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하바라, 세 번 고쳐 짓다
시작(始), 고침(改), 재개발, 서부 확장. 한 구역을 가을 내내 고쳐 지은 기록. 지하에서 나오자마자 다른 선로에 덮이는 복층 구조와, 도쿄의 협소 필지에 맞는 건물이 없다는 문제를 함께 읽는다.
도시를 짓는 일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새 땅으로 나아가는 방식과 같은 자리를 계속 고쳐 짓는 방식인데, 가을의 아키하바라는 철저히 후자였다.
제목만 늘어놓아도 그 방식이 보인다. 아키하바라 始. 아키하바라 改. 의식의 흐름대로 개발해 버린 아키하바라. 아키하바라 재개발. 그리고 아키하바라 서부 확장.
01격차의 상대가 찾아오다
시작은 조심스러웠다. 일단 한 번 만들어 본 아키하바라역이라고 그는 적었고, 곧바로 자기 검열을 덧붙였다. 분명 같은 재료로 만드는 건데 다른 사람과의 격차가 느껴진다고.
지면에 실은 첫 사진이 그 조심스러움을 설명해 준다. 고가 선로가 아래쪽 승강장 위를 직각으로 가로지르고 그 아래로 여러 갈래의 선로가 벌어지는데, 정작 역 둘레는 사방이 초지다. 다 지어진 고층 건물은 화면 위쪽 끝에만 모여 있고 오른쪽 아래로 강이 흐른다. 역 하나가 먼저 섰고 도시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 격차의 상대로 지목된 사람이 댓글에 나타났다. 자기는 다른 회사의 선로 자재를 쓴다고 밝힌 그는, 이어서 뜻밖의 고백을 했다. 우에노역은 정말 어렵더라고, 1층 승강장이 2층 역사 콘크리트에 가려지는 게 불편해서 만들다 말았다고.
답글도 길었다. 자기는 다른 계열의 선로를 기본으로 쓰는 탓에 호환이 되지 않아 교체용 모드를 쓰고 있다고, 콘크리트에 가려지는 문제는 위에 갓 같은 걸 씌워 두고 1인칭 시점으로만 안 보면 견딜 만하다고 했다. 그러고는 한 가지를 더 털어놓았다. 우에노역은 배선도가 너무 복잡해서 겉모습만 비슷하게 만들었을 뿐, 실제 승강장 배치는 딴판이라고. 신칸센이 1층 승강장을 쓰는 바람에 두단식 승강장도 되지 못했다고.
격차를 느낀다고 적은 사람과 격차의 대상으로 지목된 사람이, 결국 같은 역 앞에서 각자 포기한 지점을 주고받았다.
02옆 동네부터

아키하바라에 손대기 2주 전, 그는 옆 동네부터 정리했다. 오카치마치는 환승역 규모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역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케이힌 토호쿠선과 야마노테선이 서고, 츠쿠바 익스프레스와 지하철의 다른 역들과 간접 환승이 되며, 옆 선로로는 우에노도쿄라인이 지나고 지하로는 신칸센이 통과한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사진에는 열 몇 갈래의 선로가 도심을 비스듬히 가르며 지나간다. 선로 양쪽으로 유리 고층과 낡은 저층이 뒤섞여 서 있고, 가로수를 심은 대로가 그 사이를 지난다. 왼쪽 위 끝에는 아무것도 짓지 않은 초록 벌판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도시가 어디서 끝나는지도 함께 보인다.
작업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소품 배치 도구가 인식하지 못하는 나무를 어찌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나무 목록에 없으면 소품 목록에 있다는 조언이 붙었지만, 그는 소품에도 없다고 답했다. 그냥 참나무일 뿐인데도 그랬다. 우에노 공원 호수에는 생각 없이 마천루를 하나 박아 넣고는 공원을 개발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전시하겠다고 적었고, 열차 고증은 무시하자고도 했으며, 역 앞 광장은 시간이 없어 만들지 못했다.
그 글의 마지막 줄은 이랬다. 이제 다음에는 진짜로 아키하바라를 만들 수 있겠다고.
03지하에서 나오자마자 덮이는 선로
아키하바라를 재현하려는 사람은 곧 철도의 문제에 부딪힌다. 이 일대는 선로가 층층이 겹치는 곳이라, 신칸센 선로가 지하에서 나오자마자 그 위를 우에노도쿄라인 선로가 덮어 버린다. 그는 이 구조를 기묘하다고 표현하며 복층 선로를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적었다.
게임에서 선로는 대개 한 층으로 놓인다. 지하와 지상과 고가를 같은 자리에 겹쳐 두려면 별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자재 계열이 다르면 그마저 호환되지 않아서, 도시 재현의 난이도는 건물보다 이런 데서 갈린다.
상가는 비슷한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선로가 겹치는 방식은 대체할 수 없다.
04철거가 아니라 이축

