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시티, 잠들지 않는 도시
여름호 커버스토리. 빈 대지 위에 홀로 떠오른 네온 상업지구를 걷는다. 구룡성채(Kowloon)와 빈부격차, 다이아몬드 마켓과 죽음의 별 케이블카, 철도센터까지 — 사이버펑크 도시 나이트시티의 여름.
2019년 5월, 게시판에 사진 열세 장이 올라왔다. 제목은 잠들지 않는 도시였고 본문은 한 줄도 없었다. 붉고 푸른 간판이 겹겹이 켜진 고가 상점가를 보고 누군가 여섯 번째 사진의 분위기가 대단하다고 하자, 만든 사람은 미성년자는 못 들어가는 곳 같지 않으냐고 받았다. 사이버펑크는 역시 퇴폐적인 데가 있어야 한다는 대답이 그 아래 달렸다.
두 달 뒤 도시의 이름이 바뀌었다. 나이트폴 시티에서 나이트시티로. 사이버펑크 2077의 배경 도시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는 짧은 설명이 붙었고, 그때부터 연재 제목 앞에는 늘 그 게임의 이름이 놓였다.
01맨땅 위의 섬
여름의 나이트시티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도시가 아직 섬이다. 격자로 그어 놓기만 한 갈색 대지 한가운데 상업지구 한 덩이가 떠 있고, 그 둘레를 고가도로와 지상철이 감아 돈다. 간판이 건물을 덮고 건물이 간판을 인다. 삼성과 오포, 코카콜라, 24시간 영업을 알리는 글자와 대부업 간판이 층층이 붙어 지구 전체가 광고판처럼 발광하는데, 그 바깥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흙바닥이 이어진다.
간판을 직접 만들지는 않았다. 저런 간판을 어디서 구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제작한 것은 없고 창작마당을 뒤져 쓸 만한 것을 모은 뒤 대부분 손을 봐서 쓴다고 답했다. 지붕에 얹힌 원반이 오사카 우메다의 공중정원이 맞느냐는 물음에도 맞다고 짧게 답했다. 남이 만들어 흩어 놓은 조각을 모아 붙여 도시 하나의 분위기를 내는 방식이다.
02구룡성채

7월 말, 이 도시에 구룡성채가 들어섰다. 홍콩에 실재했다가 헐리고 공원이 된 무허가 건축의 미로이고, 공각기동대를 본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떠올릴 풍경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난민촌과 유흥업이 함께 있는 구역으로 설정했고, 상업과 주거가 공존하는 탓에 네온사인이 유난히 많은 것을 특징으로 삼았다.
설정은 사진 안에서 그대로 굴러간다. 성채 안쪽에는 판자와 흙으로 지은 집이 옹기종기 붙어 있고,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옥상에 집을 올려 산다. 건물이 뒤엉키고 오래되어 기울어진 곳도 무너진 곳도 있다. 구역을 지상철이 통과해, 성채 사람들은 그 열차로 도심에 나간다.
댓글은 이 구역을 실재하는 장소처럼 대했다. 이제 옆에 공항만 두면 된다는 말이 올라오자 곧바로 카이탁이라는 답이 붙었고, 만든 사람은 그거 솔깃하다고 받았다. 헐린 성채와 닫힌 공항을 한 도시에 나란히 세우자는 농담이었다.
03케이블카가 닿는 곳
구룡성채보다 한 주 앞서 만든 구역은 디스트릭트 01이다. 빈민촌과 작은 공업지구로 이루어졌고 불법과 범죄가 공존하는 곳이라고 설정했으며, 구역 한복판의 버려진 건설현장은 주민들이 주거지로 쓴다고 적었다. 이 구역의 교통수단은 케이블카다. 보통은 산이나 큰 언덕에 놓는 것을 도심 위로 끌어와, 높은 데서 도시 전경이 보이도록 걸었다.
승강장은 죽음의 별 자재로 지었다. 구형 승강장이 종점에서 전력을 받아 작동하는 구조로 설정하고, 구역 번호에 맞춰 케이블카에도 고유 번호를 매겼다. 케이블카를 대중교통으로 쓰는 도시라면 콜롬비아 메데인이 떠오른다는 댓글에, 그는 나르코스를 보면서 언젠가 그 분위기를 모티브로 삼아 보자고 마음먹었던 참이라고 답했다.
