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나이, 스스로를 낙원이라 부르는 항구
12월에 문을 연 남쪽의 항구도시 카사나이를 찾았다. 물 위로 낮게 엎드린 곡선 건물, 크루즈가 대는 부두, 크리스마스에 열린 대교, 그리고 공항급행의 이름을 어떻게 읽느냐를 두고 벌어진 첫 논쟁. 개장 한 달 만에 공항과 도심과 바다 건너를 모두 이은 도시의 첫 겨울.
도시가 스스로를 낙원이라 부르는 일은 흔하다. 그 별명이 어울리는 일은 흔하지 않다.
카사나이는 12월에 문을 열었고, 열자마자 스스로를 지상낙원이라 소개했다. 우리는 그 말이 과장인지 확인하러 갔다.
01물에서 본 도시
카사나이는 물에서 봐야 하는 도시다. 배를 타고 만으로 들어가면 도시가 정면으로 선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가에 낮게 엎드린 곡선 건물이다. 푸른 유리 몸체 위로 짙은 지붕이 파도처럼 부풀었다 잦아들며 물에 닿고, 그 뒤로 도심이 선다. 첨탑을 인 통신탑이 스카이라인 한가운데를 세로로 가르고, 왼쪽에는 왕관 모양 머리를 얹은 석조 고층 건물이, 오른쪽에는 유리와 화강암의 사무동이 늘어선다. 사무동 벽에는 은행과 백화점의 간판이 붙어 있다.

물가 가까이에는 낮은 옛 건물들이 남아 있다. 청록으로 산화한 돔, 유리를 씌운 큰 돔, 모자이크로 마감한 채 첨탑을 세운 작은 돔이 이웃해 있다. 그 뒤로 크루즈 한 척이 대 있는데 도시의 크기에 비해 배가 꽤 크고, 배 너머로는 초록 언덕이 이어지며 언덕 앞에 발코니를 두른 흰 주거탑이 선다.
물에는 부표가 줄지어 떠서 항로를 표시한다. 이 도시가 무엇으로 먹고사는지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다.
02낙원이라는 단어
낙원이라는 말은 보통 자연에 쓰는데, 카사나이는 조금 다르다. 이 도시의 물가에는 해변이 아니라 방파제가 있고 야자수보다 크레인이 많으니, 낙원의 조건이 한가로움이라면 카사나이는 낙원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도시를 낙원이라 부르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물 위에서 도시를 볼 때다. 만 전체가 도시를 향해 열려 있어 어디에 서든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시가 제 전체를 한 번에 보여 주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어서, 대부분의 도시는 걷는 사람에게 조각으로만 나타난다. 카사나이는 통째로 나타난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감출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도시는 조각으로 나타난다.
카사나이는 통째로 나타난다.
03크리스마스의 다리, 그리고 한 줄의 질문

문을 연 지 3주 만에 이 도시는 대교를 열었고, 그날이 크리스마스였다. 신도시가 가장 먼저 짓는 것이 다리라는 사실은 이 도시의 성격을 말해 준다. 병원도 학교도 아니고 다리다. 항구가 대개 그렇듯 카사나이는 처음부터 어딘가와 이어지려고 만들어진 도시다.
그런데 개통을 알린 기록에는 정작 다리 이야기가 없다. 사진 아래 적힌 문장은 한 줄뿐이었고, 내용은 고화질 사진을 저장하는 방법을 알려 달라는 부탁이었다.
답은 곧 달렸다. 단축키 두 개를 함께 누르면 되고 정확히 네 배 해상도로 찍힌다는 설명이었는데, 해상도를 조절하는 도구는 꺼 두고 들어가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하나 더 배워 간다는 대답이 그 아래 이어졌다.
도시의 첫 대교가 열린 날의 기록은 그렇게 사진 저장법 문답으로 남았다. 다리를 짓는 일과 다리를 찍는 일이 같은 무게로 놓여 있다.
연말에는 공항급행의 종착역도 열었다. 공항에서 도심까지 15분. 문을 연 지 한 달도 안 된 도시가 벌써 공항과 도심과 바다 건너를 모두 이어 놓았다. 개통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이번 호 Works 섹션에 실었다.
04첫 방문자들
문을 연 직후 이 도시를 본 사람들이 남긴 말이 있다. 뭔가 락밴드가 어울릴 것 같은 도시라고. 스카이라인이 너무 좋다고. 비바람이 치는 바다도 보여 달라고.
세 마디가 저마다 다른 것을 짚는다. 첫 번째는 도시의 인상을, 두 번째는 도시의 선을, 세 번째는 도시의 날씨를 물었다.
도시를 지은 쪽은 첫 번째 말에 되물었다. 트럭이 있어서 그러느냐고. 세 번째 말에는 더 짧게 되물었다. 왜냐고, 물음표를 다섯 개 붙인 채였다.
세 번째가 가장 어려운 주문이다. 맑을 때 낙원인 곳은 많고, 비바람이 칠 때도 낙원인 곳은 드물다. 카사나이의 첫 겨울은 맑았다.
05이름을 어떻게 읽는가
연말의 마지막 소식은 공항급행 광고였다. CEX를 이용해 더 빠르게 카사나이 여행을 떠나라는 한 줄이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반응은 노선이 아니라 이름으로 몰렸다. 발음이 좀 그렇다는 말이 먼저 나왔고, 켁스가 아니냐는 물음과 첵스라고 부른다는 답이 이어졌다. 도시를 지은 쪽은 아니라며 알파벳 하나를 다시 짚었고, 결국 그 발음이 어때서 그러느냐고 버텼다. 옆에서는 카사노바를 떠올린 사람도 있었다.
농담 사이에 한 마디가 섞여 있었다. 카사나이의 설정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이 도시가 그해 남긴 문서는 개통일과 소요 시간과 운임표, 그리고 노선 이름 하나가 전부였다. 스스로를 낙원이라 부른 도시가 첫해에 남긴 공식 기록치고는 단출하다.
다음 계절에 이 도시가 비바람을 보여 줄 수 있을지, 우리는 조금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