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옛 도시를 찾다

자기가 만든 옛 도시들을 다시 방문하는 '도시정리 프로젝트'. '아레시 통계청 직원이 인구조사하러 왔을 뿐'이라는 설정으로 세 도시를 찾아가는 동안, 표의 항목과 가상국가의 역사와 스스로 정정한 인구 수치가 함께 쌓인다.

세인스 제목 화면
세인스 제목 화면© 네인

도시를 짓는 사람에게는 옛 도시가 쌓인다. 한동안 만들다 멈춘 도시, 이름을 바꾼 도시, 저장을 깜빡하고 나가 버린 도시. 그 도시들은 하드디스크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봄에 한 사람이 그 옛 도시들을 도시정리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다시 열기 시작했는데, 그냥 여는 대신 명분을 하나 발명해 두고 열었다. 아레시 통계청 직원이 인구조사를 하러 왔을 뿐이라는 설정이다.

01통계청이라는 발명

첫 글은 안심하라는 말로 시작한다. 작년의 분할압축 같은 것은 아니라고, 그저 통계청 직원이 인구조사를 하러 왔을 뿐이라고. 오래된 도시를 다시 여는 데에도 명분이 필요해서, 그냥 열면 감상이 되지만 명분이 있으면 기록이 된다.

통계청은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센다. 이 도시가 잘 지어졌는지, 아름다운지, 완성됐는지 묻지 않고 다만 인구가 몇이고 언제 세워졌고 어디에 있는지를 적는다. 자기가 만든 옛 도시를 다시 보는 일은 부끄러울 수 있는데, 통계청의 시선을 빌리면 그 부끄러움이 서식이 된다.

통계청은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센다.

02세인스, 첫 번째 도시

첫 방문지는 세인스 시티였고, 기록은 표에서 시작한다.

항목세인스 시티 Sainth City
생일2015년 3월 15일
인구46,042
진행시간2035년 8월 4일
위치아레시령 내륙 지역 혹은 동모리티아

이 도시는 만든 사람의 사실상 첫 도시였다. 처음에는 Lakewood라는 자동 생성 이름으로 플레이했고, 이 사람의 세계관에 종종 등장하는 Lakewood 문명이 여기서 나왔다. 중간에 이름을 세인스로 바꿨지만 저장을 깜빡하고 나가 버린 탓에 마지막 세이브 파일에는 여전히 옛 이름이 남아 있다. 새 이름의 유래는 본인도 확실히 모른 채, 세인트를 적절히 변형한 것이라 카더라는 말로만 적혀 있다.

연재에서 이 도시는 바둑판 도시로 불렸다. 격자로 깔린 넓은 대로와 그 옆의 확장된 보도가 특징이고 큰 블록마다 구가 나뉘는데, 구 이름이 대부분 정신 나간 것들임을 알 수 있다고 그는 적었다. 초심구, 별명이 전설의 시작인 구도 여기 있다.

1년 전 행정구역을 정리할 때는 체정구라는 구의 한글 이름을 도저히 기억해 낼 수 없었다는데, 이번에 뇌를 풀가동한 결과가 기록에 붙어 있다. 정체를 뒤집은 이름이었다. 정신 나간 구 이름 옆에는 정신 나간 지하철 선형이 있고, 이쪽 동네에서 지하철 스위치백은 정상이라는 설명이 달렸다.

03분할된 도시

세인스에는 역사가 붙어 있는데, 2017년에 다른 카페에서 진행된 가상국가 놀이에서 이 도시가 겪은 일이다. 그해 초까지 구 아레시 연방은 세인스를 아레시의 역사로 인정하지 않았다. 세컨다리 플랫에서 쿼드와 초심과 세일과 시청과 지금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모두 한 사람의 지도 위에 있었던 터라 통일성을 지키려는 쪽에서 세인스를 빼놓았고, 그렇게 세인스 시민들은 강력한 반발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다 사건이 하나 터진다. 아레시의 직접시가 옮겨 가면서 인공섬 공항 부지를 메울 흙과 모래가 필요해졌고, 옆 나라에서 실어 오는 그 물량을 내륙 지역이 중개하기로 했다. 세인스로 들어와 항구를 떠날 예정이던 흙과 모래는 중간에 반정부 세력과 충돌한다. 그 일로 내륙 지역의 독립 열기가 뜨거워졌고, 고속도로 위를 지나는 대교 밑에는 현수막이 걸렸다.

