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이

시티즈와 어린이를 합친 '시린이'는 이 게임의 초보를 이르는 말이다. 2020년 가을, 그 이름을 스스로 붙인 사람들의 도시가 잇따라 올라왔다. 200시간 만에 표지판 하나를 세운 일이 속보가 되고, 닷새 만에 강 양안을 채운 도시가 시린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계절의 기록.

연재 마지막 글의 도시 전경
연재 마지막 글의 도시 전경© N700A

6월 말, 게시판에 줄임말과 신조어를 모아 놓은 글이 하나 올라왔다. 처음 이 게임을 접했을 때 카페에서 쓰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한참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있어서, 자기처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정리해 두었다는 것이 작성 이유였다.

목록의 대부분은 도구 이름이었다. 교통 모드와 도로 모드의 약칭이 줄줄이 이어지고 자재를 고쳐 쓰게 해 주는 모드의 약칭도 그 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도구가 아닌 항목은 둘뿐이었다. 하나는 게임의 이상한 작동을 제작사가 있는 나라 이름에 빗댄 농담이었고, 다른 하나가 시린이였다. 시티즈와 어린이를 합친 말이며 이 게임의 초보를 이르는 말이라고 그는 적었다.

01이름

이 말에는 짝이 있다. 오래 한 사람은 고인물이라 불리고 그보다 더 오래된 사람에게는 석유라는 말이 붙는데, 물이 고여 있으면 고인물이고 더 오래 묻혀 있으면 기름이 된다는 농담이다. 두 이름 모두 남이 붙여 주는 쪽이다.

시린이는 반대다. 이 계절의 제목들에서 그 말은 거의 예외 없이 글쓴이가 자기에게 붙인 것이었다. 시린이 출몰, 시린이의 한국형도시 만들어보기, 200시간 시린이의 타워팰리스 도전기. 남이 초보라고 부르기 전에 먼저 초보라고 말해 두는 순서다.

02삐약

「200시간 시린이의 타워팰리스 도전기」 현장
「200시간 시린이의 타워팰리스 도전기」 현장© paper cup

7월 초에 올라온 한 글은 망설임에서 시작한다. 이미 오래 한 사람이 같은 소재로 올린 뒤라 올릴까 말까 고민했다면서, 그냥 올려 보겠다는 말과 함께 두 글자를 덧붙였다. 삐약.

사진 아래 붙은 설명은 짧고 정직했다. 이것이 두 시간 작업한 결과라는 것, 옹벽 위쪽으로 터널을 내야 하는데 만드는 법을 모른다는 것, 그러니 아는 분들은 부디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것이었다. 지면에 실은 화면이 그 자리인데, 층을 이룬 회색 옹벽과 계단이 절반을 채우고 도로는 막다른 곳에서 둥글게 되돌아 나오며 그 너머로 유리 외벽의 건물 두 채가 서 있다. 잔디는 아직 손대지 않은 채 그대로다.

답은 금방 달렸다. 벽을 두르고 그 위에 바닥용 자재를 깔면 된다는 안내가 화면과 함께 붙었고, 어느 자재냐고 묻자 철도 옹벽 자재라는 답과 흰 벽은 육교 소품이라는 정정이 차례로 이어졌다. 도로는 기본 도로 위에 아스팔트를 덮어 차선을 가린 다음 옮기는 도구로 선을 하나씩 그은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화면 갈무리하는 법을 몰라 운영체제 기능으로 찍었더니 화질이 갔다는 고백도 그 아래 붙었는데, 게임 플랫폼의 단축키를 알려 주는 댓글이 달리자 몰랐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것이 2시간작..
아시는 고인물분들은 부디 자비를 배푸사

03200시간 만에 표지판

200시간 만에 세운 표지판
200시간 만에 세운 표지판© Kim

9월 중순, 도시소식 게시판에 제목과 본문이 같은 글이 하나 올라왔다. 속보로 시작하는 한 줄이었고 시린이가 200시간 만에 표지판을 사용했다는 내용이었으며, 근거로 붙은 것은 사진 한 장이었다.

사진에는 고층 아파트 세 동이 나란히 서 있고 그 앞 넓은 도로 가운데에 초록 바탕의 방향 표지판이 하나 놓여 있다. 왼쪽 발치에 알록달록한 놀이터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철길이 지나간다. 표지판 하나를 빼면 특별할 것 없는 장면이고, 바로 그 하나를 세우는 데 200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글의 전부다.

