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통의 계절

크리스마스에 열린 카사나이 대교와, 닷새 뒤 문을 연 공항급행 CEX의 종착역 베키키역. 개장 한 달도 안 된 도시가 겨울에 두 번 리본을 끊었다. 공항까지 15분이라는 숫자가 공개된 이튿날, 정작 그 공항은 아직 짓는 중이라는 말이 다른 글의 댓글에 적혔다. 운임표와 여권과 지도를 갖춘 신도시의 첫 달 기록.

카사나이 대교
카사나이 대교© HOON

12월 5일, 서울을 짓던 연재가 마흔 장이 넘는 사진을 한꺼번에 올리고 작별을 고했다. 같은 날 같은 사람이 사진 한 장짜리 글을 하나 더 올렸는데, 본문은 없고 제목에 도시 이름만 적혀 있었다. 카사나이.

그 도시는 문을 연 지 3주 만에 대교를 열었고 닷새 뒤에는 공항급행의 종착역을 열었다. 병원도 학교도 아니고, 겨울 한 달 동안 이 도시가 끊은 리본은 둘 다 어딘가와 이어 주는 시설의 리본이었다.

01크리스마스의 다리

12월 25일, 카사나이 대교가 열렸다. 크리스마스에 다리를 여는 데에는 실용적인 이유가 없고 다리는 아무 날에나 열어도 되는데, 개장 3주 차의 신도시가 그날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다리 한 채였다.

개통을 알린 글에는 사진이 세 장 붙었다. 지면에 실은 한 장은 다리를 정면에서 잡은 사진이 아니라 노면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찍은 사진인데, 화면 오른쪽 절반을 짙은 초록색 화물차 앞머리가 가로막고 그 뒤로 위험물 표지를 붙인 붉은 화물차가 한 대 더 따라붙는다. 왼쪽 멀리 사장교의 주탑에서 케이블이 부챗살처럼 내려오고, 다리 건너에는 첨탑을 인 통신탑과 도심의 유리 건물들이 물 위로 늘어서 있다.

개통 기념 사진에 정작 다리가 작게 들어간 것은 시선의 문제다. 이 도시는 다리를 구조물로 보여 주지 않고 그 위를 지나는 차의 눈높이에서 보여 주었다.

0215분

베키키역
베키키역© HOON

닷새 뒤인 12월 30일, 두 번째 개통이 있었다. 공항급행 CEX의 종착역 베키키역이고, 카사나이 공항에서 도심의 베키키역까지 단 15분에 이동할 수 있다고 도시는 적었다.

승강장은 고가 위에 있다. 전차선이 하늘을 여러 겹으로 가로지르는 아래로 흰 고속열차가 정면으로 들어오고, 양옆에는 승강장 지붕과 행선 안내판이 줄지어 있으며, 오른쪽에는 창 하나 없는 백화점 벽면이 통째로 서서 아래쪽에만 세일 간판을 붙여 두었다. 뒤로는 유리 초고층 한 채가 승강장을 내려다본다.

공항철도의 가치는 소요 시간에 있고 15분은 짧다. 짐을 찾고 나와 열차를 타면 도착 안내가 나오기 전에 도심이다.

03공항보다 먼저 열린 공항철도

다만 이 노선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종착역이 문을 연 이튿날, 도시를 지은 쪽은 전혀 다른 글의 댓글에서 지금 공항을 짓고 있다고 적었다. 활주로와 CEX 노선은 완성했으니 조만간 보여 줄 수 있겠다는 말이 뒤따랐다.

순서가 뒤집혀 있다. 공항급행이 공항보다 먼저 열렸고, 15분이라는 숫자는 아직 다 서지 않은 출발지에서 재어 놓은 시간이었다. 도시를 짓는 일에서는 드물지 않은 순서이기도 한데, 이어질 두 점을 먼저 박아 놓고 그 사이를 나중에 채운다.

그 자리에서 나중에 시네마틱으로 서로 엮어 보자는 제안이 나왔고, 공항도 좋겠다는 말이 붙었다. 아직 짓는 중인 공항에 촬영 약속이 먼저 잡혔다.

04운임표를 읽는 법

이 노선은 운임표를 함께 공개했다. 그해 이 도시가 스스로에 대해 남긴 몇 안 되는 문서 가운데 하나다.