협상 끝에 세인스는 고속도로를 기준으로 서세인스와 동세인스로 갈라졌다. 동쪽 건물에는 동모리티아 자치정부의 국기가 걸렸고 양쪽을 직접 잇는 관문의 검문은 그다지 까다롭지 않다고 기록은 적었는데, 칼같이 가른 지도와 달리 이곳 주민들은 별 생각 없이 경계를 넘나들며 산다. 고대의 중앙거리와 현재의 중앙거리가 나란히 실린 뒤, 많은 시간이 지나 세인스는 결국 다시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로 돌아갔다는 문장으로 이 대목이 닫힌다.

가장 통계청다운 장면은 댓글에 있다. 글을 올린 사람이 빼먹었다며 서세인스 13,549명과 동세인스 31,401명을 따로 올린 뒤, 구역을 지정해 뽑는 방식이라 게임을 진행시키지 않으면 인구가 뜨지 않아 집계된 총인구와 2천 명이나 차이가 나는 문제가 있지만 가볍게 무시해 달라고 덧붙였다. 디테일한 역사는 언제나 환영이라는 댓글이 그 아래 붙었다.

04추정 불가

세컨다리 플랫 제목 화면
세컨다리 플랫 제목 화면© 네인

두 번째 도시는 하루 뒤에 올라온 세컨다리 플랫이다. 2015년 5월 11일생, 인구 21,410명. 이 표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하위 행정구역 항목인데, 추정 불가라고 적혀 있고 없었다는 설이 정설이며 초심구는 존재했다는 설도 있다는 주석이 달렸다.

자기가 만든 도시인데 행정구역을 추정한다. 기록이 별로 없다고 여긴 도시였는데 며칠 전 출토된 움직이는 사진 두 장에서 극초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그는 적었고, 진입로 옆에 선 정체를 알 수 없는 성을 두고는 역사학자들이 건축 양식과 존재 이유를 분석 중이라고 썼다.

건국일에도 논란이 있다. 명목상 아레시의 건국연도는 2015년 4월인데 최근 연구로 세컨다리 플랫의 실제 시작일이 5월 11일임이 밝혀지면서 건국일을 그날로 고쳐야 한다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고 기록은 적는다. 이 도시가 아레시에서 건국이나 다름없는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도 함께 붙어 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지도를 쓴 첫 도시였다.

이름값을 못 한다는 자평도 있다. 플랫이라는 이름과 달리 세컨다리 플랫은 아레시 최대의 경사도시이고, 해안에 보이는 띠를 명물이라고 소개한 뒤 곧바로 똥물이라고 정정했다. 이차적 납작시라는 댓글과 두 번째 다리 납작시라는 댓글이 이름을 한 번씩 더 비틀었다.

05모든 도로를 2차선 이내로

세 번째 도시는 한 달 반 뒤에 올라온 이차선시였다. 2016년 초에 앞 도시를 접으면서 시작한 도시이고, 컨셉은 제목 그대로 모든 도로를 2차선 이내로 짓는다는 것이었다.

한계는 곧바로 나왔다. 마을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로터리이고, 2차선의 한계를 넘어 보려고 지하고속도로라는 것을 구상했는데 그것이 사실상 이 도시의 유일한 특색이라고 그는 적었다. 지하에 웬 가로등이 서 있는 사진에는 조명이 딸리지 않은 도로 자재를 쓴 탓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붙어 있다.

정치사도 짧지 않다. 이차선 제도는 원주민에게 반환되었다가 이듬해 3월 돌연 재합병되는데, 그 재합병이 무엇을 말하려던 것이었는지 자기도 잊어버렸다고 기록은 밝힌다. 1대 총선거에서는 모드와 자재를 그만 쓰라는 뜻의 이름을 내건 후보가 지사로 당선되며 이 도시의 정치색이 급격히 반 모드 반 자재로 바뀌었고, 실제로 이차선시에 있는 자재라고는 편의점 하나뿐이었다.

