창작마당의 건물 하나를 두 개 이어 붙이면 서울스퀘어 느낌이 나지 않겠느냐는 제안에는 괜찮을 것 같다는 답이 달렸다.

서울로를 구현하는 것이냐는 물음에는 그렇다는 답과 함께 조경 다 할 때까지 한참 남았다는 말이 붙었다. 이게 서울역 앞 도로였느냐며 자기도 해 보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도전하라는 답이 갔다. 고인물의 손으로 저기를 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06그리고 로딩이 안 됐다

다음 날 이 사람은 도시연재가 아니라 질문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로딩이 왜 안 되느냐는 것이었다. 잘 되던 모드를 껐다가 로딩하거나, 구독해 두고 꺼 놓았던 모드를 오랜만에 다시 켜고 로딩하면 가차없이 화면이 멈춘다고 했다.

첨부한 사진을 보고 누군가 저기 저 하얀 게 혹시 깃발이냐고 물었다. 원래는 깃발이랑 사람 한 명이 떴는데 오늘은 사람 한 명만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모드를 켜고 끈 뒤 다시 실행하지 않으면 보통 이런 오류가 난다는 진단이 왔지만, 재실행을 해도 마찬가지였고 이번에는 새로 구독한 모드도 없었다.

서울역 앞 도로를 완성한 다음 날의 일이다. 겨울의 이 사람은 교차로 하나를 이틀에 걸쳐 다듬었고, 그 교차로가 어디인지 아흐레 동안 아무도 확인해 주지 않았으며, 지명이 밝혀진 다음 날 게임이 열리지 않았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제목·본문·댓글 인용은 모두 원문 그대로
  • 히어로와 본문 사진의 묘사(허허벌판 위의 도로, 아무것도 얹지 않은 교각 여섯 개)는 지면 게재 이미지를 보고 적었다
  • 도로설계 기준(곡선 반경·시거·차로 폭)은 편집부 배경 서술. '국룰'은 댓글에서 나온 말
  • '도로를 다루는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편집부 논평
  • 12월 2일 글이 이미 서울역 앞이었다는 판단은 12-03 댓글('이제 서울역에셋만 나오면')과 12-12 글을 잇는 편집부 해석이며, 원문이 명시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