댓글에 달린 것은 축하가 아니라 고백이었다. 1500시간을 해도 안 쓰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말이 먼저 붙었고, 100시간을 해도 귀찮아서 안 쓴다는 말과 187시간인데 쓰고는 있지만 진짜 귀찮다는 말이 이어졌으며, 5009시간을 해도 안 쓴다는 말이 그 아래 달렸다.

표지판을 하나 세운다고 도시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오래 한 사람들이 저마다 미뤄 두었다고 말한 그 일을 200시간 된 사람이 먼저 했고, 그래서 속보라는 말이 붙었다.

04닷새

9월 하순, 도시연재 게시판에 시린이라는 제목을 단 연재가 시작됐다. 첫 회는 아카이브에 남아 있지 않고 두 번째 글부터 확인되는데, 그 본문은 사고 수습으로 시작한다. 모드 오류로 국제공항 쪽이 터져서 복구하는 데 30분은 쓴 것 같다는 것, 그리고 계속 상품 부족이 말썽이라는 것이었다.

답이 상세하게 달렸다. 상품 부족은 산업과 상업의 균형 문제이니 어느 한쪽을 조절하고, 외부에서 물건이 들어올 통로로 화물열차나 화물항구를 늘려 보라는 조언이었다. 이튿날 올라온 다음 글의 첫 문장이 그 답이었다. 어떤 분이 해결 방법을 알려 주셔서 화물역을 곳곳에 설치하고 항만을 놓아 문제를 상당히 해결할 수 있었다고.

같은 글에서 구역이 하나 더 늘었고 강변을 끼고 마천루들이 순식간에 솟았다는 말이 뒤따랐다. 그날 안에 올라온 그다음 글은 이어져 있지 않던 두 구간을 아파트로 빼곡히 메워 이은 기록인데, 완성 화면을 올려놓고 그는 이렇게 적었다. 이렇게 한 건물로 도배를 하는 것을 보면 자기는 아직 시린이인 것 같다고.

그 뒤에 올라온 글에서는 두 구역이 하나로 이어졌고 빈 공간이 채워졌으며, 이쯤 되니 컴퓨터가 버벅거린다는 말이 붙었다. 사흘 사이에 강 하나를 낀 도시가 양안을 다 채웠고, 게시판의 반응은 감탄과 항의가 반씩 섞여 있었다. 시린이가 아니신 것 같다는 말 아래에 여섯 글자가 붙었다. 높아진 시린의 문턱.

시린이가 아니신거 같은데요....
높아진 시린의 문턱 ㅠ

05문턱

문턱이 높아졌다는 말은 이 계절 내내 반복됐다. 7월 초에 한국형 도시를 올린 사람에게 시린이가 맞느냐는 물음이 두 건 달리자 본인은 이제 100시간을 조금 넘겼다고 답했는데, 그 아래 붙은 말이 사정을 요약한다. 자기가 100시간이었을 때는 그냥 게임에 들어 있는 자재로만 했다면서, 요즘은 시린이가 멸종한 것 같다는 한탄이었다.

7월 중순에 500시간 된 사람이 올린 첫 도시는 용도부터가 이름과 어긋났다. 자기가 만든 자재를 창작마당에 올리면서 그것을 찍어 보여 줄 배경으로 쓰려고 지은 도시였는데도 제목에는 시린이가 붙어 있었다.

10월 초에는 한 사람이 도시 사진 한 장을 올리면서 제목과 본문을 똑같이 적었다. 시린이 도시 한 장 올려 봐요. 봄부터 여름까지 한 도시를 계속 지어 온 사람이었고 댓글은 그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고인물이 뉴비 행세를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 곧바로 달렸다. 변명은 다른 진짜 석유들의 화면을 보고 나니 자기 도시가 오징어처럼 보여서 그랬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시린이가 만든 도시는 어디 있느냐는 물음과 도시 이름이 마산 시린이인 것이냐는 농담이 뒤따랐다.