그 뒤로 이차선의 존재감은 옅어져 지도에서도 빠지는 수모를 겪는데, 2대 총선에서 모든 선거구 가운데 유일하게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며 잠깐 이목이 모인 적이 있다는 문장이 그 옆에 놓였다. 댓글에서 걸린 것은 로마자 표기였다. Two lane city가 아니었느냐는 말과, 이차선 도로밖에 없는 도시인 줄 알았다는 말. 답은 한 줄이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06자기 아카이브를 다루는 방법

세 도시의 표를 나란히 놓으면 항목이 조금씩 는다. 세인스는 생일과 인구와 진행시간과 위치까지고 세컨다리 플랫부터 선거구와 하위 행정구역이 붙는데, 나라에 선거가 있고 행정 체계가 있다는 사정이 표의 항목으로 먼저 드러난다.

누구나 자기가 만든 오래된 것들을 갖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다시 볼지는 쉽지 않은 문제인데, 그냥 지우기엔 아깝고 그냥 두기엔 부끄럽다.

아레시 통계청은 지우지도 미화하지도 않고, 다만 방문해서 기록한다. 인구를 세고 생일을 적고 위치를 확인하며, 잊어버린 것은 잊어버렸다고 적고 모르는 것은 추정 불가라고 적는다. 지난겨울 이 매거진은 오래 비워 둔 도시를 다시 찾아가 안부를 물었는데, 여기서는 안부 대신 호구조사가 온다.

이차선시 편의 마지막 줄은 나머지는 이차선 섬의 경치나 감상하자는 말이다. 통계청은 다섯 달 뒤 네 번째 도시를 찾아간다.

출처

편집 노트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편집부의 해석인지 밝힙니다.

  • 세 도시의 기록표, 세인스의 분할 역사, 세컨다리 플랫의 '추정 불가'와 건국일 논란, 이차선시의 컨셉·정치사, 댓글은 모두 원문 그대로
  • 히어로와 04절 사진이 각 편의 제목 화면이라는 사실은 이미지를 실제로 열어 보고 확인했다
  • '통계청은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센다', '부끄러움이 서식이 된다', '지우지도 미화하지도 않고 다만 방문해서 기록한다' 세 곳이 이 기사의 편집부 논평이다. 가을호·겨울호가 이 세 문장을 직접 인용해 받는다
  • 송정과의 대비는 편집부의 것이다
  • 원문의 가상국가 서사에 등장하는 다른 도시명(스팀랜드 8023, 뉴쿼드 등)은 맥락 설명이 길어져 지면에서 '다른 도시'로 처리했다. 세인스·세컨다리 플랫·이차선시·초심시·세일시는 원문 그대로 두었다
  • '구 아레시 연방', '역사학자', '사료', '출토' 같은 표현은 원문의 서술 방식이며 편집부가 붙인 수사가 아니다
  • 기록표: '생일: 2015년 3월 15일 / 인구: 46,042 / 진행시간: 2035년 8월 4일 / 위치: 아레시령 내륙 지역 혹은 동모리티아' (원문 그대로)
  • '와! 본격 과거의 도시를 정리하는 프로젝트 입니다. 작년의 초심시 분할압축같은 건 아니니 안심하세요 / 그저 아레시 통계청 직원이 인구조사하러 왔을 뿐입니다'
  • 'Lakewood라는 자동 생성 이름', '아레시 스토리중 종종 보이는 Lakewood 문명이 바로 여기서 따온 것', '이 도시를 접게된 과정이 저장을 깜빡하고 나가버린 것이여서 마지막 세이브 파일로 추정되는 것에는 여전히 이름이 Lakewood', '뇌피셜에 의하면 세인트를 적절히 변형했다 카더랍니다'
  • '바둑판으로 깔린 대로와 옆의 확장된 보도', '구 이름들이 대부분 정신나간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심구(전설의 시작)도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