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 오래 비워 둔 도시

한 해가 저물 무렵, 1년 9개월 만에 송정을 다시 찾았다. 해양북도 송정목이라는 이름, 섬 하나를 통째로 쓰던 해북대학교, 011편에서 끊기고 사진째 사라진 연재, 화재로 전소된 건물과 황폐해진 읍성. 사라진 기록의 빈자리를 메우려고 되살린 세이브가 이 방문이었다.

송정 전경
송정 전경© Geff

도시를 오래 비워 두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도시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도시는 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줄어도 누군가는 남고, 남은 사람이 무언가를 고친다. 송정은 그 예외에 든다. 1년 9개월 동안 이 도시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01해양북도 송정목

송정의 정식 이름은 해양북도 송정목이고, 한자로는 松汀牧이라 쓴다. 도시가 지어진 기간은 2016년 10월 28일부터 2017년 1월 22일까지로, 석 달이 채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파트 단지로 덮인 흔한 도시였다. 서평호반 1단지가 서고 송정더샵 1차가 서고 송정 타워펠리스가 섰다. 아파트마다 사연이 붙었는데, 건물 하나에 한 가구만 산다거나 아파트를 회사 사옥으로 쓴다는 식이었다. 연재는 도시 뉴스의 형식으로 쓰여서, 기사를 읽어 주는 정성이 고맙다는 인사가 그 아래 오갔다.

송정은 재개발을 거치며 다른 도시가 되었다. 전통과 첨단이 어우러진 도시로 변모했다고 남은 소개문은 적는다. 이 도시는 만든 사람이 처음으로 재개발을 시도한 도시이기도 했다. 원래 목표는 한국식 성곽 도시였지만 끝내 완성되지 못했고, 초기 사진에 보이던 송정의 대부분은 결국 철거되었다.

02섬 하나가 학교였다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대학이었다. 해북대학교는 섬 하나를 통째로 캠퍼스로 썼다. 섬에 있는 대학은 유배지로 유명하다면서요, 라는 제목을 달고 연재에 처음 등장했고 그 아래에는 전설의 시작이라는 한 줄이 붙어 있었다.

개교 전에는 10월 신편입 모집 공고가 올라왔다. 회차 번호를 붙여 나가던 연재였는데, 이 편의 번호는 원래 5.875였다고 나중에 밝혀졌다.

대학은 이 도시 바깥에서도 오래 기억됐다. 캠퍼스를 볼 때마다 새 도시를 시작하고 싶어진다는 말, 이걸 보고 대학 캠퍼스를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너무 힘든 일이더라는 말이 여러 해 뒤의 반응에 남았다. 한때 이 캠퍼스에는 공동 기획으로 세운 국제연합대학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03사라진 연재

연재는 011편에서 끊긴다. 마지막 편의 제목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였고, 본문에는 희망찼던 새 시대의 시작이라고만 적혀 있다. 제목과 함께 보니 의미심장하다는 말이 그 아래 붙었다.

그다음 편들은 남아 있지 않다. 이후의 연재는 다른 형식으로 옮겨졌고, 원본 글이 지워지면서 사진도 함께 사라졌다.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는 말이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빈자리를 메울 방법으로 한 가지가 제시됐다. 오래된 세이브를 되살려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나온 것은 3월이었고, 송정이 다시 열린 것은 그해 11월이다.

04다시 열린 문

11월, 송정이 다시 열렸다. 도시를 이어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고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러 가는 방문이었다.

먼저 전경이 나타났다. 산이 둘러싼 만 안쪽에 시가지가 앉아 있고, 긴 다리가 물을 건너 도시로 들어간다. 다리는 흰 주탑 두 개에서 케이블을 늘어뜨린 사장교로 시작해 섬을 하나 지나고, 다시 고가로 이어져 반도의 도심에 닿는다. 물빛은 회백색이고 뭍은 희끗하다. 멀리서 보면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05세 곳의 안부

새곶 신도심의 마천루
새곶 신도심의 마천루© Geff

가까이 가자 안부가 갈렸다.

