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주시, 아파트가 도시가 될 때

본문이 한 줄도 없는 연재였다. 제목과 사진, 그리고 남들이 달아 준 댓글만으로 편주시는 4월 열이레를 살았다. 래미안 레이크힐스와 저수금캐슬, 복합문화가람과 편주역, 편의점, 그리고 화재 이튿날 올라온 노트르담 대성당.

저수금캐슬
저수금캐슬© 편의점경영주

4월 11일 하루에 글 셋이 올라왔다. 첫 글의 제목은 시티즈 스카이라인 재밌네요였고 사진이 다섯 장 붙어 있었다. 곧이어 편주시 01, 래미안 레이크힐스. 그리고 편주시 02, 저수금캐슬.

첫 글 아래에 붙은 첫 댓글은 또 고이셨군요, 였다. 오래 파고들어 실력이 붙었다는 뜻의 인사인데, 처음 도시를 올린 사람에게 그 말이 먼저 왔다. 여기서 한국이 나오느냐는 반가움과 한국 도시를 잘 만들었다는 칭찬이 이어졌고, 그가 남긴 답은 감사합니다 한 마디였다.

01이름은 아파트, 실물은 대저택

래미안 레이크힐스는 이름값을 했다. 동 꼭대기마다 브랜드 표지가 붙은 고층 아파트가 늘어서고, 그 앞으로 자전거도로가 딸린 대로가 지나가고, 화단 옆에 고등학교 표지가 서 있다.

같은 날 올라온 두 번째 단지는 이름만 아파트였다. 저수금캐슬의 사진에 나오는 것은 언덕 위의 대저택들이다. 붉은 기와를 인 집이 넓은 잔디밭을 감싸고, 한쪽에 수영장이 있고, 둘레를 흰 울타리가 두른다. 어떤 장면은 저택 테라스에서 찍혔는데, 야외 소파와 선베드 너머로 도시와 고가도로가 저 아래 내려다보인다.

댓글도 그 점을 먼저 봤다. 미국 부유층 동네 같다는 감탄과 금수저라는 세 글자, 여기가 저희 집이라는 농담, 그리고 한남동 주택가는 어떻겠느냐는 다음 청탁이 차례로 붙었다. 아파트 브랜드의 문법으로 지은 이름 아래에 놓인 것은 단지가 아니라 담장이었다.

02한국화된 복합문화가람

복합문화가람
복합문화가람© 편의점경영주

이틀 뒤 올라온 편주시 03의 제목은 중심지, 복합문화가람이었다. 사진 속 건물의 외벽에는 영화관과 서점 간판이 걸리고 벽면 가득 포스터가 붙었으며, 인도에는 미디어폴이 하나 서 있다. 뒤로는 고층 아파트와 산이 보이고 대로에는 파란 시내버스가 지난다.

이 건물이 어디서 왔는지는 댓글이 알아봤다. 다른 사람이 만든 자재를 한국화한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미디어폴이 반갑다는 말이 붙었다. 저런 큰 복합센터를 하나 지어 보고 싶었는데 이참에 만들어야겠다는 사람이 있었고, 버스철이 현실적이라는 짧은 감상도 있었다. 고여 버렸다며 안타까워하는 댓글에 그는 헤헤, 하고 답했다.

03승강장 번호는 독일어로 남았다

편주역은 4월 14일에 올라왔다. 제목에 붙은 번호는 05이고 끝에 1이 더 붙어 있는데, 편주역 2는 오지 않았다.

이 역의 정체도 댓글이 밝혔다. 본판은 베를린 중앙역인데 실제 그 역은 곡선이고 창작마당에 원본도 올라와 있으며, 편주역이 쓴 자재는 그것을 직선으로 펴고 품질을 높인 물건이라는 설명이었다. 정말 쓰고 싶었지만 지형 탓에 쓰지 못해 자기에게는 비운의 자재라는 고백이 뒤에 붙었다. 자재 내부가 저렇게까지 자세한 줄 몰랐다는 감탄도 나왔다.