06도시 하나를 완성하며

「시린이 출몰」의 밤거리
「시린이 출몰」의 밤거리© Hello

10월 1일, 닷새 동안 이어지던 연재가 제목을 바꿔 달고 끝났다. 시린이-도시 하나를 완성하며. 어느덧 자기의 첫 도시가 나름대로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그러나 그 규모 탓인지 상당히 버벅거리고 플레이 도중 강제로 종료되는 일까지 생겨 더 이상 확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는 문장으로 이어진다.

댓글에는 진단이 달렸다. 버벅임과 강제 종료는 메모리 부족일 수도 있다면서, 아마 다음 도시도 비슷한 인구에서 같은 증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가 붙었다. 답은 이랬다. 메모리 부족이 확실한 것이 작업관리자를 봤더니, 하고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고.

아흐레 앞서 올라온 다른 글의 인사말이 이 계절의 어조를 그대로 보여 준다. 다른 분들의 도시에 비하면 자기 도시는 그저 허허벌판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웃음소리를 세 번 적고, 도시 이름을 몬테카를로라고 지었는데 일본 느낌으로 잡고 싶었으나 실력이 부족해 이도저도 아닌 짬뽕이 되어 간다고 그는 썼다.

지면에 실은 밤거리가 그 도시다. 유럽식 석조 건물이 큰길 양옆으로 늘어서 창마다 불이 켜져 있고 벽면에는 네온 간판이 붙어 있으며, 노면전차 궤도가 도로 한가운데를 따라 곧게 이어진다.

그 글에 달린 댓글은 한 줄이었다. 시린이 그 특유의 감성이라며, 잘 보고 간다고.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인용·시간(200시간·1500시간·5009시간·100시간·500시간)·공정·조언은 모두 원문 그대로다. 시간은 게시자 본인이 밝힌 플레이 시간이며 편집부가 산출한 수치가 아니다
  • 「시린이-1」에 해당하는 글은 아카이브에 없다. 연재는 「시린이-2」부터 확인된다. 본문에 그 사실만 적었고 부재의 이유는 추정하지 않았다
  • 01절의 '고인물/석유'는 원문 댓글에서 쓰인 말을 옮긴 것이며, 물이 고이고 기름이 된다는 풀이는 편집부의 설명이다
  • 01절 '남이 초보라고 부르기 전에 먼저 초보라고 말해 두는 순서다'와 03절 '표지판을 하나 세운다고 도시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두 곳이 편집부 논평이다. 그 밖에는 사실 서술로 두었다
  • 사진 묘사(옹벽과 막다른 도로, 표지판과 놀이터, 유럽식 석조 건물과 노면전차 궤도)는 지면에 실은 네 장에 보이는 범위다
  • 05절에서 '봄부터 여름까지 한 도시를 계속 지어 온 이'라는 서술은 2020 여름호 「마산」의 근거 자료와 같은 작성자임을 대조해 확인한 것이다
  • 04절의 '사흘 사이에'는 게시 날짜(09-26~09-28)에 근거한다
  • [22697] 댓글 — 던져버려요 '교통은 막힘없이 원활하신가요? 상업에서 상품부족이면 산업을 늘리거나 반대로 상업을 조금 줄이거나 - 균형이 안맞는상태 … 아니면 상업주변에 외부수입가능하게 늘려보세요 화물기차나 화물항구나' / N700A '화물역 하고 항구를 설치해 주니까 해결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당' / 무다스 '바닐라 갬성 좋읍니다' → 04절
  • [22728] 댓글 — 무다스 '시린이가 아니신거 같은데요....ㄷㄷㄷㄷㄷ' / 티디비 '높아진 시린의 문턱 ㅠ' → 04절 pull-quote. 이 두 줄이 기사의 성격을 정했다
  • [22865] 댓글 — 던져버려요 '렉과 팅김 메모리부족일수도 있군요 / 인구가 몇이셨나요? / 아마 다음도시도 비슷한 인구수에서 같은증상이 있을수 있어요' / N700A '메모리부족이 확실한게 작업관리자를 봤더니.....(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 06절
  • 시린이 문화 (같은 계절의 다른 글들)
  • 지면 미게재: 도구·기능 실명(에셋→자재, 프롭→소품, 무브잇→옮기는 도구, 서피스 네트워크→바닥용 자재, 윈도우스샷→운영체제 화면 갈무리, F12→게임 플랫폼 단축키, 렉→버벅임, 팅김→강제 종료). 회원 닉네임은 본문에 옮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