해북대학교는 이 도시의 상징 중 하나였다. 지금 그 자리에는 오래전 화재로 전소된 건물들이 그대로 서 있다. 불이 1년 9개월 전에 났는지 그 뒤에 났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도 없는 도시에서 난 불은 기록되지 않고, 남는 것은 결과뿐이다.

송정읍성은 황폐해졌지만 몇몇 건물이 남아 방문자를 반겼다. 성이라는 건축은 애초에 오래 버티도록 지어졌으니, 이 결과는 성의 성능에 부합한다.

송정포해변은 변함없었다. 군데군데 이가 빠졌어도 해변은 해변이었다. 새곶 신도심의 마천루들도 대부분 그대로여서, 안테나 두 개를 세운 검은 탑이 여전히 가장 높고 그 옆으로 흰 곡면 탑 한 쌍과 피라미드 지붕을 인 탑이 물가에 서 있다. 물가의 흰 원형 시설도 그 자리에 떠 있다. 고층 건물은 비어 있어도 서 있는다.

아무도 없는 도시에서 난 불은
기록되지 않는다.

06축소, 그리고 재개발이라는 인사

위성사진
위성사진© Geff

도시의 입구 역할을 하는 인터체인지가 있다. 초창기에는 이 도시의 사진에 자주 등장했다고 한다. 도시가 어릴 때는 입구가 중요한데, 보여 줄 것이 입구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위성사진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송정의 자그마한 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 위에 섬 하나가 떠 있고 그 섬으로 철길이 다리를 건너가며, 가운데 반도에 마천루가 몰려 있고 오른쪽으로는 격자로 구획된 주택가와 강과 커다란 인터체인지가 이어진다. 지도를 81타일 전체로 넓히면 시가지는 더 작아 보인다.

이 축소가 방문의 결론이었다. 가까이서 보면 전소된 대학과 황폐한 성이지만, 멀리서 보면 그저 작은 도시다.

방문자는 돌아 나오며 소감을 남겼다. 오랜만에 보니 탐탁지 않은 곳이 많아, 다시 플레이하게 된다면 전면 재개발에 들어갈 생각이라고. 다정한 문장은 아니지만 정직한 문장이다.

오래 비워 둔 도시를 다시 찾으면 반가움과 실망이 함께 온다. 감회가 새롭다고 적은 사람과 탐탁지 않다고 적은 사람은 같은 사람이다.

송정은 다시 닫혔다. 3월에 되살려 보겠다던 오래된 세이브는 11월에 한 번 열렸고, 사라진 연재의 빈자리는 그날의 사진 몇 장으로 대신 채워졌다. 전면 재개발이 언제 시작될지, 시작되기는 할지 이 기사는 알지 못한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3월의 '고대의 세이브를 되살려볼 생각'과 11월의 재방문을 인과로 이은 것은 편집부의 구성이다. 원문이 둘을 서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 hero·위성사진·마천루 사진 묘사(사장교의 흰 주탑·회백색 물빛·안테나 두 개를 세운 검은 탑·흰 곡면 탑 한 쌍·피라미드 지붕·물가의 흰 원형 시설·섬으로 건너가는 철길·격자 주택가·인터체인지)는 세 사진에서 읽어 낸 것
  • '불이 … 났는지 알 수 없다' — 원문은 '오래전 화재'라고만 적었다. 편집부의 유보적 서술
  • '성의 성능에 부합한다', '거리를 두면 폐허도 풍경이 된다', '고층 건물은 비어 있어도 서 있는다'는 편집부 논평
  • 국제연합대학은 댓글의 회고에만 나오므로 '전해진다'로 처리했다
  • '1년 9개월만에 방문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해북대학교. 오래전 화재로 전소된 건물들', '새곶 신도심의 마천루들도 대부분 그대로', '송정읍성은 황폐해졌네요. 그래도 몇몇 건물들은 남아서', '송정포해변. 군데군데 이가 빠지긴 했지만 변함없네요', '입구 역할을 하는 인터체인지. 초창기에는 많이 나왔었던걸로', '81타일 전체로 보니 … 작아보입니다', '탐탁치 않은 부분이 많아서 아마 플레이하게된다면 전면 재개발'
  • 인용 '탐탁치'→지면 '탐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