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하르트, 요새가 서다
여름에 네온의 섬을 짓던 사람이 가을에는 눈 덮인 산으로 갔다. 기계와 마법이 공존한다는 콘셉트의 유럽풍 도시 레온하르트, 계절 내내 지어진 절벽 위의 요새, 그리고 회차로 나뉘기 시작한 연재를 읽는다.
지난 여름호의 커버는 맨땅 위에 떠오른 네온의 섬이었다. 잠들지 않는 도시 나이트시티. 그 도시를 지은 사람이 가을에 전혀 다른 곳에 나타났다.
눈 덮인 산과 저 멀리 보이는 초원. 새 도시의 배경은 그렇게 시작됐다.
01오랜만에 연재를 시작합니다
돌아온 인사는 담담했다. 개인 사정과 일이 바빠 한동안 손을 못 댔는데 이제 여유가 생겨 다시 시작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게시판의 연재가 끊기는 이유는 대개 흥미를 잃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다. 여유가 생기면 돌아오고, 그래서 이 게시판의 도시들은 끊겼다 이어지기를 되풀이한다.
돌아온 그는 맵부터 새로 만들었다. 콘셉트에 어울리는 맵을 찾고 여러 테마를 섞어 지형을 완성한 뒤, 유럽 테마가 처음이라 자료를 찾고 조사하느라 초기 작업이 꽤 걸렸다고 적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 일단 지도를 참고해 구도부터 잡아 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02기계와 마법이 공존하는 세상

도시의 이름은 레온하르트였다. 판타지 세계와 기계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가 콘셉트였고, 참고한 것은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도시 배경이었다. 그는 도시의 로고까지 직접 만들어 함께 올렸다.
댓글에서 장르 이름이 먼저 나왔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니 스팀펑크라고 누군가 외쳤고, 이름을 두고는 사자의 심장이냐는 물음이 붙었다. 여름의 도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다른 요청을 했다. 갑자기 분위기를 사이버펑크로 가자는 말에 그는 조명을 보라색으로 하겠느냐고 받았고, 그러면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배가 날아다녀야 한다는 대답이 이어졌다.
한 달 뒤 그가 올린 세계관 설명은 훨씬 길었다. 유럽풍 스팀펑크 판타지를 배경으로 기계가 발달한 문명과 마법이 공존하는 세상이며, 농업과 공업이 함께 어우러지고 각 계층의 신분이 공존하는 도시라는 것이었다. 신들의 축복을 받은 비옥한 땅과 신이 직접 조각한 거대한 설산과 절벽이 그 무대라고 그는 적었다.
여름의 나이트시티와 견주면 방향이 정반대다. 나이트시티는 과잉된 도심과 캄캄한 변두리를 가진 사이버펑크였고, 레온하르트는 눈 덮인 산과 석조 건물 사이에 기계가 섞이는 쪽이다. 다만 나이트시티의 기계는 미래에서 왔고, 레온하르트의 기계는 오지 않은 과거에서 왔다.
나이트시티의 기계는 미래에서 왔고,
레온하르트의 기계는 오지 않은 과거에서 왔다.
03절벽 위에 짓는다는 조건

가을 내내 이 도시가 지은 것은 요새였다. 10월 중순에 작업이 시작되고, 11월 초에 근황이 올라오고, 11월 중순에 윤곽이 나왔다. 외곽 마감만 남았다는 보고가 90퍼센트라는 제목으로 붙었다.
설계의 핵심은 위치였다. 이 요새의 특징은 절벽에 자리해 견고한 느낌을 주려고 많이 노력한 데 있다고 그는 적었다. 지면에 실은 사진에서도 그 조건이 보인다. 잿빛 석벽이 언덕을 따라 층층이 물러서고, 군데군데 무너져 속을 드러낸 벽 사이로 원통형 망루와 원뿔 지붕의 작은 탑이 서 있다. 그 위로는 붉은 띠를 두른 팔각 탑이 돔 위에 얹혀 홀로 높다. 아래쪽은 나무가 덮었고 하늘에는 새들이 흩어져 있다.
반응은 저마다 다른 곳을 가리켰다. 전통적인 양식보다 미래적인 구조가 눈에 띈다는 말이 있었고, 가운데 동굴 같은 것이 흥미롭다는 말과 킹스랜딩 같다는 말도 나왔다. 그는 만들다 보니 왕좌의 게임이 생각나기도 했다고 답했다.
설계가 댓글에서 늘어나기도 했다. 마지막 사진이 전경인데 저기에 옛스러운 항만과 배들이 있으면 멋지겠다는 제안에, 그는 절벽만 생각했는데 비밀 통로 같은 항구도 괜찮겠다고 답했다. 요새 하나를 두고 스무 명 남짓이 각자 다른 도시를 상상하고 있었다.
04에피소드라는 형식
11월 중순, 완성된 도시의 스크린샷 대신 번호가 붙은 영상이 올라왔다. Ep1 요새. 열흘 뒤에는 Ep2 타워 주거지가 이어졌다. 거대한 돌을 깎아 지은 주거지에 최상층 성당과 도심을 지키는 여신상이 얹혀 있다는 설명이 붙었다.
1화가 나오자 완결을 본 기분이라는 감상이 달렸다. 분량이 너무 후하다는 말에 그는 이미 2화를 만들고 있다고, 만들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정리가 안 될 정도라고 답했다. 두세 개로 쪼개 올려도 넘칠 영상이라는 말에는 사정을 털어놓았다. 원래 2화분이었는데 편집할 시간이 없어 그냥 통으로 냈다고.
2화에는 계획 화면이 잠깐 비쳤고, 그것을 본 사람이 완성된 화면보다 설계 쪽이 더 무섭다고 적었다. 그는 저런 이미지가 다른 형태로 서른 개 더 있다고 답했다. 최상층 사람은 계단을 빡세게 오르겠다는 농담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과 제대로 된 케이블카 자재가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말이 나란히 붙었고, 도로가 깔린 걸 보니 다음 편은 시가지냐는 물음에는 딩동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05즉흥적으로 만든 비행선
11월의 마지막 날, 그는 비행선 사진 두 장을 올렸다. 문득 생각나서 한번 만들어 봤는데 나름 느낌은 난다는 한 줄이 본문의 전부였다.
힌덴부르크냐는 물음에 그는 뭔지는 모르지만 체펠린 비행선 자재가 멋진 게 있길래 써 봤다고 답했다. 차회 예고냐는 물음에는 아니라고, 즉흥적으로 생각나서 만들어 본 것이라고 했다. 판타지 성 위에 띄우면 어떻겠느냐는 제안과, 진짜 자재로 만들어 줄 사람을 구해 보라는 말이 그 아래 달렸다.
도시를 짓는 일이 이야기를 쓰는 일에 가까워지는 순간이 이 계절에 여러 번 있었다. 지난 여름호에서 우리는 카사나이가 시네마틱이 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완성된 도시를 영상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레온하르트는 지어지는 과정 자체를 회차로 나눈다. 그리고 이 연재는 겨울까지 이어져 광장과 시장을 지나 이름 없는 백색의 도시에 닿는다. 그 이야기는 다음 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