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에 꽂혀 버렸다
항만을 끼고 도는 도심 고가도로, 300대를 세우는 수제 주차 타워, 강 건너로 옮겨 간 낡은 아파트. 3년째 같은 도시를 파고 있는 사람의 가을 기록을 통해, 확장을 멈추고 디테일만 남은 도시를 읽는다.
가을의 게시판에서 가장 많이 읽힌 사진은 화려한 도시 전경이 아니라 고가도로였다. 그 사진을 올린 사람이 단 설명은 한 줄이 전부였다. 요새 고속도로에 꽂혀 버렸다고.
01짬뽕 도시
사진 속 저녁은 바다를 낀 도심이다. 고가도로가 해안선을 따라 크게 곡선을 그리며 들어오고, 그 안쪽에 붉은 격자 구조의 항만 타워가 서 있다. 관람차가 돌고 부두에는 크루즈선이 대 있으며, 멀리 사장교가 만을 건넌다. 도심 쪽에는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어디를 닮았느냐는 물음이 여럿 달렸다. 카사나이 같기도 하고 호주 도시 같기도 하다는 말, 요코하마 같다는 말, 뉴욕 느낌이 난다는 말. 작성자의 답은 구역마다 달랐다. 해변 관광지는 LA, 해안 상업지구는 시카고, 도심 중앙은 뉴욕, 외곽은 일본식인 짬뽕 도시라고.
짬뽕이 된 이유도 그는 숨기지 않았다. 한 가지 양식으로 고수하기에는 건물 종류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같은 계절 강남을 짓던 사람과 아키하바라를 짓던 사람이 각각 한국 자재와 도쿄식 협소 필지를 아쉬워한 것과 같은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저쪽이 없는 것을 대체했다면 이쪽은 아예 여러 도시를 섞었다.
사진이 아침에 예쁜 이유도 그가 밝혔다. 도시가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해 뜰 때가 가장 좋다는 것이었다.
도로만 찍으면 공학이고
도시만 찍으면 풍경이다.
02이러라고 만든 게임이 아닐 텐데

도로 다음으로 이 사람이 몰두한 것은 주차장이었다. 9월 말, 그는 주차 타워를 하나 올리고 제목에 주차면수를 적었다. 300대. 한 층에 60대씩 다섯 층이라는 계산이 본문에 붙었고, 앞서 만든 것과 견주면 면적은 두 배인데 세울 수 있는 차는 열 배로 늘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지면에 실은 사진에서 그 건물이 보인다. 부두 바로 옆에 다섯 층짜리 개방형 주차장이 서 있고 옥상 데크에는 빨강과 파랑과 노랑 차가 몇 대 세워져 있으며, 왼쪽에는 대형 여객선이 접안해 보딩브릿지가 걸려 있다. 뒤로는 노면전차와 고가 철도, 톱니 지붕의 벽돌 창고가 늘어선다. 벽으로 쓴 것은 고속도로 방음벽이었는데, 자재가 도로와 소품 양쪽에 다 있어 다루기 편했다고 그는 적었다.
노가다 장인 정신이라는 감탄에 그는 이렇게 받았다. 이러라고 만든 게임이 아닐 텐데. 엄청난 노동이라는 말에는 다른 답을 내놓았다. 어느샌가 도시건설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모형 제작 게임이 되어 버린 것 같다고.
며칠 앞서 올린 글의 제목은 더 정직했다. 대체 왜 했는지 모르겠는 짓거리. 도로 폭에 맞는 주차 건물 자재가 없어 직접 만들어 봤는데 굳이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싶게 평범하고, 두 시간이나 걸린 것치고는 보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통로 난간이 제일 고생스러웠다고, 각이 나오지 않아 노드를 쪼개느라 힘들었다고 그는 적었다. 일단 하고 나니 대박이라는 말에 돌아온 답은 짧았다.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고.
300대짜리 타워를 올리며 그는 다시는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만드는 데 너무 오래 걸리고 이동 도구를 다루다 토 나오는 줄 알았다는 이유였다.
03강 건너 새 보금자리

9월의 워터프론트 재개발 글은 다른 그림 찾기로 시작한다. 정답은 중앙부의 고층 아파트 단지였는데, 원래 낡은 아파트 단지가 서 있던 자리에 어울리는 홍콩식 건물을 찾아 바꿔 놓았다는 설명이 붙었다.
헐린 아파트가 어디로 갔는지도 그는 적어 두었다. 기존의 낡은 아파트들은 강 건너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겨 갔다. 게임에서 철거는 한 번의 조작으로 끝나지만 그는 굳이 옮겨 심었고, 강 왼쪽은 땅값 비싼 워터프론트, 오른쪽은 공장지대라고 구역의 성격까지 갈라 두었다. 여기에 다리를 놓으면 딱이겠다는 말 다음에 짠, 하고 다리 사진이 이어진다.
지면에 실은 사진이 그 경계를 한 장에 담고 있다. 왼쪽 기슭에는 야자수를 심은 물가 대로를 따라 유리 고층이 빽빽하고, 곶 끝에는 흰 조가비를 겹쳐 놓은 듯한 오페라 하우스가, 그 위쪽 부두에는 큰 여객선 두 척과 지붕 덮인 경기장이 있다. 강 건너 오른쪽은 결이 아주 다르다. 낮은 집들이 촘촘히 깔린 사이로 같은 규격의 아파트 여러 동이 나란히 서 있고 그 뒤를 철길과 고가도로가 지나며, 두 기슭을 잇는 것은 철제 트러스를 얹은 긴 다리 하나다.
