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돈, 이층버스와 우체국
자재가 없어 빅벤을 못 세운 런던. 우측통행으로 절반쯤 지어 버린 거리, 론돈에서 용동까지 이어진 이름 놀이, 하루치 작업을 통째로 날린 날, 그리고 세이브 파일을 열어 본 사람. 여름의 론돈을 게시글과 댓글로 따라 걷는다.
2019년 7월 4일 자정 무렵, 게시판에 사진 두 장이 올라왔다. 제목은 자모를 풀어 쓴 ㄹㅓㄴㄷㅓㄴ이었고 본문은 한 줄도 없었다. 그날부터 여름이 끝날 때까지 같은 말머리를 단 글이 여덟 편 더 올라오는 동안 제목은 론돈이 되었다가 LONDON이 되었다가 다시 론돈으로 돌아왔다.
첫 글의 댓글은 칭찬보다 의심이 먼저였다. 근데 이게 런던 스카이라인이 맞느냐는 물음에 만든 사람은 건물이 없어요 없어요라고 두 번 적었고, 그러면 카멜롯으로 개명하라는 권유와 아니면 킹스랜딩은 어떠냐는 대안이 나란히 달렸다.
01건물이 없어요 없어요
자재가 없다는 말은 엄살이 아니었다. 7월 말, 제일 유명한 데를 보여 달라는 재촉이 붙자 옆에서 빅벤을 네 번 연달아 외치는 사람이 나왔고, 만든 사람은 저기 국회의사당 자재가 없어요 없다구요라고 답했다. 만든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원망에 돌아온 것은 비슷한 건물을 찾으면 만들겠다는 약속이었다.
대신 있는 것으로 메웠다. 여름의 대표 사진이 된 코너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곡면으로 휘어진 크림색 건물의 발코니마다 난간이 둘리고 한쪽 벽에 유니언잭이 걸렸으며 1층에는 청록과 진홍의 차양이 번갈아 늘어선다. 그 앞을 빨간 이층버스가 지나고 길가에는 빨간 공중전화 부스가 서 있는데, 정작 그 옆 건물 벽에는 일본 우체국의 郵便局 간판이 붉게 붙어 있다. 오른쪽 흰 건물 옥상에는 프랑스 해운사의 상호가, 그 너머에는 도쿄에나 어울릴 검은 유리 탑이 솟아 있다.
뒤섞임을 감추지도 않았다. 동양식 도시를 잘 짓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서양식도 잘 만든다는 감상에 그는 런던이 재미있는 것 같다고, 아직 못 보여 준 부분이 많으니 기대해 달라고 답했다. 브릿 감성을 긁어모으고 있다는 말에는 시티즈에서 재현이 가능하겠느냐고 되물었고, 이미 재현하신 게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건물이 없어요 없어요.
저기 국회의사당 자재가 없어요, 없다구요.
02왜 우측통행이에요

이틀 뒤 올라온 디테일 스크린샷은 교차로 하나를 위에서 잡았다. 벽돌 건물 1층에 세인즈버리스와 아고스가 들어서고 옆 골목에는 피시앤칩스 간판이 걸렸다. 길모퉁이의 빨간 공중전화 부스와 기둥형 우체통, 지하철 로고를 단 표지판, 자전거 전용 노면 표시까지 런던의 소품이 빠짐없이 놓였고, 교차로 한복판에는 노란 격자가 그려졌다.
너무 예쁘다는 감탄 바로 뒤에 붙은 물음은 왜 우측통행이냐였다. 만든 사람은 처음에 설정을 안 하고 시작했다고 답했다. 좌측통행의 도시를 우측통행으로 절반쯤 지어 놓은 채 노면에는 KEEP CLEAR며 노란 격자며 영국식 표시를 그대로 그려 넣고 있었다. 사진 한가운데를 지나는 이층버스에는 홍콩 버스 회사의 붉은 로고와 공항행 노선 번호가 붙어 있다.
같은 글에는 한 사람이 OMG만 스물두 번 적어 놓았다. 댓글 수를 채우려는 것이냐는 물음에 놀란 만큼 표현하는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고, 스물두 개라니 백 개는 쓸 줄 알았다는 말에는 더 하려다 말았고 딱히 숫자를 세지도 않았다는 대꾸가 붙었다.
