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복원해야 하는가

경복궁을 다시 세우는 일은 곧 '어느 시절로 되돌릴 것인가'라는 물음이었다. 그해 봄 카페에서 나란히 올라온 두 연재는 하나는 2018년의 궁을, 다른 하나는 고종대의 완전 복원을 골랐고 마지막 편이 같은 날 올라왔다. 축소된 실제 복원 계획과 자재 목록, 그리고 오래 남지 못한 두 궁을 나란히 놓고 읽는 Culture 에세이.

다시 세워진 궁
다시 세워진 궁© Geff

궁을 다시 세우기로 한 사람은 곧바로 곤란한 물음 앞에 선다. 어느 시절의 궁인가.

2018년 봄, 카페에서 이 물음에 답해야 했던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 경복궁을 세우는 연재가 두 갈래로 나란히 올라왔고 지으려다 접은 사람이 하나 더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연재의 마지막 편이 5월 21일 같은 날 올라왔다.

01같은 궁, 다른 시대

한쪽이 고른 답은 2018년의 경복궁이었다. 고종 때의 궁으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한옥 자재가 넉넉지 않고 복원에 걸릴 시간도 길다는 이유로, 전각 수가 적은 현재를 기준으로 빠르게 세우기로 했다고 그는 밝혔다. 그렇게 세워진 궁의 공사 기록은 이번 호 Works 섹션에 있다.

다른 쪽은 정반대를 골랐다. 게임 속 복원이다 보니 관람객의 동선이나 사후 활용을 고려할 필요가 없어졌고, 그래서 고종대 경복궁의 원형을 완전히 되찾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적었다. 현실의 복원을 붙잡아 두는 조건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는 가장 욕심 많은 답을 골랐다.

완전 복원이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그 자리에서도 정리되지 않았다. 최초의 완전 복원 타이틀을 가져가시라는 덕담에 먼저 하신 분이 있지 않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왔고, 그게 완전 복원이었느냐고 되묻자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상공에서 찍은 사진이 없어 확인할 길이 없다는 이유가 붙었다.

두 연재는 서로를 의식했다. 더 이상 쓸 경복궁 글이 남지 않았으니 견제하는 것이냐는 농담이 오갔고, 이렇게 경복궁 타이틀을 뺏겼다며 자기 것을 공개하기 부끄럽다고 적은 사람도 있었다. 남의 현실 도시 프로젝트를 빼앗아 버린 느낌이라는 사과 아닌 사과가 그 아래 이어졌다.

그 세 번째 궁은 4월 4일 사진 한 장으로 시작했다. 경복궁 재현 프로젝트라는 제목 아래로 기대한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고, 고궁 자재를 만들던 이에게 이게 다 그분 덕분이라는 인사가 붙었다. 다음 편은 올라오지 않았다.

0225퍼센트의 궁

지금 우리가 걷는 경복궁은 고종이 중건한 궁의 약 4분의 1이다. 1차 복원 사업으로 광화문과 흥례문 등이 되살아나며 그만큼이 채워졌다.

나머지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답은 한 번 바뀌었다. 2015년 12월 문화재청이 2차 복원 세부계획을 조정하면서 당초 2030년까지 끝낼 예정이던 사업은 2045년으로 열다섯 해 미뤄졌고, 되살릴 건물은 254동에서 80동으로, 예산은 5400억 원에서 3000억 원으로 줄었다.

축소의 이유로 제시된 것은 두 가지였다. 관람 편의를 높이는 일, 그리고 복원한 뒤의 관리와 활용 문제. 이 소식을 옮긴 연재는 신문 기사의 형식을 그대로 흉내 내어 큰따옴표 안에 제목부터 달아 놓았다. 경복궁 복원사업 대폭 축소.

03이유가 남기는 물음

원문은 이 결정이 몇 가지 물음을 남긴다고 적었다. 관람하기 어려운 문화재, 그러니까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문화재보다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문화재로 남겨 두는 편이 옳은가. 궁을 빽빽이 채우면 궁은 더 궁다워지겠지만 걷기는 나빠지고, 비워 두면 걷기는 좋아지지만 그 빈터는 무엇의 빈터가 되는가.

관리가 어려워서라면 되살릴 건물과 그러지 않을 건물을 나누는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하는가. 174동이 목록에서 빠졌는데, 그 목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물음도 함께 적혀 있었다. 현대인의 삶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문화재를 복원해야 하는지, 완전히 소실된 건물을 현대인의 손으로 다시 짓는 일이 문화재의 가치에 부합하는지.

원문이 스스로 내놓은 답에 가까운 대목은 쓰임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와 지금의 경복궁은 쓰임이 다르고 사용하기 위한 건물과 그렇지 않은 건물은 엄연히 다른데, 사용이라는 목적이 사라진 이상 새로 되살리는 문화재도 단순한 복원과 유지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인과의 조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그는 적었다.

04훼손도 역사인가

이 물음은 연재의 첫 편에서 이미 나왔다. 서울의 역사 유적은 지난 백여 년간 강점기와 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며 심하게 훼손됐는데, 이 훼손조차 역사의 흐름으로 보고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최대한 되살려 옛 명성을 되찾는 것이 옳은지. 실제 경복궁이 너무 많이 훼손돼 게임 안에서 구현할 때 애로가 많았다는 실무적인 사정이 그 물음 바로 옆에 적혀 있다.