다리를 놓고 나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공장지대와 이어진 탓에 트럭만 오지게 다닌다고, 애초에 이 도시 교통의 대부분이 트럭이라고 그는 적었다. 사람들이 차를 안 타고 다닌다는 탄식에는 느낌표가 넷 붙어 있다. 자동차교와 철교 사이에 보도교를 놓았더니 사람들이 자동차교로는 아예 건너지 않았고, 그는 그 보도교를 철거할지 말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04장식용 부두와 기능하는 부두
같은 달 국제 여객 터미널에서도 계획이 한 번 접혔다. 여객선이 자꾸 육지에 걸려 스폰되는 바람에 부둣가 위치를 통째로 옮겨야 했는데, 부두를 어느 방향으로 놓든 배는 한 방향으로만 나타났기 때문이다.
해법은 분리였다. 옮긴 자리에서는 실제 기능하는 항구를 빼고 장식용으로만 남기고, 기능하는 항구는 배가 곧바로 물가로 나갈 수 있도록 방향을 바꿔 따로 두었다. 전보다 멋은 떨어지지만 게임성도 중요하니 어쩔 수 없다고 그는 적었다. 축구장과 기능하는 부두와 장식용 부두와 오페라 하우스까지 네 개를 계획했다가 셋으로 줄여야 할 것 같다는 말이 그 뒤에 붙었다.
도시가 한계에 닿아 있다는 신호도 이때 나왔다. 택시가 모자라 차고를 설치했더니 택시가 생겼다가 곧바로 사라지기에, 그는 인구 16만밖에 안 되는데 차량 제한이 걸린 것이냐고 물었다. 제한을 보여 주는 도구를 써 보라는 조언에 따라 확인한 결과를 그는 이렇게 적었다. 돌아다니는 시민들은 벌써 한계라고.
05톨게이트의 수수께끼
10월에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도로였다. 기존 고속도로는 뚱뚱하고 공간을 많이 잡아먹는 데다 나들목과 인터체인지가 꼬여 있어 거의 엉킨 실뭉치 상태였다고 그는 적었다. 그것을 다른 계열의 고속도로로 갈아 끼우는 작업이 이어졌는데, 이유는 통행이 아니라 미관이었다. 기본 고속도로 때문에 도시가 분단되는 감이 있고 게임에 반영되지는 않지만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었다.
이 공사에서 그는 처음으로 톨게이트를 놓아 보았고, 곧 이상한 일이 생겼다. 차량이 그리 많이 다니는 것 같지도 않은데, 흑자와 적자를 오가던 도시에 갑자기 2만의 흑자가 계속 이어졌다. 톨게이트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게임을 해 보고 싶다는 부러움이 댓글에 달렸고, 그는 시장님이 시민들을 위해 톨게이트를 없앴으니 글을 내려 달라고 농담으로 받았다. 며칠 뒤 그가 내놓은 결론은 이랬다. 톨게이트를 없앴는데도 수입에 변화가 없는 걸 보니 수입은 톨게이트 때문이 아니라고.
지난 겨울호에서 우리는 차단기를 내릴 수 없어 하이패스가 된 관문을 다뤘다. 한 해 뒤 다른 도시에서는 실제로 요금을 걷는 관문이 섰는데, 정작 그 돈이 어디서 오는지는 세운 사람도 알아내지 못했다.
고속도로 공사는 계속 길어졌다. 한 구간을 반지하로 낮추는 데 여섯 시간쯤 걸린 것 같다고,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다고 그는 적었다. 그 덕에 단절돼 있던 중부와 북부가 다리로 이어졌지만, 단순해 보여도 엄청난 개노가다라고 했다. 옹벽 위 보도를 놓느라 미치는 줄 알았다는 말과 함께, 제발 기본 기능으로 직각 옹벽을 달라는 호소가 붙었다. 아쉬운 점은 그 구간에 통행량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063년째 같은 도시
이 사람이 왜 이러고 있는지는 다른 글의 댓글에 적혀 있다. 심시티 느낌이 난다는 말에 그는 지금 도시가 16만 명짜리이며, 확장을 시키고 싶지만 귀찮기도 하고 쓸 만한 기차역이 없어서 확장은 하지 않고 계속 디테일 작업만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제는 아예 디테일을 높여 풍경을 보려고 게임을 하는 것 같다는 말이 뒤따랐다. 고인물이라는 감탄에는 저 도시만 3년 넘게 플레이 중이라고 했다.
다만 같은 댓글창 아래쪽에서 말이 한 번 뒤집힌다. 큰 도시 모습이 보기 좋다는 말에는 아직 더 늘려야 한다고 답했고, 언제 한번 도시의 각 구역을 소개해 보고 싶다는 말도 남겼다.
지난 여름호에서 우리는 운전면허학원과 종합대학을 정성껏 지은 도시를 다뤘다. 그때의 시설들은 도시의 기능이었고, 없으면 도시가 굴러가지 않았다. 손으로 쌓은 300대짜리 주차 타워와 장식용으로만 남은 부두는 다르다. 게임은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는 기능을 일부러 뺀 채 남았다.
한참 뒤에 달린 댓글 하나가 이 도시의 시간을 보여 준다. 엄청 오래된 글이지만 혹시 아직 아신다면, 하고 누군가 사진 속 다리 구조물이 소품이냐고 물었다. 답은 세 글자였다. 빌딩입니다. 그리고 링크 하나. 질문한 사람은 고맙다며 한강대교에 어울리겠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