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행화, 게임에서 먼저

가입 이튿날 올린 첫 글이 서울 지하철 2·4호선 급행화 공사였다. 공덕역의 포화와 한강 철교 증설이라는 구체적 난점, 노선도의 형식, 그리고 출구 열넷에 번호를 붙인 부산 서면역까지. 현실의 계획을 재현이 앞질러 시공한 가을의 기록.

광화문
광화문© 한양

10월 12일, 게시판에 새 이름이 나타났다. 어제 스팀에서 가입했다는 인사가 첫 줄이었고, 자기가 만든 광화문 사진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인사드린다는 말이 뒤를 이었다.

그 화면이 지면의 첫 장이다. 성벽과 문루 뒤로 기와지붕의 행랑이 줄지어 서 있고, 문 앞에는 붉게 포장한 광장과 넓은 네거리가 놓였다. 노면에는 버스 전용 차로의 붉은 띠와 교차로 진입 금지를 알리는 주황색 격자 표시가 촘촘히 그려져 있고, 오른쪽 아래에는 벚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01급행화를 게임에서 먼저

연재의 목적은 첫 글에 분명히 적혀 있었다. 최근 서울시의 광역 도시철도 계획에 따라 도심을 거치는 일부 노선을 9호선처럼 급행화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마침 자기도 요즘 서울을 다시 구현하고 있으니, 이 연재를 통해 급행화 과정을 여러분과 같이 먼저 게임 속에서 실현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관심 있는 사람은 많이 봐 달라는 부탁이 뒤에 붙었다.

현실의 계획을 게임이 앞질러 시공하는 일이다. 봄호에서 다룬 파크원은 아직 완공되지 않은 건물이 게임 속에서 먼저 올라간 사례였는데, 건물 하나를 앞질러 짓는 것과 노선 체계를 앞질러 시공하는 것은 규모가 다르다. 급행화는 구조물이 아니라 운행 방식을 바꾸는 일이라 선로와 역과 열차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첫 글에는 자기 소개도 두 줄 들어 있었다. 삼천리 금수강산 광화문 만년승경부터 시작하겠다는 문장에는 한자 표기가 나란히 붙었고, 자기는 외국인이라 타자 속도가 빠르지 못하니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양해가 이어졌다. 새 이름이었지만 아주 낯선 이름은 아니었는데, 강남 만드신 것을 정말 인상 깊게 봤다며 이번 서울도 기대된다는 댓글이 곧바로 달렸다.

02공간이 이미 포화한 상태라서

본론은 2호선이었고 곧바로 구체적인 난점으로 들어갔다. 마포구 공덕역은 지하에 5호선과 경의중앙선, 경의급행선이 이미 지나고 있어 공간이 포화한 상태이며, 2호선을 급행화하려면 여기에 새 궤도를 부설하는 것만이 아니라 역사 자체도 확대해야 해서 문제가 된다는 것이었다.

급행 열차를 운행하려면 완행을 추월할 선로나 대피선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새 선로를 놓을 자리가 있어야 한다. 서울 도심의 지하는 이미 노선 위에 노선이 겹쳐 있어서 그 자리가 가장 귀하다.

두 번째로 짚은 곳은 강 위였다. 2호선이 잠실나루역에서 강변역으로 한강을 건너는 다리를 찍어 놓고 그는 지금 2호선 한 대가 다리를 지나고 있다고 적었는데, 급행화 공사를 하려면 다리의 차도 양쪽에 새 전철 궤도를 증설해야 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런 식으로 하면 여기서 급행 열차 궤도도 생길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그는 첫 글을 맺었다.

03노선도라는 형식

강남 4구 공사계획
강남 4구 공사계획© 한양

나흘 뒤 올라온 것은 사진이 아니라 도면에 가까웠다. 제목은 서울 지하철 급행화 강남4구 공사계획이었고 본문은 두 줄, 2호선 급행화 환승역 역사 확대 계획과 서초구·강남구·송파구·강동구 야경이 전부였다.

지면에 옮긴 화면이 그 계획이다. 불이 켜진 밤의 시가지를 위에서 내려다본 그림 위에 초록색과 노란색 굵은 선이 가로지르고, 그 위에 지하철 표지 모양의 역 표시가 여러 개 찍혔다. 강남역과 종합운동장, 8호선 환승 같은 글자가 선을 따라 붙었고, 위쪽 양 끝에는 태극기와 서울특별시 로고가, 오른쪽 아래에는 9호선 2호선 급행화 역사 확대라는 문구가 얹혔다. 도시 사진을 올리는 게시판이 관공서의 사업 계획도 형식을 그대로 가져왔다.

댓글에는 아름다운 격자라는 감탄과 전형적인 그 모양이라는 지적이 나란히 붙었고, 노선도가 멋있다는 말도 있었다. 앞서 첫 글에서는 버스 노선도 전부 구현했느냐는 물음이 나왔는데, 답은 그냥 일부만 구현했다는 것이었다. 일부만이라도 대단하다는 말이 다시 붙었다.

04실제로 본 사진

인왕산에서 본 서울
인왕산에서 본 서울© 한양

일주일 뒤 올라온 글의 제목은 인왕산에서 본 서울이었다. 본문은 자연과 너무 조화로운 서울시라는 한 줄과, 오래지 않아 자기가 만든 새로운 서울시가 여러분과 만날 것이라는 예고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실제로 본 사진, 이라고.