훼손조차 역사의 흐름으로 볼 것인가,
되살려 옛 명성을 되찾을 것인가.

두 번째 편은 축이 훼손된 과정을 길게 다뤘다. 흥례문 영역은 조선물산공진회를 명목으로 이미 헐린 상태였고, 1916년부터 그 터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올라가면서 궁의 축이 어긋나고 광화문이 옮겨졌으며 근정전은 육조거리에서 완전히 가려졌다. 청사는 1995년 8월에 해체를 시작해 이듬해 11월 지상부 철거가 끝났다.

그러고 나서 원문은 훼손된 경복궁도 경복궁이냐고 물었다.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가 붙인 대답이었고, 되살린 경복궁이 정통성과 역사성을 이어갈 수 있느냐는 결국 관점의 차이로 보인다는 말이 뒤따랐다. 그 아래 댓글에는 내용이 길어 다들 읽으실지 모르겠다는 걱정과, 의미 있는 구조물을 만들면 사설이 쓰고 싶어지는 법이라는 대답이 나란히 달렸다.

05목록이 먼저 있었다

채워지는 궁
채워지는 궁© Geff

두 궁이 서기 전에 목록이 먼저 있었다. 그해 3월 카페에는 고궁 자재의 작업 현황표가 두 번 올라왔는데, 처음에는 경회루와 근정전, 수정전, 강녕전, 근정문, 행랑 세트가 완성으로 표시되고 전각 세트와 숭례문이 작업 중이었다. 여드레 뒤의 두 번째 표에서는 그 둘도 완성으로 바뀌었고 덕수궁 중화전이 새로 붙었다.

그 아래 구상 목록이 훨씬 길었다. 기와 주거용과 초가 주거용과 초가 상업용이 크기별로 늘어서고 포도청과 성균관과 향교와 서당이 각각 경찰서와 대학교와 고등학교와 초등학교를 대신할 자리에 놓였으며, 갓 쓴 도포 차림의 선비부터 홍색과 청색과 녹색 상복을 입은 관원까지 열두 종류의 시민이 적혀 있었다. 초가가 기대된다는 말에 창작마당에 전무후무한 물건이 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비슷한 무렵 한국의 유산이라는 제목의 목록도 따로 돌았다. 5대 고궁과 한양도성, 종묘와 의정부, 경주의 절과 무덤과 첨성대, 근대 서울의 청사들, 그리고 전국의 역과 공항과 다리가 주관적인 중요도 순으로 적혔다. 다 만들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함께 순차적으로 해 보자는 답이 붙었다.

어디까지 되살릴 것인가 하는 물음은 이 목록들에서 먼저 한 번 답해졌다. 목록에 없는 건물은 지을 수 없다.

06남지 않은 궁

자재가 생겨도 궁은 도면대로 서지 않았다. 창작마당에 올라온 자재는 실제보다 커서 전각이 실제보다 촘촘하게 들어섰고, 도면상의 위치와 실제 배치가 어긋나면서 공간이 부족해 아예 놓지 못하는 전각이 생겼다. 현실에서는 선택이 전각을 지우고 게임에서는 공간이 지운다는 차이만 있을 뿐, 완전한 복원이 어렵다는 사정은 양쪽이 같았다.

순서도 현실을 따라갔다. 중심축을 세운 뒤 동측 구역부터 채웠는데 실제 경복궁도 근정전 동측이 먼저 복원되고 있고, 텅 빈 부지가 너무 많은 현실의 경복궁을 게임 안에서나마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담긴 것 같다고 그는 적었다.

8월에 올라온 근황 글에는 훗날 각 전각별 맞춤 자재로 다시 구현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는 한 줄이 붙어 있었다. 전각이 빽빽한 모습이 멋지다는 댓글에는, 갈수록 귀찮아져서 복사해 붙여 넣은 것이 문제이기는 한데 정확한 전각 자료가 없다 보니 복사해 붙여도 별 차이가 없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두 궁 다 오래 남지는 않았다. 하나는 연재가 끝난 직후 컴퓨터를 포맷하면서 사라졌고, 다른 하나는 여름에 이르러 불러오는 일 자체가 일이 되었다. 눈 내린 궁 사진을 보고 정말 불러오기에 성공한 것이냐 아니면 예전에 찍어 둔 것이냐고 묻자, 그 도시에 쓴 자재만 골라서 불러오면 되기는 하는데 구독한 자재를 전부 불러오면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며칠에 걸쳐 자재를 대폭 줄인 뒤에도 사정은 같았다.

2045년이 되면 경복궁에는 80동이 더 서 있을 예정이다. 그때의 궁은 지금의 궁과 다를 테고, 2018년을 기준으로 세워졌던 궁이 그 차이를 재는 자가 될 수도 있었다. 지금은 둘 다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174동(254−80)은 편집부 계산
  • '가장 욕심 많은 답을 골랐다' — 편집부 논평 1
  • '목록에 없는 건물은 지을 수 없다' — 편집부 논평 2. 05절의 두 목록에 근거한 요약
  • '현실에서는 선택이 전각을 지우고 게임에서는 공간이 지운다' — 990 원문 두 문장의 편집부 압축
  • 맺음의 2045년 전망은 원문 계획 수치에 근거한 편집부 서술이며, 수치가 검증 전이므로 함께 유보 대상이다
  • '두 연재의 마지막 편이 5월 21일 같은 날' — 982와 990의 게시일 대조에서 나온 사실. 두 글이 서로를 언급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