始 다음 날 改가 올라왔다. 하루 만에 같은 자리를 고쳐 지으면서 그는 급곡선 구간에서 열차가 서행하도록 바꿨고, 옆 역의 승강장 선로를 다른 계열로 갈아 끼웠으며, 아키하바라역 하단에 역사 건물을 넣었다.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대도시처럼 보인다는 말이 그 아래 붙었다.
사진에 잡힌 것이 그 곡선이다. 초록 띠를 두른 전동차 한 편성이 여러 갈래로 벌어진 선로 사이에서 크게 몸을 틀며 돌아 나오고, 그 뒤로 승강장 지붕이 이어지다 도심의 고층 건물에 가려 끊긴다. 전날 사진에서 역 둘레가 온통 초지였던 것과 달리 여기서는 선로 양옆이 이미 건물로 메워져 있다.
2주 뒤에는 의식의 흐름대로 개발해 버렸다는 제목이 올라왔다. 본문은 한 줄이었다. 그냥 싸그리 다 철거하고 다시 짓는 걸로.
아깝다는 반응이 곧바로 달렸다. 스크린샷을 유심히 보면서 돋보이는 아이디어를 몇 개 배웠는데 철거라니 아쉽다는 것이었다. 그는 완전한 철거가 아니라고 정정했다. 이동 도구로 고스란히 복사해서 시오도메 같은 데 갖다 놓을 예정이라고. 헐린 구역은 사라지지 않고 도시의 다른 자리로 옮겨 갔다.
05허름한 저층 건물이라는 자산

11월의 재개발 글은 도심 한복판의 허름한 경찰서 건물에서 시작한다. 일본에 가면 도심 고층 건물 사이에 낡은 저층이 조금씩 섞여 있는 경우가 있는데, 시부야나 카스미가세키 같은 곳조차 그렇다고 그는 적었다. 서울에도 그런 곳이 있지만 주변과 이질감이 크지 않고 여러 채가 모여 구역을 이루는 편이라, 불편하다기보다 오히려 특유의 감성이 있다고 했다.
그 낮은 건물이 지면에 실은 사진의 한가운데 있다. 유리와 금속으로 마감한 고층들이 사방을 둘러싼 블록 안에 흰 지붕을 얹은 관공서 건물 한 채가 날개를 벌린 모양으로 앉아 있고, 앞마당에는 청록색 분수가, 옆구리에는 차 열 몇 대짜리 주차장이 붙었다. 오른쪽 아래로는 낡은 저층 상가가 한 줄 이어진다.
재현은 계속 자재의 벽에 부딪혔다. 도쿄는 한국과 달리 구획정리사업이 부진한 탓에 작은 필지에 높은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게임 자재 중에는 그런 것이 전무하다는 지적이었다. 10층에서 15층쯤 되는 좁은 건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그 뒤에 붙었다. 같은 계절 강남을 짓던 사람이 한국 자재가 부족하다고 적은 것과 같은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댓글에는 새로 나올 자재 팩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말이 달렸다. 그 팩의 미리보기가 이 게시판에 처음 공개되는 것은 그로부터 사흘 뒤의 일이며, 거기에도 그가 나타나 다음 확장팩이 나오면 아키하바라 재개발을 시작하겠다고 적었다. 그 이야기는 이번 호 Culture 섹션에 있다.
철도 이야기도 계속됐다. 그는 스미다강 서편의 역들을 교통 헬게이트라 부르며 나란히 찍어 올렸고, 그러면서도 실제 대중교통 이용객 수는 안습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고쳐 놓고 위에서 내려다본 소감은 담담했다. 면적상으로 큰 변화는 없다고.
06서부로
가을이 끝날 무렵 이 구역은 서쪽으로 넓어지기 시작했다. 한 역 주변을 네 번 고쳐 지은 뒤에야 옆 블록에 손이 갔고, 그가 사진에 붙인 말들은 짧았다. 미쳐 버린 건폐율, 깨알 같은 주차장, 고층화된 니시 아키하바라 일대.
그 유명한 아키하바라 철교도 이때 놓였다. 생각하던 모습은 아니지만 일단은 만족한다고 그는 적었다. 우에노 공원은 여전히 손대지 못한 채였는데, 조경에 자신이 없어 자꾸 미루고 있다는 이유였다. 대중교통 이용객이 늘지 않아 슬프다는 말도 다시 나왔다.
느린 방식이다. 다른 사람이 도시 하나를 완성할 시간에 이 사람은 역 하나 주변을 다듬었다. 지난 봄호에서 우리는 이 도시가 우에노역 북부를 재개발하고, 게임이 터지기 전 서른두 장을 남기던 것을 보았다. 그때 예감된 작별을 지나 가을의 도시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이번에는 두 정거장 남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