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떠나 강남으로

여름 내내 런던과 홍콩을 짓던 사람이 가을에 방향을 틀었다. Real Korea 동부시를 거쳐 서울 강남으로. 댓글이 실제 장소를 하나씩 짚어 내는 사이, 한국 자재가 부족하다는 문제도 함께 또렷해졌다.

강남
강남© 후우운

지난 여름호에서 우리는 이층버스와 우체국이 뒤섞인 도시 론돈을 걸었다. 그 런던을 지은 사람은 9월이 저물 때까지도 홍콩과 런던 사이에 있었고, 9월 말에는 야경 한 장을 올리면서 이것이 메인샷이라고 적었다. 시티즈의 화면 같지 않다는 감탄이 달리자 그는 시키즈가 맞다고 받아쳤고, 디테일을 더 보여 달라는 요청에는 시네마틱으로 만나자고 답했다.

그런데 열흘도 지나지 않아 방향이 바뀌었다. 10월 2일, 그의 게시글 제목 앞에 처음 보는 말머리가 붙었다. Real Korea.

01동부시라는 이름 없는 신도시

첫 도착지는 동부시였다. 한국의 실재하는 지명도 아니고 어느 도시를 그대로 옮긴 것도 아닌 이름인데, 앞에 붙은 말머리가 방향만은 분명히 알려 준다. 정작 지형은 일본에서 빌려 왔다. 어떤 맵이냐는 물음에 그는 일본 지형인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고, 옆에서 다른 사람이 카나무라고 대신 짚어 주었다.

댓글은 이 도시를 자꾸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하남시가 멋지다는 말이 붙자 그는 짧게 성남이라고 정정했고, 다음 글에서 또 하남이라 불리자 다시 성남이라고 적었다. 첫 사진을 보고 일산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실재하지 않는 신도시 하나가 수도권 신도시들의 이름을 번갈아 뒤집어썼다.

아파트가 어느 자재냐는 물음은 여러 번 나왔다. 그는 스팀에서 korea를 검색하면 나오는 아파트와 이 게시판의 다른 회원이 만든 자재, 그리고 홍콩 아파트를 섞어 쓴다고 답했다. 한국 신도시의 인상을 만드는 데 홍콩 아파트가 동원되는 대목에 이 계절의 문제가 이미 들어 있었다.

02경고를 쌓아 두고 짓기

동부시
동부시© 후우운

동부시 첫 글에는 실무적인 질문도 하나 달렸다. 아파트를 저렇게 배치하면 환자가 생긴다거나 도로가 없다는 경고가 뜨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답한 사람은 작성자가 아니라 옆에서 지켜보던 이였는데, 많이 뜬다고, 어마어마하게 많이 뜬다고 했다.

질문자가 다시 물었다. 그냥 무시하고 하는 것이냐고, 자기는 다시 하려니 멘붕이 온다고. 돌아온 답은 저 사람은 그러는 것 같다는 한 줄이었다.

도시를 보기 좋게 짓는 일과 도시를 굴러가게 짓는 일이 갈라지는 지점이 여기다. 게임은 동에 도로가 닿지 않는다고 경고하고 주민이 병원에 가지 못한다고 경고하는데, 실제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원래 그렇게 앉아 있다. 재현을 택하면 경고가 쌓이고, 경고를 지우려 들면 한국이 아니게 된다.

03어서와, 강남은 처음이지

10월의 마지막 날, 그는 다음 구역에 이런 제목을 달았다. 어서와, 강남은 처음이지.

반응의 결이 달라진 것도 이때부터다. 동부시에는 어느 신도시 같다는 말이 오갔지만, 강남에는 사람들이 구체적인 지점을 짚기 시작했다. 교보문고 사거리가 맞느냐는 물음에 그는 맞다고 답했고, 그 아래에는 논현사거리가 지긋지긋하게 막힌다는 말이 붙었다. 강남 하면 언주로의 가파른 언덕만 떠오른다며, 거기서 현장 일을 하느라 매일 오르내렸다고 적은 사람도 있었다.

