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 아래의 성채

봄호의 커버스토리였던 네오홍콩이 여름 동안 다섯 회차를 더 채웠다. 파산한 건설 현장에 난민이 자리를 잡고, 버려진 항구를 일본 기업이 사들이고, 옛 레저 시설 자리가 무덤가로 바뀐다. 화면마다 그런 설정이 한 문단씩 붙는다. 도시를 만드는 시간보다 광고판을 만드는 시간이 더 걸렸다는 기록과, 렌더링을 견디지 못한 컴퓨터 이야기.

다시 지은 구룡성채
다시 지은 구룡성채© 검은여우

이 연재의 글은 늘 같은 인사로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하고 이름을 밝힌 뒤 그날 만든 구역이 어떤 곳인지를 한 문단으로 설명한다. 설명은 위치가 아니라 사연이다.

지난 봄호의 커버스토리가 이 도시의 앞부분을 다뤘다. 여름 동안에는 열두 번째부터 열여섯 번째 구역까지 다섯 회차가 더 올라왔고, 그사이에 파산한 건설 현장과 해안가와 문화 시설과 광고판과 성채가 차례로 세워졌다.

012050년에 시작해 2060년에 무너지다

7월 중순의 열두 번째 회차는 도시에 연표를 붙였다. 2050년, 세계에서 가장 큰 비즈니스 구역을 만들겠다는 정부 정책에 따라 많은 투자와 자금이 동원되어 건설이 시작되었다. 2060년, 심각해진 기후변화와 경제 불황에 정부 기능까지 마비되면서 그 사업은 파산을 맞았다.

그 뒤가 이 회차의 요점이다. 버려진 건물 구역에 피난 온 난민들이 자리를 잡았고, 그렇게 거대한 다운타운 구역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짓다 만 구조물을 폐허로 두지 않고 사람이 들어와 사는 곳으로 바꾼 설정인데, 화면에서는 골조만 선 건물과 그 사이를 메운 판잣집이 한 화면에 들어온다.

댓글에서 30분에서 한 시간짜리 시네마틱으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제안이 나왔고, 그는 구룡 구역을 어느 정도 진행하면 한번 해 보겠다고 답했다. 가끔 자기가 같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는 말도 그 아래 달렸다.

구룡반도 남쪽 해안가
구룡반도 남쪽 해안가© 검은여우

02너무 미래스럽지 않게

7월 말의 열세 번째 회차는 반도 남쪽 해안가였다. 상업 구역이 활발하고 큰 기업의 홍콩 본사가 있는 곳이며 해안에는 페리와 크루즈선이 정박하는 정류장이 있다는 설명이 붙었다. 여기에도 사연이 이어진다. 한때 컨테이너로 가득했던 항구가 경제 불황과 부도로 버려졌는데, 일본의 거대 기업이 그 부지를 사들여 거대한 제조 공장을 지었고, 그래서 기업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되고 있다고 그는 적었다.

댓글 하나가 이 도시의 균형을 정확히 짚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미래스럽지 않아서 더욱 멋진 도시라는 말이었다. 답은 엄살에 가까웠다. 그게 가장 힘들다고, 너무 괴리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강약을 조절하면서 만들면 금방 피곤해진다고 그는 적었다.

같은 글의 끝에는 다른 종류의 고백이 있다. 컴퓨터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 다운되는 현상이 있어서 영상 화질을 낮춰 올렸다는 것이었다. 빠른 해결 방도를 찾아 더 나은 화질로 보여 드리겠다는 말이 뒤에 붙었다.

03도시보다 광고판

8월 초의 열네 번째 회차는 문화센터 주변이었다. 관광 목적의 사업이 주로 즐비한 곳이고, 밤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홀로그램이 나타나 해안에서 바라보는 도시가 화려함 그 자체라는 설명이 붙었다.

댓글에서 홀로그램 물고기가 움직이느냐는 물음이 나왔다. 답은 아니었다. 움직이지는 않고 역동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좌표를 이리저리 휘저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기술적이었다. 원래 움직이는 소품인데 거기에 겹쳐 놓기를 적용하면 동작 설정이 다 사라지는 것 같더라고 그는 적었고, 저 물고기 소품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라 수정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겠다는 말과 자기도 언젠가는 모델링을 빨리 배워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8월 중순의 열다섯 번째 회차는 영상 없이 스크린샷만 올라왔다. 밤새 작업해 편집을 끝내고 렌더링을 하려는데 자꾸 컴퓨터가 멈추는 현상이 반복되었다고 했다. 여러 설정을 바꿔 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기에 3년 동안 쓰던 기본 냉각 장치가 무거운 영상 편집을 못 버티는 것 같다고 판단했고, 그 김에 수냉 쿨러를 하나 질렀다고 그는 적었다. 월요일에 받아서 화요일쯤 영상이 올라가겠다는 예상까지 붙어 있다.