게임 화면 옆에 같은 자리에서 찍은 실제 사진을 나란히 올렸다. 지면에 실은 것은 게임 쪽인데, 앞쪽에 기와지붕의 한옥이 무리 지어 있고 그 뒤로 중고층 업무 건물이 빽빽이 이어지며, 가운데 녹색 산 위에 전망탑이 하나 서 있다. 뒤로는 산줄기가 몇 겹으로 겹쳐 이어지고 하늘은 짙은 파랑이다. 오른쪽 아파트 외벽에는 실제 건설사 상표가 그대로 붙어 있다.

여름호에서 우리는 북악산 뒤로 보이는 북한산의 능선을 실제 사진과 맞춘 이야기를 다뤘다. 인왕산에서 본 서울도 같은 계보인데, 이쪽은 능선만이 아니라 겹치는 순서까지 맞춰 놓았다. 진짜 유사하다는 말과 소울이 느껴지는 서울이라는 말이 댓글에 붙었고, 한 사람은 영어 한 단어로만 답했다. SEOULITE.

05서면역에 서면

서면역
서면역© 한양

10월 말, 그의 관심이 부산으로 넓어졌다. 서면역을 올린 글의 본문은 안내방송이었다. 이번 역은 서면, 서면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양산이나 해운대 방면으로 가실 승객 여러분은 이번 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시기 바랍니다. 그 아래에 같은 문장이 중국어로 한 줄 더 붙었다.

화면도 노선도 형식이다. 주황색 선과 초록색 선이 십자로 만나고 그 교점에 환승 표시가 놓였으며, 두 선을 따라 부암역과 전포역이 표시된다. 그리고 교점 주위에 1부터 14까지 번호를 붙인 출구 표시가 흩어져 있다. 왼쪽 위에는 부산광역시 로고와 함께 한글·로마자·한자를 나란히 적은 역명판이 붙었다.

이 도시 하나만 지은 것도 아니었다. 도시를 많이 만드는 것 같다며 어떤 도시들이 있느냐고 묻자 답이 돌아왔다. 대한민국 광역시는 다 있고, 그 밖에 수원과 의정부와 충주도 만들었다고.

댓글에서 한 사람이 농담을 던졌다. 서면역에 서면 뭘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답은 성실했는데, 백화점에 가서 쇼핑하려고 1호선을 타고 왔다는 것이었다. 옆에서 한국인만 이해할 수 있는 농담이라는 말이 붙자 그는 설명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서면은 한국어로 멈춘다는 뜻이기도 해서 역 이름과 겹쳐 읽은 말장난이라는 풀이가 돌아왔다.

서면역에 서면 뭘 하시죵
아 그래서 님은 이 서면역에서 멈추어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뒤에 붙었지만 그는 곧바로 받아 적었다. 아, 그래서 님은 이 서면역에서 멈추어 무슨 행차로 오신 걸까라는 뜻이겠다고. 배운 말장난을 한 문장 안에서 다시 조립해 돌려주었다. 서면서면, 하고 장난치는 댓글에는 서면이 부산에서 환승률이 가장 높아 사람이 많은 역이라는 설명이 진지하게 돌아갔다.

06지하철이 없으면

11월 초에는 부산의 가을이 올라왔다. 부산을 만들다 보니 갈수록 다정스러운 가을의 느낌이 많이 생긴다는 한 줄이 본문의 전부였다. 고속도로가 장난 아니라는 감탄에는 이 고속도로가 진짜 오래 걸렸다는 답이 돌아갔다.

그 글에서 그는 조금 서운해했다. 댓글이 왜 이렇게 많지 않으냐고 직접 적었고, 글 올린 타이밍이 안 좋았나 보다는 위로가 돌아왔다. 위안이 되었다고 그는 답했다. 첫눈 오면 겨울 사진을 올려 달라는 부탁에는 짧게 넵, 이라고 했다.

11월 말에 올린 글은 제목만 있고 본문이 없었다. 부산에서 만약 지하철이 없다면 이런 지형으로 인한 교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부산은 산과 바다 사이에 낀 좁은 띠 위의 도시라 평지가 부족하고 도로를 넓히기 어려워서 궤도 교통에 크게 기대는데, 그 조건을 두고 던진 물음이었다.

돌아온 답은 전부 농담이었다. 당연히 열기구라는 답이 먼저 나왔고, 승합차 노선을 급행으로 굴리자는 답이 뒤따랐으며, 지하철이 없으면 지하철을 일본어로 부르고 그것도 없으면 중국어로 부르고 그것도 없으면 다시 영어로 부르면 된다는 다국어 말장난이 이어졌다. 마지막 답은 한 줄이었다. 답은 지상철.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인용·계획·지명·안내방송 문안은 원문 그대로
  • 사진 묘사는 지면에 실은 네 장에 보이는 범위. 게재 사진은 게임 화면 위에 노선·역·출구 표시를 그려 넣은 그림이며 단순 스크린샷이 아니다
  • 게재 사진의 산 위 전망탑과 산줄기가 실제 어느 산인지 원문은 밝히지 않았다. 본문은 '가운데 녹색 산 위에 전망탑'이라고만 적고 산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 원문은 잠실나루~강변 구간의 다리를 '한강대교'라 적었으나 그가 지목한 구간과 이름이 어긋난다. 지면에서는 '한강을 건너는 다리'로만 적었다
  • 급행화의 기술적 설명(대피선·추월선 필요)과 부산 지형 조건 설명은 편집부 배경 서술. 원문은 각각 제약과 물음만 적었다
  • '관공서의 사업 계획도 형식을 그대로 가져온 것', '배운 말장난을 한 문장 안에서 다시 조립해 돌려준 셈' 두 곳이 이 기사의 편집부 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