다음 글에서는 청담동이 보인다는 말과 저 숲은 선정릉이라는 말이 나왔고, 그는 둘 다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청담동을 알아본 사람은 마침 그가 쓰고 있던 아파트 자재를 만든 이였다.

런던을 짓기는 쉬웠다.
강남을 짓기가 어려웠다.

04많은 한국 에셋이 필요합니다

11월 1일, 그의 게시글 제목은 문제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 많은 한국 에셋이 필요합니다.

게임에 기본으로 들어 있는 건물은 유럽과 북미의 것이고, 창작마당에는 일본 자재가 풍부하다. 한국의 아파트와 한국의 간판과 한국의 상가 건물은 그에 비해 적다. 그래서 한국 도시를 지으려는 사람은 늘 대체하며 짓는다. 일본 상가로 한국 상가를 대신하고, 홍콩 아파트로 한국 아파트를 대신한다.

자재의 부족은 이 계절 게시판 전체의 조건이기도 했다. 같은 가을 아키하바라를 짓던 사람은 도쿄식 협소 필지에 맞는 건물이 전무하다고 적었고, 항만 도시를 짓던 사람은 한 가지 양식을 고수하기에는 건물 종류가 너무 부족해서 짬뽕 도시가 되었다고 적었다. 지난 겨울호에서 경복궁을 재현하던 사람이 한국식 목탑을 구하지 못해 다른 나라의 탑을 세운 것도 같은 사정이었다.

댓글에서는 한국 건물을 더 내놓으라는 말이 오갔다. 더 많이 달라는 요청에 그는 더, 더, 더라고 받았다.

05어디일까요

11월 6일, 그는 사진 한 장만 올리고 제목을 물음으로 달았다. 어디일까요.

댓글은 답안지가 되었다. 영동대로, 환승센터, 종합운동장 맞은편, 무역센터, 그리고 코엑스를 기대하겠다는 말. 다섯 사람이 각기 다른 이름을 댔는데 다섯이 모두 같은 한 곳을 가리켰다.

재현이 어느 수준에 올랐는지는 이런 데서 드러난다. 도시가 실제 장소로 식별되고, 식별한 사람마다 근거로 삼은 지형지물이 다르다. 누구는 대로의 폭을 보았고 누구는 건너편 경기장을 보았다.

0612월의 대답

Real Korea
Real Korea© 후우운

12월 초, 그는 오래 기다리셨느냐는 제목으로 강남을 다시 올렸다. 본문은 추천을 눌러 달라는 한 줄이 전부였다.

댓글 하나가 이 계절에 대한 답처럼 달렸다. 스카이라인이 실제 강남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고 색감도 실제 사진이라 해도 믿을 정도라는 칭찬이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중저층 건물이 대부분 일본이라 아쉽다고.

칭찬을 받은 자리에서 그는 자재 이야기를 꺼냈다. 멀리서 보면 강남인데 가까이 가면 일본 상가라는 사정을 만든 사람만 알고 있었다. 남의 도시는 인상만 맞추면 되지만 자기가 매일 지나다니는 도시는 그렇지 않아서, 조금만 달라도 만든 사람 눈에 먼저 걸린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지었다. 목동도 지어 달라는 요청에는 계획에 없다고 답하면서도, 하이페리온과 방송사 사옥이 있다면 모르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남은 구역도 열심히 채우겠다는 말이 그해의 마지막 답글이었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동부시·강남 묘사는 사진에 보이는 요소
  • '재현을 택하면 경고가 쌓이고, 경고를 지우려 들면 한국이 아니게 된다'는 편집부 논평
  • '조금만 달라도 만든 사람 눈에 먼저 걸린다'는 편집부 해석. 원문은 '중저층 건물 대부분이 일본이라 아쉬워요'까지만 적혀 있다
  • 한국 에셋 부족 문제의 배경 설명(기본 건물이 유럽·북미, 창작마당에 일본 자재 풍부)은 편집부 서술
  • 아키하바라·항만 도시와의 대비는 같은 호 두 기사의 원문에 근거한 편집부 연결. 경복궁 목탑 대체와의 연결은 2018 겨울호 기사에 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