03론돈에서 용동까지
표기는 매번 달랐다. 7월 23일 글에는 용동이라는 한마디가 달렸는데, 그게 뭐냐고 묻자 런던에서 론돈, 론돈에서 롱동, 롱동에서 룡동, 룡동에서 용동으로 가는 다섯 단계가 답으로 왔다. 만든 사람은 언어의 단계라고 받았다.
영어 표기를 두고도 실랑이가 있었다. 대한민국 영국도 논돈시는 어떠냐는 제안에 글로벌코리아라고 답했다가 우리말을 아껴야 한다며 반성문을 쓰라는 핀잔을 들었고, 싫다고 짧게 대꾸했다. 그러면서도 퀴즈 답으로 독일어 지명이 올라오자 한글을 사랑하자고 적었다.
사진 자체에는 손을 거의 대지 않았다. 보정을 했느냐는 물음에 보정은 안 하고 하늘과 물만 편집했다고 답했고, 고화질 파일이 카페에 첨부되지 않아 블로그에 올린 다음 스크랩해 오는 방식으로 올렸다.
04뭘까요
8월 13일 글의 제목은 워키토키빌딩 다음에 뭘까요였다. 위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 때문에 무전기라는 별명이 붙은 건물 사진 옆에, 다음 장소를 맞혀 보라는 문제가 함께 놓였다. 피카딜리라는 답에는 땡, 붉은광장이라는 답에는 그럼 만들어 주겠느냐는 되물음, 독일어 마르크트플라츠에는 한글을 사랑하자는 훈계가 돌아갔다.
다음 날 다른 사진이 올라오자 저번 문제의 정답이 뭐였느냐는 질문이 붙었다. 답은 피커딜리였고, 앞서 피카딜리라고 적었던 사람은 맞췄는데, 하고 말끝을 흐렸다.

사흘 뒤 올라온 피커딜리의 본문은 흐흐흐 세 글자였다. 사진 속 곡면 전광판에는 코카콜라 병과 삼성 로고와 후지필름 광고가 나란히 켜져 있다. 그 아래 1층에는 명품 매장과 편의점이 붙었고, 광장 바닥에는 30이라 적힌 제한속도 표지와 붉게 칠한 횡단보도, 지하철 로고를 단 입구가 놓였다. 만든 사람이 자기 글에 단 첫 댓글은 저 전광판이 실제로 움직인다는 설명이었다.
05오늘 작업한 거 다 날렸어요
8월 6일의 글은 사진 한 장에 두 줄이 붙었다. 이상하게 저장이 안 돼서 오늘 작업한 것을 다 날렸다는 말이었다. 하필 그 사진을 두고 여태 본 시티즈 스크린샷 중 가장 실제 도시 사진 같다는 감상이 달렸고, 만든 사람은 날렸어요, 속상하다고 답했다.
위로는 농담으로 왔다. 이게 날아갔느냐는 탄식에 히스로에서 날아갔느냐는 말이 붙고, 게트윅이라는 정정과 라이언에어가 스탠스테드에서 납치했다는 말이 이어졌다. 현실을 어떻게 저장하느냐는 물음에는 이렇게요, 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06파일을 공유해 놓았군요
7월 24일에는 다른 사람이 이 런던을 열었다. 게시글에는 스크린샷 일곱 장과 화면 반사 설정값이 줄줄이 적혔고, 올린 사람은 사실 런던 스크린샷을 가장한 설정값 글이라고 괄호 안에 자백했다. 다리만 보면 런던이 아니라 롱드르 같다는 감상이 그 아래 달렸다.
댓글에 지은 사람이 나타났다. 제가 파일을 공유해 놓았군요, 하고 한 줄을 적은 뒤 야경이 심심해서 강변에 조명을 설치해 놓았으니 또 다른 재미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같은 여름 이 사람의 다른 도시를 카메라에 담고 있던 이가 이번 호 Works 섹션의 카사나이 시네마틱을 만들었다.
8월 20일에는 런던 아닌 것이 하나 더 붙었다. 중국 자본으로 지어진 고층빌딩이라는 제목에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중국 스타일이라는 설명이 달리자, 요새 런던은 중국 자본보다 한국 자본이 기세가 강하다는 지적이 들어왔다. 알고는 있는데 그 빌딩이 중국 빌딩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글에 달린 마지막 댓글은 짧은 항의였다. 런던에서 찍은 사진을 여기에 올리시면 안 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