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을 고증하다
북악산 뒤로 살짝 보이는 북한산까지 — 광화문광장에서 찍은 실제 사진과 대조해 가며 서울맵의 산등성이를 맞춘 지형 고증. 이름조차 뜨지 않는 산의 높이와, 1081픽셀이라는 상한과, 같은 여름에 그 위를 덮어 본 위성사진에 관하여.
도시를 옮겨 짓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은 대개 건물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자재로 어느 랜드마크를 세웠고 어디가 아직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런데 건물이 서기 한참 전에 이미 결정되는 것이 하나 있다. 도시가 앉을 땅과, 그 뒤에 설 산이다.
여름의 초입에 한 사람이 자기가 만든 서울 맵의 능선 이야기를 꺼냈다. 건물 이야기가 아니라 산등성이 이야기였고, 그 맵은 작년에 처음 서울을 시작하며 만든 것이라고 그는 적었다. 서울이라는 프로젝트는 그보다 앞서 한 번 좌초한 적이 있는데, 여러 차례 추진하다가 전용 맵을 만드는 일 자체의 어려움에 부딪혀 잠정 중단되었다가 두 달쯤 뒤에야 재개됐다. 도시를 짓기 전에 넘어야 할 것이 땅이었다.
01북악산 뒤의 북한산
광화문에서 북쪽을 보면 경복궁 뒤로 북악산이 서고, 그 북악산 뒤로 북한산의 바위 봉우리가 살짝 얼굴을 내민다. 두 산이 겹쳐 보이는 이 풍경은 서울의 스카이라인에서 가장 낯익은 장면이고, 산이 도심의 배경으로 늘 걸려 있는 대도시는 그리 흔하지 않다.
서울 맵을 만든 사람은 이 겹침을 놓치지 않았다. 실제 광화문광장에서 촬영한 사진과 대조해 가며 능선을 정확히 구현하고자 했다고 그는 적었고, 뒤로 보이는 북한산뿐 아니라 북악산의 전체적인 선까지 실제 지형을 참고했다고 덧붙였다. 게임 안의 산과 현실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봉우리의 위치와 능선의 곡선을 조금씩 고쳐 나가는 방식이었다.
지면에 실은 화면이 그 결과다. 앞쪽으로 짙은 침엽수가 빼곡한 사면이 완만하게 흘러가다가 등성이가 끝나는 자리에서 흰 화강암 덩어리가 불쑥 솟고, 그 오른쪽은 아직 손이 닿지 않아 푸른 안개처럼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다. 정작 그 사진은 그가 찍은 화면이 아니었다. 다른 회원이 찍어 올린 스크린샷을 가져와, 남이 자기 맵을 찍은 장면으로 능선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시가 아니라 도시의 배경을,
사진 한 장을 기준으로 고증했다.
02이름이 뜨지 않는 산까지
맵을 만들 때 지형은 대개 대강 마무리된다. 플레이하면서 계속 수정하게 되므로 처음부터 공들일 이유가 적고, 그도 평소에는 조금만 다듬고 넘어간다고 적었다. 서울 맵의 능선만 유독 신경을 썼다는 말이 그 뒤에 붙는다.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는 본문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단 댓글에 나온다. 서울 시내 거의 모든 산의 최고 높이를 실제 정상과 정확하게 일치시켰다는 것, 그리고 지도에서 이름조차 뜨지 않거나 높이 정보가 없는 산들까지 온갖 정보를 뒤져 가며 맞췄다는 것. 북악산과 북한산은 누구나 알아보지만 이름이 뜨지 않는 산은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데, 그 산들의 높이가 먼저 맞춰져 있었다.
아쉬움도 같은 자리에 적혔다. 게임이 주는 바위가 아쉽다는 것인데, 그래도 사진을 보면 북악산의 바위에도 일부 고증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는 말을 그는 덧붙였다. 요런 고증 너무 좋다는 짧은 반응이 그 아래 달렸다.
