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나이, 시네마틱이 된 항구
지난겨울 스스로를 낙원이라 부르던 항구 카사나이가, 2019년 6월 한 달 동안 다섯 번 찍혔다. 촬영 중 저절로 난 불, 5K라는 마의 영역, 미니어처 특집, 360도 영상, 그리고 두 편의 시네마틱. 도시를 빌려 찍는 관계를 게시글과 댓글로 따라간다.
지난겨울 이 매거진은 카사나이라는 항구를 다뤘다. 스스로를 지상낙원이라 부르고, 개장 3주 만에 대교를 열고, 첫 방문자에게 비바람 치는 바다를 보여 달라는 주문을 받았던 도시다. 2019년 6월, 그 항구가 한 달 동안 다섯 번 찍혔다.
찍은 사람은 지은 사람이 아니었다. 게시글마다 사진 아래에는 도시를 지은 이의 이름이 크레딧처럼 한 줄 붙었고, 카메라를 든 쪽은 세이브 파일을 받아 열어 보는 처지였다.
01불은 의도한 게 아니었습니다
첫 영상은 6월 15일에 올라왔다. 불타는 카사나이에 아직 쓰지 않은 클립을 더해 붙였다는 설명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불은 의도한 게 아니라 영상을 찍던 도중 갑자기 발생했다는 해명이었다.
댓글은 그 사고를 반겼다. 역시 가장 핫한 도시라는 말이 먼저 붙었고, 처음부터 뭔가 엄청난 게 나온다는 감상에는 저기 바다에 반짝이는 별들을 합성하려다 포기했다는 뒷이야기와 유명한 티아키 등대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정작 그 영상은 모바일에서 재생되지 않아, 착한 사람만 볼 수 있는 영상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025K라는 마의 영역

6월 22일에는 5K 스크린샷 넉 장이 올라왔다. 하드웨어도 하드웨어지만 소프트웨어 쪽에서도 제대로 지원해 주지 않는 마의 영역이더라는 말과 함께였다. 업로드 용량을 맞추려고 PNG를 93퍼센트 화질의 JPEG로 바꿨다고 적고는, 원본으로도 보라는 당부를 붙였다.
찍는 방식에도 설명을 달았다. 게임이 따로 제공하는 고화질 촬영 단축키 대신 플레이 화면 그대로를 잡은 이미지라 오히려 더 낫다고 했다. 모바일에서 보게 파일로도 올려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자 곧 올렸다. 데이터를 켠 채로 봐 버렸다는 비명에는 원본을 열기 전까지는 다른 게시글과 똑같으니 괜찮다고, 트래픽 때문에 원본부터 나오는 일은 없다고 답했다.
03아직 죽지 않았어
이튿날 올라온 것은 미니어처 특집이었다. 카사나이의 새로운 모습들을 찾고 있다는 한 줄과 함께 해시태그 하나가 붙었다. 아직 죽지 않았어.
틸트시프트로 찍은 사진 속에서 도시는 장난감이 된다. 초점이 맞는 가느다란 띠만 남기고 위아래가 흐려지자, 곡선을 그리며 갈라지는 고가와 그 위에 줄을 선 차들, 고가 사이에 낀 분홍 배롱나무 무리, 옥상에 깃발을 단 흰 건물이 모두 손바닥에 올려놓을 크기로 보인다. 도로 한복판의 주황색 안내판까지 모형 부품처럼 보인다.
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생동감이 넘쳐서 석유비가 내릴 것 같다는 댓글이 달렸고, 만든 사람은 전부 4K 스크린샷이니 즐감하라고 답했다.
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석유비가 내릴 듯한 모습인데요.
04이어폰을 착용해 보세요
같은 날 시네마틱이 하나 올라왔다. 제목은 카사나이, 평화의 도시였다. 본문은 비어 있었고 첫 댓글은 만든 사람이 자기 영상에 단 관람 팁이었다. 이어폰을 착용해 보세요.
도시를 지은 사람이 그 아래 감상을 적었다. 영상미는 물론 이제 음향 편집까지 수준급이 되었으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말이었다. 찍은 사람은 원래도 가끔 넣기는 하는데 소스도 부족하고 귀찮기도 하다면서, 넣으면 좋기는 하다고 답했다.
05360도와 타임랩스
6월 28일에는 360도 영상이 올라왔다. 비록 단순한 영상이지만 즐감해 달라는 말과 함께 가상현실로 만나는 도시라고 소개했는데, 갓영상에 댓글이 없다는 탄식에는 원래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VR로 보니 압도적이라는 감상에 몰입감이 쏙 들어온다고 받았지만, 등대 부분에서 산이 좀 더 예뻤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따라왔다. 민무늬 토기를 생각하며 자랑스러워하면 된다는 대꾸에, 빗살무늬가 더 좋다는 반박이 붙었다.
하루 뒤에는 편안한 분위기의 타임랩스를 예고하고 저녁 여덟 시에 유튜브 최초 공개로 걸었다. 기대기대라는 댓글이 먼저 달리고, 공개가 끝난 뒤에는 구석구석 아름다웠다는 말과 토네이도가 안 나온 게 아쉽다는 말이 이어졌다. 2분 50초쯤에 지직거리는 소리가 뭐냐는 물음에는 유튜브 오류 같다고 답했고, 마지막 장면이 특히 좋았다는 말에는 갬성이라는 한마디만 돌아왔다.
06메일로 세이브 보내 주시면
이 촬영에는 계획표가 있었다. 3월에 올린 글에서 그는 초당 60프레임을 유지하는 대신 24~30프레임으로 낮추고 프레임당 비트 전송률을 대폭 늘리겠다고 밝혔다. 60프레임을 지키는 쪽이 영상을 과도하게 무겁게 만드는 데 비해 실질적인 이득이 적다는 판단이었다.
같은 글에는 그해 만들 시네마틱의 목록이 붙어 있었다. 작은 마을 1부와 2부, 카사나이, 넬슨과 넬슨 관광 홍보, 노틸러스, 새로운 세계, 운석 비 2, 끝없는 여정 사바나 편, 원시 지구, 더 네트워크. 순서는 실제와 무관하고 일부는 변경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는 단서가 달렸다. 목록 아래 첫 댓글은 도시를 지은 사람의 물음이었다. 다 제작할 수 있을까요.
6월 말의 대화에는 두 사람의 작업 방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평화의 도시 시네마틱 아래에서 지은 사람이 야경을 어떻게 봤느냐고 묻자 찍은 사람은 야경이 마음에 들었다고 답했고, 그럼 접속은 해 봤느냐는 물음에는 아직이라고, 세 번째 시네마틱 작업의 여파라고 적었다. 그러고는 한 줄을 덧붙였다. 메일로 세이브 보내 주시면 좋을 텐데.
한 달 뒤 그는 같은 사람의 다른 도시를 열었다. 여름 내내 게시판에 올라오던 론돈이었고, 게시글은 스크린샷을 가장한 화면 반사 설정값 목록이었다. 댓글에 지은 사람이 나타나 야경이 심심해서 강변에 조명을 설치해 놓았으니 또 다른 재미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