이 회차의 주제는 도시 확장과 광고였는데, 본문에 딸린 한 줄이 작업의 무게중심을 알려 준다. 도시 만드는 것보다 광고판 만드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는 것이었다. 영상은 없지만 스크린샷이라도 남겨서 발자취를 남겨 보겠다는 말로 그 글은 시작한다.

이 글에는 이번 호의 다른 기사와 이어지는 대목도 하나 있다. 파리를 짓던 사람이 댓글로 조명 소품을 멀리서 보면 빛이 번지는 현상이 없느냐고 물었고, 그는 설명만으로는 감이 안 잡히니 스크린샷이 있으면 알 것 같다며 후처리 설정 문제나 모드 충돌일 수 있다고 답했다.

04축구장을 무덤으로

블록 한가운데의 묘지
블록 한가운데의 묘지© 검은여우

8월 말의 열여섯 번째 회차는 과거에 만들었던 구룡성채를 다시 지은 것이었다. 설명은 네 문장이다. 네오홍콩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은 곳이고, 각종 불법 건축물이 서로 엉키다가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했으며, 하수도를 불법으로 개조해 부족한 마실 물을 충족하지만 그마저도 그리 깨끗한 편이 아니다.

마지막 문장이 이 회차의 화면 하나를 설명한다. 이곳은 과거에 레저 스포츠로 유명한 장소였는데 모두 파괴되고 죽은 사람이 묻히는 무덤가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면에 실은 화면에서 그 자리는 도심 한복판의 블록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묘지이고, 바로 옆 건물 벽면에는 후광을 두른 인물의 영상 광고가 켜져 있다.

댓글에서 그 대목을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축구장과 테니스장을 공동묘지로 만들어 버리는 발상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는 말이었다. 답이 붙었다. 저곳이 실제로 레저 시설이 엄청 많은 곳인데 가만둘 수는 없더라는 것이었다.

축구장과 테니스장을 공동묘지로 만들어버리는 발상에
저곳이 실제로 레저시설이 엄청 많은 곳인데, 가만둘순 없더라고요

무법적인 초고밀도의 느낌이 너무 좋다며 그 구성력이 놀랍다는 감상도 달렸고, 분위기가 압도적이라는 말도 여럿이었다.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많이 참고했다고 그는 답했다.

낮에 본 다운타운
낮에 본 다운타운© 검은여우

여름 다섯 회차의 설명을 이어 붙이면 하나의 연대기가 된다. 정부가 벌인 사업이 무너지고, 무너진 자리에 사람이 들어오고, 버려진 항구를 다른 나라 기업이 사들이고, 옛 놀이 시설이 무덤이 된다. 화면을 채우는 것은 네온과 홀로그램인데, 그 아래 적히는 문장은 대체로 무엇이 망했고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왔는지를 말한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회차별 설정문·연도·작업 사정·댓글 문답은 모두 원문 그대로
  • 사진 묘사(가설물과 배수관, 크루즈선과 부두 위 주차장, 블록 한가운데의 묘지와 벽면 영상 광고, 짓다 만 골조와 크레인)는 지면에 실은 네 장에 보이는 범위
  • '짓다 만 구조물을 폐허로 두지 않고 사람이 들어와 사는 곳으로 바꾼 설정'과 맺음의 '화면을 채우는 것은 네온과 홀로그램이지만' 두 곳이 편집부 논평이다
  • 04절 사진의 벽면 광고가 무엇을 그린 것인지 원문은 밝히지 않았다. 지면에서도 형태만 적고 대상을 단정하지 않았다
  • 극중의 기후변화·경제불황·난민 서술은 작성자가 만든 가상 세계관의 설정이며 현실의 사건을 가리키지 않는다. 지면에서도 그 범위 안에서만 옮겼다
  • 여름 다섯 회차를 하나의 연대기로 읽은 마지막 문단은 편집부가 이은 것이며, 원문들이 서로를 연대기로 묶지는 않았다
  • 2020 봄호 [네오홍콩](../2020-spring/neohk.md) — 이 연재의 앞부분.
  • 지면 미게재: 도구·기능 실명(PO→겹쳐 놓기, 프롭→소품, PostProcessFX→후처리 설정, CPU→컴퓨터, 공랭·수냉→냉각 장치·수냉 쿨러), 극중 기업명 일부, 하드웨어 제조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