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트리미트, 물이 얕은 광장
수변 광장 plaza.b를 가진 도시 미리트리미트를 걷는다. 걸어 들어갈 만큼 얕은 물, 뜻이 붙지 않은 조형물, 뷰만 좋은 유료주차장, 6일과 7일을 태운 불, 그리고 9시 반에 가수가 사라진 콘서트. 하루 단위로 기록된 젊은 도시의 첫 겨울.
좋은 광장의 조건은 무엇일까. 미리트리미트는 답을 하나 안다. 물이 얕으면 된다.
이 도시의 기록은 하루 단위로 매겨진다. 시작, 8일차, 9일차, 20:00, 10일차, 11일차, 13일차, 15일차. 도시의 시간을 실제 시각에 맞춰 두었기 때문에 밤이라 적힌 편은 정말로 밤에 찍혔다. 첫 기록은 도로 이야기도 건물 이야기도 아니었고, 도넛을 팔던 밴은 이제 퇴물이며 깔린 풀까지 베는 핫도그 밴이 간다는 노점 두 대의 세대교체 선언이었다.
01검은 타일과 파란 선

이 도시의 광장은 plaza.b라 불린다. 물가에 있다. 정확히는 물 안에 있다.
바닥은 검은 타일과 회색 타일을 번갈아 깐 격자다. 광장 앞쪽으로 파란 선 한 줄이 길게 지나며 물의 경계를 표시하고, 선 너머는 매끈한 포장이다. 수심이 얕아 첨벙이며 걸어 다닐 수 있다고 전해지는데, 우리는 그 말을 확인해 보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는 편이 나은 소문도 있다.
광장 둘레에는 건물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다. 유리로 마감한 사무동 한 채가 광장 정면에 서고 그 옆으로 도넛 가게와 커피 가게의 간판을 인 낮은 상가가 붙으며, 도로 건너에는 자전거 도로가 초록으로 칠해져 있다. 검고 푸른 전차가 그 옆을 지나고, 광장 끝에서 바다가 시작된다.
아직 도시라기보다는 도시가 될 예정인 곳에 가깝다. 그런데도 이 광장은 벌써 광장답다. 사람이 모이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물가에 서서 무언가를 본다. 저녁이 되면 자색 노을이 지고 밤이 온다고 기록은 전한다.
02뜻이 붙지 않은 조형물
광장 한쪽에 검은 금속판 몇 장을 세워 만든 조형물이 있다. 얇은 판이 서로 기대어 서서 멀리서 보면 사람 몇이 마주 선 것처럼도 보이고, 각도를 바꾸면 그냥 판으로도 보인다. 낮은 단 위에 올라앉아 광장과 바다 사이를 지키고 있다.
이 도시의 기록은 그 앞에서 한 번 멈춘다. 저 동상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라고 적혀 있고 다음 줄에는 물음표 세 개만 있다. 도시를 만든 쪽도 답을 모른다.
젊은 도시에는 그런 것이 있다. 아직 뜻이 붙지 않은 것들. 시간이 지나면 뜻이 붙을 수도, 끝내 붙지 않을 수도 있다.
03뷰는 좋다
광장 옆에는 유료주차장이 있다. 이 도시의 기록에서 가장 솔직한 대목이 여기다.
주차장은 톨게이트 자재에서 소품만 떼어 와 만들었다. 근처에 콘서트장을 지을 것을 대비해 미리 놓은 시설이었는데, 막상 열고 보니 주민들 차로 꽉 찼다. 기록은 이렇게 적는다. 이미 꿈이고 희망이고 없다고. 그러고는 곧바로 덧붙인다. 정보) 뷰는 좋다고.
계획은 어긋났고, 쓰임은 바뀌었고, 그래도 뷰는 좋다. 대부분의 도시가 이렇게 만들어진다.
계획은 어긋났고, 쓰임은 바뀌었고,
그래도 뷰는 좋다.
046일과 7일의 기억
11월에 이 도시는 6일차와 7일차의 사진을 뒤늦게 올렸다. 제목은 6일과 7일의 기억이었고, 사진에서는 불이 번지고 있었다.
기억이 불타 버렸다는 말이 그 아래 붙었다. 나무가 많아서 한번 불이 붙으면 끝이 안 난다고 도시를 만든 쪽이 답했다.
그다음부터는 진화 방법을 두고 짧은 논쟁이 이어졌다. 소방헬기를 잔뜩 넣어야 한다는 말이 먼저 나왔고, 빠르게 투입하려면 물가 근처에 지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냥 수원지를 0.3초만 찍어 두면 된다는 방법도 나왔는데, 그러면 도시를 몰살시킬 셈이냐는 반문에 건물이 무너질 만큼은 안 퍼진다는 경험담이 돌아왔다. 무너지던데, 바로 폭삭 하던데. 예전에 강좌를 쓰다 그렇게 날려 먹었다는 회고로 논쟁은 끝났다.
불이 난 자리를 이 도시가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기록에 없다. 다음 편은 11일차였고, 불 이야기는 다시 나오지 않는다.
05광장에서 열린 콘서트

겨울의 어느 평화로운 월요일, 그 망한 콘서트장에서 정말로 콘서트가 열렸다.
사진은 무대가 아니라 옆 건물 안에서 찍혔다. 유리로 둘러싼 사무실 라운지에 주황색 소파와 흰 탁자가 놓여 있고, 창 너머 도로 건너편에서 공연이 돌아간다. 화면을 세운 무대와 그 앞에 모인 사람들, 천막 몇 개, 그리고 뒤로 이어지는 바다가 한 장에 다 들어온다. 옆 건물에서도 공연을 볼 수 있다는 말은 이 장면을 두고 한 말이었다.
현장 분위기는 무척 뜨거웠다고 한다. 다만 배경으로 흐르던 노래는 전주만 반복하다 박수 소리가 나는 대목을 계속 되풀이했고, 콘서트에 가수를 더 넣는 방법이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말이 그 아래 붙어 있다.
그리고 9시 반이 되자마자, 손을 흔들던 사람들을 남겨 둔 채 가수는 어디론가 증발해 버렸다. 시민들은 뒤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은 다른 가수 차례였다. 무슨 노래가 배경으로 흐를지 궁금하다고 적은 뒤 기록하던 사람은 거기서 화면을 껐고, 그 문장이 미리트리미트가 그해 남긴 마지막 기록이다.
이 도시의 관문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이번 호 Works 섹션에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