031081픽셀
이 정성에는 상대해야 할 상한이 있었다. 이틀 뒤 같은 사람이 질문 게시판에 글을 하나 올렸는데, 지형 자료를 어디서 내려받아도 게임의 편집기에서 내보내도 높이 자료가 늘 한 변 1081픽셀의 정사각형으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왜 이런 변태 해상도를 채택하게 되었을까요, 하는 물음과 맵 크기에 비해 화질이 낮다는 불평이 함께 적혀 있었다.
답은 두 줄로 왔다. 1081이 23과 47을 곱한 수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먼저 달렸고, 한 픽셀이 2u×2u에 해당한다는 답이 뒤이었다. 지형이 한 변 2u짜리 격자로 계단처럼 끊겨 있고 그 격자보다 작은 굴곡은 아예 담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실제 정상 높이를 아무리 정확히 알아내도 산은 결국 그 계단 위에 얹힌다.
능선 고증은 그 계단 위에서 이루어진 작업이다. 실측치를 그대로 옮기는 일이 아니라 게임이 허락한 해상도 안에서 봉우리 하나가 다른 봉우리 뒤로 얼마나 나오게 할지를 정하는 일이라, 자로 재는 작업보다 눈으로 맞추는 작업에 가깝다. 대조 기준이 지도가 아니라 광화문광장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었던 데에는 그런 사정도 있다.
04산은 사진에, 평지는 손에

고증에는 딜레마가 따라붙는다. 실제 지형을 그대로 옮기면 도시를 짓기가 어려워지는데, 서울은 산과 언덕이 많은 도시라 굴곡을 충실히 재현할수록 건물을 앉힐 평평한 땅이 줄어든다.
그는 두 가지를 나누어 처리했다. 산은 최대한 실제와 닮게 만들되 도시 건설이 쉽도록 고도가 낮은 지형은 완전한 평지를 늘리는 융통성을 발휘했다고 적었다. 능선은 사진에 맞추고, 평지는 손에 맞췄다.
나눔의 기준은 시선이다. 배경의 능선은 어느 화면에나 걸려 있으니 누구나 보지만, 낮은 땅의 등고선이 실제와 몇 미터 어긋나는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다. 고증이란 결국 아무도 확인하지 않을 것까지 맞추는 성실함이겠으나, 그 성실함을 어디에 쓸지는 따로 골라야 한다.
05하늘과 바다만 빼고
보름쯤 뒤 그는 같은 지형 위에 정반대 방향의 실험을 얹었다. 실제 위성사진을 게임 안에 깔아 넣은 화면을 올리면서, 뭔가 구글어스처럼 그럴싸하지 않으냐고 적었다. 그야말로 입체지도라는 반응이 달렸고, 바다랑 하늘 빼고 다 사진이냐는 물음도 붙었다.
능선을 맞추는 일과 위성사진을 까는 일은 방향이 서로 반대다. 앞의 것은 현실의 형태를 게임의 격자 위로 옮기는 작업이고, 뒤의 것은 현실의 표면을 그 위에 그대로 덮어 버리는 작업이다. 같은 여름에 한 사람이 둘 다 해 보았고, 지면에 실을 만한 장면으로 남은 쪽은 앞의 작업이다.
도시를 짓는 사람들의 사진에서 산은 늘 배경이다. 주인공은 건물과 도로이고 산등성이는 그 뒤에 흐릿하게 걸려 있을 뿐인데, 그 흐릿한 배경을 위해 누군가는 광화문광장에서 찍힌 사진과 게임 화면을 번갈아 보며 봉우리를 몇 픽셀씩 옮긴다. 아무도 배경을 칭찬하지 않아도 배경이 틀리면 도시 전체가 서울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리라고, 우리는 짐작한다.
정작 왜 하필 능선이었는지는 이 글에 적혀 있지 않다. 유독 신경을 썼다고만 적고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눈을 감고 서울을 떠올릴 때 구체적인 건물보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실루엣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짐작할 만하겠지만, 짐작은 아직 짐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