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도르의 겨울
겨울호 커버스토리. 라페리아 남부의 문화 수도 칸도르를 여름 축제가 끝난 계절로 들어가 읽는다. 6세기에 처음 등장해 2003년 상설이 된 크리스마스 마켓을 중심에 두고, 자정까지 열리는 광장과 다시 놓이는 역사 지구, 멈춰 선 공항 공사까지 기록했다. 설정·연혁·축제·공사 경과는 원문 근거가 있고, 마켓의 저녁 묘사는 사진에 근거한 재구성이다.
칸도르는 여름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가든 광장과 빅토리아 광장에서 축제 그랑도르가 열리고, 도시는 그 몇 주를 위해 일 년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은 기록은 그 시절을 밤이 깊도록 거리가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대낮같이 밝힌 불빛이 화려했다고 전한다.
축제는 끝나기 마련이어서, 사람들이 돌아가고 광장의 무대가 걷히면 칸도르에는 다른 계절이 남는다. 우리는 그 계절을 보러 갔다.
01정복자의 이름을 쓰는 도시
칸도르는 라페리아 남부에 있다. 상공업이 일찍 발달했고 그 위에 문화산업이 얹히면서 문화 수도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름의 유래는 도시보다 오래됐는데, 기원전 4세기에 알만 왕국의 왕 알렉산더 칸도르가 이 지역을 정복한 뒤 자기 성을 따 도시를 세웠고 그때의 이름이 이천 년을 건너 지금까지 남았다.
정복자의 성이 도시 이름이 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드문 것은 그 이름이 정복의 기억을 거의 남기지 않은 채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오늘의 칸도르에서 알렉산더 칸도르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거의 없고, 도시는 이름의 뜻을 잊은 채 소리만 오래 간직해 왔다.
026세기의 시장, 2003년의 광장

크리스마스 마켓은 도시보다 한참 늦게 왔다. 알렉산더 칸도르가 성벽을 세울 무렵에는 없었고 서기 6세기에 이르러서야 흔적이 나타나는데, 그 뒤로 천오백 년 동안 마켓은 섰다가 걷히기를 되풀이했으리라 짐작된다. 겨울마다 어딘가에 나타났다 봄이면 사라지는 계절 장기(臟器) 같은 것이었다.
마켓이 지금의 자리를 얻은 것은 2003년이다. 그해 칸도르 시정부가 도심의 공터에 상설 크리스마스 마켓을 지었고, 천오백 년을 떠돈 시장에 마침내 주소가 생겼다. 상설이라는 말은 조금 이상하게 들린다. 크리스마스는 일 년에 한 번인데 시장은 늘 그 자리에 있다는 말이니까. 그러나 칸도르를 걸어 보면 그 결정이 이해되는데, 이 도시는 축제를 임시로 다루는 법이 없다.
도시는 마켓의 이용 안내를 따로 남겨 두었다. 광장 하나를 두고 입장료와 운영 시간과 찾아오는 길을 나란히 밝힌 문서다.
| 항목 | 안내 |
|---|---|
| 입장료 | 무료 |
| 운영 시간 | 오전 10:00 – 자정 |
| 대중교통 | 지하철 가든 스퀘어역 |
자정까지 문을 여는 시장은 흔치 않다. 마켓 둘레에 호텔이 여럿 있어 밤늦게까지 머물러도 된다는 설명이 안내에 붙어 있고, 이 시장 특유의 아늑함은 밤에 진가를 발휘한다는 문장도 함께 적혀 있다.
03마켓의 저녁
해가 지면 마켓에 불이 들어온다. 붉은 지붕을 얹은 목조 매대가 광장을 따라 늘어서고 그 위로 알전구가 낮게 걸리며, 팔각 정자 모양의 큰 매대가 광장 한가운데 서고 둘레로 사람이 모인다. 관광객만 있지는 않아서,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과 장바구니를 든 사람과 지나가다 문득 멈춰 선 사람이 뒤섞이고, 빈 술통을 세워 만든 탁자에 몇이 붙어 서 있다.

