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로 86, 금관로 84
2020년 9월, 마인크래프트 서버의 한 한옥마을에서 정비 사업이 이어졌다. 연재의 제목은 전부 번지수다. 금관로 86, 금관로 84, 금관로 77, 황남시장길 39. 집 한 채가 한 편이 되고 대문에서 장독대까지 한 바퀴를 도는 구성이 되풀이된다.
지난 봄 특집호의 마지막 기사는 다른 게임으로 옮겨 간 사람을 다뤘다. 사진으로만 남은 궁을 지었던 이가 블록을 쌓아 읍성의 문을 세우고 있었고, 그 성 곁에 한옥마을이 하나 생기는 중이었다. 마을 이름은 능참봉마을이고, 대릉원을 둘러싸듯 자리해 능을 지키는 참봉과 같다 하여 그렇게 불린다는 설이 전한다고 그는 적었다.
그 마을에 여름 끝부터 정비 사업이 시작됐다. 9월 초에 올라온 글은 8월 22일부터 시작된 1차 정비가 마무리되었다는 보고로 열리는데, 처음에 다섯 필지가 대상이었고 두 필지가 추가로 개선되어 모두 일곱 필지가 정비되었다는 집계가 뒤따른다.
01제목이 번지수
이 연재를 다른 도시 연재와 구별 짓는 것은 제목이다. 금관로 86, 금관로 84, 금관로 77, 황남시장길 39. 도시 이름도 아니고 건물 이름도 아니고 회차 번호도 아닌 번지수가 제목 자리에 그대로 들어가 있고, 본문 첫 줄은 그 주소를 한 번 더 완전한 형태로 적는다. 남해 지산시 금관로 86, 괄호 열고 황남동.
주소가 제목이 되려면 먼저 주소 체계가 있어야 한다. 이 서버의 도시들은 신청서를 내고 좌표를 적어 허가를 받은 뒤에 생기고, 그렇게 생긴 도시 안에 도로가 놓이고 그 도로에 이름이 붙은 다음에야 집에 번지가 매겨진다. 금관로라는 길 이름과 86이라는 번지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이 연재가 가능했다.

지면에 실은 위쪽 화면이 그 관계를 그대로 보여 준다. 검은 기와에 흰 테두리를 두른 지붕이 골목을 사이에 두고 빽빽하게 이어지고, 그 오른쪽으로는 노란 중앙선을 그은 아스팔트 도로가 지나가며 가로등과 신호 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한옥마을과 도로 사이에 완충 지대가 거의 없어서 지붕과 차선이 한 화면에 나란히 놓인다.
02대문에서 장독대까지
집 한 채를 다루는 순서는 매번 거의 같다. 입면으로 시작해 대문을 지나고 마당을 거쳐 본채의 대청으로 들어간 다음, 작은방과 큰방을 차례로 보여 주고 부엌과 식당으로 넘어간다. 그다음이 별채이고 부속 건물이며, 마지막은 담장과 전경이다. 끝은 늘 셀카로 마무리라는 한 줄이다.

그 순서 안에서 실제로 손이 많이 간 자리는 부엌이었다. 어느 집에서는 입구를 간단하게 꾸미고 중앙에 아일랜드 식탁을 만들었으며 커피포트와 찬장을 놓았고, 아궁이가 하나 들어갔다. 이 집이 아궁이를 넣은 세 번째 집이며 구조는 앞의 것들과 동일하다는 설명이 그 아래 붙는데, 같은 집 안에 아궁이와 현대식 주방이 함께 있다는 점은 따로 설명되지 않는다.
담장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담에도 힘을 줘 봤다는 말과 함께 골목길에 늘어선 꽃무늬 담이 나오고, 화려한 무늬를 넣어 봤다는 말이 그 뒤에 붙는다. 마당에는 텃밭이 있고 장독과 상자가 놓이며, 굴뚝에서는 연기가 폴폴 난다.
대문 안쪽에는 명패가 하나 붙어 있다. 지면에 실은 화면에서 왼쪽 벽에 걸린 작은 판인데, 거기에는 이 집의 주소와 준공한 날짜와 지은 사람의 이름이 세 줄로 적혀 있다. 집마다 이런 판이 붙어 있으므로, 어느 집을 누가 언제 지었는지는 게시글을 찾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확인된다.
03혼자 지은 마을이 아니다

이 마을을 한 사람의 작업으로 읽으면 틀린다. 봄 특집호에서 확인했듯 마을의 한옥 여러 채는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을 받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한 것이고, 갈비집의 인테리어는 또 다른 사람이 맡았다. 9월의 정비 사업은 그렇게 세워진 집들의 안을 채우고 고치는 작업이었다.
댓글에서도 여러 사람의 손이 드러난다. 금관로 86의 아일랜드 식탁을 두고 애란 식탁이라는 말장난이 붙었고 섬 식탁인데요 하는 답이 돌아왔는데, 이 말을 던진 사람이 바로 갈비집 인테리어를 맡았던 이다. 금관로 84에는 지산에 아파트는 없나 보다는 말이 달렸고, 다른 사람의 건축을 보고 싶다는 청이 같은 자리에 붙었다.
황남시장길 39은 마당 조경 때문에 완공이 살짝 늦어졌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지산시의 9월 첫 가옥이라는 설명이 그 아래 붙고, 앵무새 한 마리와 물이 나오는 구멍과 가산 비슷한 무언가가 차례로 소개된다. 지금은 말라 있다는 단서가 물구멍 옆에 달려 있다.
이 집의 부엌을 두고 모던하다는 댓글이 달리자, 모던인가 하는 되물음이 돌아왔다. 옆집 벽이 바로 옆에 붙어 있다는 설명이 본문 끝에 있는데, 필지가 좁게 나뉜 마을이라 집과 집 사이에 여유가 거의 없다.
04인구 50명
금관로 84의 본문에는 집과 상관없는 줄이 하나 끼어 있다. 지산시 인구 50명 돌파. 그 아래로 입면과 현관과 마당과 화단이 이어지므로 이 줄은 집을 소개하는 문장이 아니라 도시의 근황을 알리는 문장인데, 서버 안에서 도시가 인구를 갖는다는 사실이 이렇게 한 줄로 지나간다.
댓글은 그 줄을 놓치지 않았다. 인구를 집계하면 가장 최근에 생긴 도시가 인구가 제일 많을 것이라는 말이 붙었고, 아파트가 깡패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옥을 한 채씩 채워 인구를 늘리는 도시와 아파트 한 동으로 인구를 세는 도시가 같은 서버 안에서 같은 지표로 비교되고 있었다.
각 글의 끝에는 이동 명령어가 한 줄 적혀 있다. 지산으로 데려다주는 명령인데, 이 연재가 사진첩이 아니라 안내문이기도 하다는 표시다. 주소를 제목으로 달고 명령어를 발치에 붙여 두면, 읽은 사람이 그 집 앞에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