실제로 사진은 역 바깥보다 안쪽이 많다. 에스컬레이터가 층을 가로지르고, 유리 난간 너머로 상점이 늘어서고, 파란 바탕에 주황색이 섞인 안내판이 매달려 있다. 그 안내판에 적힌 승강장 번호는 11에서 18까지, 독일에서 쓰던 표기 그대로다.

이름은 편주역인데
승강장 번호는 베를린에서 왔다.

04무한 증식 편의점

편주 04의 제목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구합니다였고, 사진은 여섯 장 모두 편의점이었다. 전선이 머리 위를 지나가고 커다란 아이스크림콘 간판이 솟은 낮은 상가에 하나, 유리 탑 옆 검은 상자 같은 건물에 하나, 고층 아파트 아래 중식당 간판 밑에 하나, 그리고 옥상 광고판 위에 하나. 건물과 동네는 매번 다른데 간판만 같다.

점포 앞의 소품까지 매번 다르다. 어떤 곳에는 자전거와 쓰레기통이 벽에 붙어 있고, 어떤 곳에는 파라솔 없는 야외 탁자 셋이 인도 쪽으로 나와 있다. 도시를 한 바퀴 도는 대신 편의점만 여섯 번 찍어 그 도시를 보여 준 셈인데, 저층 상가와 초고층 사이의 거리가 그 여섯 장에 그대로 들어 있다.

무한 증식 편의점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식비를 준다니 좋다는 사람과 멤버십 할인이 되느냐고 묻는 사람이 채용 공고 쪽으로 농담을 이어 갔다. 도시를 올린 사람의 이름이 편의점경영주였으니 제목은 자기소개이기도 했다.

054월 16일

연재의 번호는 04 다음에 05가 둘이다. 편주역1이 05였고, 이틀 뒤 올라온 글도 05였다. 06은 건너뛰었다. 제목은 애도,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에서 화재 소식이 전해진 바로 다음 날이다. 사진에는 넓은 대로와 중앙 버스전용차로가 있고, 그 곁에 두 탑과 장미창을 가진 대성당이 서 있다. 뒤로는 고층 아파트와 산이 보인다.

안타깝다는 댓글이 둘 달렸다. 그중 하나는 아무리 오랜 시간에 걸쳐 보존하고 지켜도 한번 무너지면 그때 모습 그대로 되돌릴 수는 없다고, 숭례문 일이 생각나 더 안타깝다고 적었다. 궁을 다시 세우는 일을 두고 어느 시절로 되돌릴 것인가를 물었던 지난겨울 Culture 기사와 같은 자리에 놓이는 말이다.

편주 07과 08이 4월 17일과 27일에 올라왔다. 마지막 글의 댓글에는 바위산이 멋있다는 말과 저 타워가 어느 타워냐는 물음, 그리고 톨게이트가 설마 기본 자재냐는 질문이 달렸다. 지난겨울 이 매거진이 다룬 그 관문이 무료 업데이트로 들어온 지 반년쯤 지난 때였다. 진짜 고수가 나타났다는 댓글이 그 아래 붙었고, 편주시의 소식은 거기서 멈춘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제목·댓글 인용은 원문 그대로. 사진 묘사(대저택과 수영장,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도시, 복합건물 외벽의 간판과 미디어폴, 역 안쪽 에스컬레이터와 안내판, 편의점 여섯 장, 대성당과 중앙 버스전용차로)는 이미지를 실제로 열어 보고 적었다
  • '아파트 브랜드의 문법으로 지은 이름 아래에 놓인 것은 단지가 아니라 담장이었다'가 이 기사의 편집부 논평이다
  • 노트르담 대성당 글의 날짜(4월 16일)는 게시 기록이며, '화재 소식이 전해진 바로 다음 날'이라는 서술은 널리 알려진 화재 시점에 기댄 것으로 편집부가 1차 자료로 확인하지 않았다
  • 이 연재는 아홉 편 전부 본문이 비어 있다. 지면의 모든 사실은 (가) 원문 제목, (나) 편집부가 직접 열어 본 사진, (다) 댓글 세 가지에서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