건물을 눕힌 게 맞느냐는 물음도 있었다. 기본 고밀도 건물을 옆으로 눕혀 놓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04버려진 야구장

8월의 구역은 다이아몬드 마켓이다. 한때 야구 열풍으로 이름난 선수들이 시합을 벌이던 구장이 2077년에는 버려졌고, 빈민층이 그 안에 들어와 집을 짓고 시장을 이루었다는 설정을 붙였다. 주말 시합이 있는 날이면 사람이 몰리던 정면은 그대로 남았고, 안쪽에는 판자와 시멘트로 올린 집이 거대한 요새를 이루었으며, 점수판은 그래피티로 뒤덮였다.
주민들은 자급자족으로 생계를 꾸리고 도심에서 버려진 물건과 잔해로 집을 짓는다. 중앙에는 전망대가 서 있고 그 위로 옥외광고판이 여럿 걸렸다. 야경 사진 아래 그는 한 줄을 적었다. 저 거대한 마천루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저 거대한 마천루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같은 달 중순의 연재 제목은 빈부격차였다. 특별히 정한 콘셉트는 없고 몇몇 구역을 새로 만들었을 뿐이라면서도, 부유한 아발론 구역과 나머지의 차이를 최대한 벌리려고 애썼다고 그는 적었다.
05CPU가 아닙니다
7월 초에 세운 철도센터는 종점이자 시작점인 복합역이다. 건물 안쪽에 열차와 화물열차, 전철과 지상철이 모두 들어와 있다고 소개하면서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참고로 CPU 아닙니다.
아니라고 했지만 맞았다. 이틀 뒤 그는 참고한 이미지를 따로 올렸는데 반도체 칩을 확대한 사진이었다. 비슷하게 해 보고 싶었으나 알맞은 건물과 조명이 없어 타협한 결과라고 적었고, 그 이미지의 새빨간 조명이 몹시 탐났다는 말을 덧붙였다. 선로를 따라 흐르는 빛은 결국 공항 조명 소품으로 냈다. 원하는 세기의 빛을 내는 자재를 찾다 실패하고 엉뚱한 데서 구했다.
댓글 하나가 이 역을 정확히 알아봤다. 이 글을 보고 머릿속 행복회로가 스로틀링에 걸렸다는 말이었고, 만든 사람은 저 위에 냉각기를 설치해야겠다고 답했다.
컨테이너를 겹치고 전선으로 이은 건물을 실물로 보고 싶다는 말이 나왔을 때는 시화공단에 가면 많다고 답했다. 전선은 소품 모드로 줄만 떼어 하나씩 옮겨 놓은 것이었다. 애썼겠다는 말에 돌아온 대답은, 도시 짓는 시간보다 아이디어 찾는 쪽이 더 어렵다는 말이었다.
06낮에는 멀쩡한 도시
6월 말, 이 도시의 첫 시네마틱 티저가 올라왔다. 영상 편집을 처음 해 본 결과물이라 미숙하다는 말과 함께였다. 영상을 본 사람이 의외로 낮에는 멀쩡한 도시 분위기라고 하자, 만든 사람은 중앙 구역이 부유한 곳이라 그렇고 바깥으로 나갈수록 저층민 구역이 될 예정이라고 답했다. 그러면 간판과 전선이 얽힌 초고층 판자집을 보게 되겠다는 대꾸가 이어졌다.
여름이 끝날 무렵 그 예고는 절반쯤 지켜졌다. 구룡성채와 다이아몬드 마켓, 디스트릭트 01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도시의 그늘 쪽이 먼저 채워졌고, 8월 말에는 그때까지 지은 것을 모아 트레일러 비슷한 영상을 만들었다. 앞으로는 타임랩스 형식으로 보여 주겠다는 예고가 붙었다. 8월의 마지막 연재에서 그는 이제 하늘을 나는 자동차만 마치면 아발론을 벗어나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겠다고 적었다.
그때까지도 네온이 닿지 않는 자리에는 격자로 그어 놓은 도로만 남아 있었다. 정지된 사진이 영상이 되어 가는 과정은 지난겨울 이 지면이 다룬 요코에서도 한 번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