구분운임
성인 (19–55세)1,600칸
미성년 (10–18세)1,200칸
노인 (56–79세)700칸
그 외무료

환율은 100칸에 1,000원이라고 원문은 밝혔다. 성인 운임은 우리 돈으로 만 6천 원쯤 되고, 공항철도 요금으로는 비싸지 않은 편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아래다. 노인 운임이 미성년 운임보다 싸고 '그 외'는 무료인데, 그 외란 9세 이하와 80세 이상을 말한다. 이 표에 따르면 카사나이에서 가장 어린 사람과 가장 나이 든 사람은 공항까지 공짜로 간다.

또 하나. 이 도시는 노인을 56세부터로 보고, 80세가 되면 아예 요금 체계 밖으로 내보낸다. 두 숫자 사이에 이 도시가 사람의 일생을 나누어 보는 방식이 들어 있다.

요금을 매기는 일은 곧 이 도시의 놀이가 되었다. 새해 첫날 도심에 새 초고층 한 채가 들어선 사진이 올라오자 달라진 곳을 찾아보라는 말이 붙었고, 가운데 파란 건물이 맞느냐는 답이 오간 끝에 타워 이름은 정했느냐는 물음과 전망대 요금도 올려 달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돌아온 대답은 아파트라는 한마디였다.

타워 이름도 정하셨겠네요?
전망대 요금도 나중에 올려주세요.

05국토 대부분이 미개발입니다

크루즈 받는 도시
크루즈 받는 도시© HOON

연말에는 이 도시가 속한 나라의 이름이 나왔다. 아오테아로아다. 12월 31일에는 여권을 발급받으라는 안내가 사진 한 장과 함께 올라왔고, 이중국적이냐는 물음과 여권 색이 새롭다는 감상이 달렸으며, 발급처는 다른 나라에 있는 대사관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며칠 뒤에는 나라의 위치를 알아 두라며 지도가 올라왔다. 국토 대부분이 미개발 지역이라는 관찰에 카사나이만 개발 상태냐는 되물음이 붙었고, 생각보다 크다는 말에는 땅부자가 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도에는 이웃 나라도 함께 그려져 있었다. 우미가 보인다는 말에 우미족이 아오테아로아로 이주한다는 농담이 이어졌고, 멀어서 슬프다는 말에는 안 멀다는 대꾸가 돌아왔다. 지도에 함께 그려진 그 나라는 이번 호 우미국 편에서 따로 다뤘다.

도시 하나와 빈 땅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먼저 지은 것이 다리와 공항철도였던 사정이 여기서 조금 설명된다. 이어질 상대가 나라 안에는 아직 없었다.

06오늘도 여전히 달린다

해가 바뀐 첫날, 도시는 CEX가 오늘도 여전히 달린다는 한 줄과 사진 한 장을 올렸다. 그 아래에 베키키역행 말고 여러 역을 걸치는 다른 버전도 곧 운행할 예정이라는 예고가 붙었다. 급행이 먼저 열리고 완행이 뒤따르는 순서다.

12월 5일에 이름 한 줄만 걸고 시작한 도시는 그달이 가기 전에 다리와 철도와 운임표와 여권을 갖췄고, 공항은 그때까지도 짓는 중이었다. 이 도시의 다른 얼굴은 이번 호 Places 섹션에 실었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베키키역 묘사(고가 승강장·전차선·흰 고속열차·행선 안내판·백화점 벽면과 세일 간판)는 게재 사진에 보이는 대로
  • '개통 기념 사진에 정작 다리가 작게 들어간 것은 시선의 문제' — 편집부 논평 1
  • '이어질 두 점을 먼저 박아 놓고 그 사이를 나중에 채운다' — 편집부 논평 2
  • '이어질 상대가 나라 안에는 아직 없었다' — 편집부 논평 3. 3127 댓글('국토 대부분이 미개발', '카사나이만 개발상태')에 근거
  • '그 외 = 9세 이하와 80세 이상'은 원문 연령 구간에서 편집부가 도출(원문은 '나머지 무료')
  • '성인 만 6천 원' — 1,600칸×(1,000/100) 환산
  • 12월 5일 두 글을 '작별과 시작'으로 잇는 구성은 편집부의 배열이며, 원문들이 서로를 언급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