마켓 뒤로는 도심의 상업 건물이 그대로 서 있고, 커피 체인의 초록 간판과 호텔의 붉은 간판이 매대 지붕 너머로 보인다. 이 대비가 칸도르의 겨울을 설명한다. 이곳의 마켓은 옛 거리를 재현한 관광 구역이 아니라 퇴근 시간의 사람들이 그대로 흘러드는 도심의 광장이다.
사진을 본 사람들의 반응도 그 지점에 몰렸다. 간판이 선명해서 오히려 몰입이 잘 된다는 감상이 있었고, 도시 사진이라기보다 사람 사는 장면에 가깝다는 말도 있었다. 이 마켓의 사진은 카페 바깥에서도 한 차례 호평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큰길은 마켓 바로 옆을 지나는데, 차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전조등이 젖은 노면에 길게 번진다. 광장 안은 따뜻하고 바깥은 차갑다. 그 경계가 보도블록 한 줄로 갈린다.
천오백 년을 떠돈 시장에
2003년에야 주소가 생겼다.
04역사 지구를 다시 놓다

마켓을 나오면 역사 지구가 이어지는데, 낮은 석조 건물들이 어깨를 맞대고 블록을 이루고, 가운데에는 초록 지붕을 인 원형 건물이 서 있다. 네거리마다 나무를 심은 삼각형 녹지가 끼어 있고, 그 안에 연보라와 흰 꽃을 단 나무가 섞여 있다. 창고였을 건물과 상관(商館)이었을 건물이 지금은 다른 쓰임을 얻고도 정면만은 그대로다.
이 구역은 최근 한 번 다시 놓였다. 도시는 전면적으로 파리 양식을 따르던 방침을 접고 그 양식을 일부 구역에만 남기기로 했으며, 이미 지어 둔 구역도 상당수 헐거나 다시 지었다. 역사 지구에서는 거리의 나무와 화단을 전부 갈아엎었고 벤치를 새로 놓았으며, 원래 있던 가로등을 걷어 내고 파리식 가로등을 하나씩 손으로 세웠다.
공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어서 사진 한쪽에는 비계와 푸른 안전망을 두른 건물이 있고, 그 앞에 공사 차량이 서 있다. 도시가 제 얼굴을 고치는 장면이 관광 사진 안에 그대로 들어와 있다.
이 무렵 칸도르는 관광청 명의의 글을 연달아 내놓았다. 칸도르가 살아 숨 쉰다면 그것은 역사 지구를 이르는 말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도시는 끊임없이 발전하지만 오래전부터 지켜져 온 가치는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고 적었고, 슬로건은 Keep — Candor였다. 문장이 진짜 관광청 같으냐는 물음에 그렇게 보이도록 썼다는 답이 돌아왔고, 이 도시를 현대미술처럼 작업하고 있다는 말도 함께 나왔다.
05절벽과 활주로
계획대로 되지 않은 자리도 있다. 12월에 칸도르 천문대로 가는 도로가 연결되었는데, 도로 옆 절벽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정하지 못한 채였다. 도시가 조언을 구하자 일단 나무를 잔뜩 심으라는 답이 먼저 붙었고, 이 세상 도로가 아니라는 감탄과 저기 들어갈 품만 생각해도 어지럽다는 말이 뒤를 이었다.
공항은 더 오래 멈춰 있다. 착공한 지 반년이 되도록 방향을 잡지 못해 공사가 중단된 상태였고, 연말에 도시는 설계안을 공개 모집하기로 하면서 조건을 셋 걸었다. 이미 놓은 활주로는 반드시 남길 것, 부지는 정해진 도로 안쪽을 넘지 않을 것, 되도록 항공사진 위에 계획도를 그려 올 것.
응모작이 다섯 편을 넘으면 1등에게 상품을 준다는 단서도 달렸다. 출품한 사람이 그대로 당선자가 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고 도시는 밝혔다. 문화 수도의 공항은 그렇게 한 해를 넘겼다.
06몇 번째 칸도르인가
칸도르는 지금도 커지고 있다. 인구는 삼백만을 넘었고 대도시권까지 넓히면 천만에 이르며, 대부분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예로부터 무역이 발달한 도시답게 그 계통의 일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만한 도시가 도심 한복판의 광장을 겨울마다 시장에 내어 준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꽤 사치스러운 일이다.
도시는 그사이 다른 얼굴도 몇 개 늘렸다. 굽이굽이 휘어진 도로와 경사진 언덕을 따라 작은 마을이 하나 생겼고, 서양식 건물 사이에는 차이나타운이 들어섰다. 동서양이 섞이는 편을 좋아한다는 것이 그 구역을 만든 쪽의 설명이었다.
한 해가 끝날 무렵, 누군가 칸도르의 사진 아래에 물었다. 이건 몇 번째 칸도르냐고. 농담이었지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이 도시는 방침을 바꾸고 구역을 헐고 다시 짓기를 되풀이해 왔고, 그때마다 이름만 그대로 남았다.
돌아 나오는 길에 마켓을 한 번 더 지났다. 아까보다 사람이 줄었고 매대 몇 곳은 벌써 덮개를 씌우고 있었지만 알전구는 여전히 켜져 있었다. 광장은 내일 저녁에도 같은 시각에 불을 켠다. 2003년부터 그래 왔고, 그 전에도 어딘가에서 천오백 년 동안 그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