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의 흔적을 따라가다
2018년 4월에 시작해 841일째를 세고 있던 서울 맵이 8월 초에 계곡 하나에 손을 댔다. 조선 시대의 그림에 남은 자리이고, 1971년에 아파트 9개 동이 들어섰다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철거와 복원 사업을 거친 곳이다. 폭포를 처음 만들어 보느라 물 생성 지점을 셋으로 나눴고, 사흘 뒤 그 계곡이 4분 2초짜리 영상으로 공개됐다.
8월 2일에 올라온 글의 마지막 두 줄은 날짜 세기였다. 프로젝트 서울, 841일째.
댓글에서 그 숫자를 되물은 사람이 있었다. 답으로 그는 옛 게시글 두 개의 주소를 붙인 뒤, 카페 글이 천 개가 안 되던 시절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맵이라고 적었다. 그때 그 맵이고 경복궁 건물들도 그대로라는 말이 뒤에 붙었고, 자기도 이렇게 오래 플레이하는 맵은 처음인 것 같다는 말도 있었다.
01841일째
그날의 작업은 옥인동 인왕산로였다. 최신 서울 3차원 지도를 자재 제작뿐 아니라 게임 진행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 붙었고, 어제 이 길의 작업을 시작했으며 이곳에 특별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예고가 이어졌다. 옥인동의 놀라운 변화를 평일에 게시하겠다는 말이 그 아래 있었다.
하루 뒤에 그 예고가 풀렸다. 2018년 4월 15일에 막을 올린 이 연재가 어느덧 2년하고도 석 달이 지난 장기 프로젝트가 되어 가고 있다는 문단으로 글이 시작하고, 그동안의 하위 프로젝트들이 열거된다. 2018년의 경복궁, 2019년의 명동성당, 2020년의 북악산과 인왕산. 이번에 소개하는 계곡은 인왕산 프로젝트의 부속 작업이면서도 별도의 프로젝트라 할 정도로 뜻깊다는 말이 붙었다.

02그림 속의 계곡
글의 두 번째 절은 이 자리의 내력을 다룬다. 조선 시대 화가가 그린 그림 한 폭이 옥인동 일대의 계곡을 담고 있고, 거대한 바위산을 역동적으로 그려 낸 그 그림에서 산행에 나선 네 사람도 발견할 수 있는데 향하는 방향을 보니 이제 막 돌다리를 지난 듯하다는 것이 그의 읽기였다.
그다음이 이 기사의 골자다. 일제강점기까지도 아름다운 계곡으로 남아 있었지만 1971년에 계곡이 파묻히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건설되었으며, 계곡을 짓누르고 지어진 그 아파트는 산자락을 따라 아홉 개 동 규모였다고 그는 적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안 되지만 계곡 위에 건물을 구겨 넣었던 것이라는 말과, 그렇게 이 계곡은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말이 이어진다. 물소리가 유명한 계곡이라 이름에 물 소리 두 글자를 썼고 여기서 동은 계곡을 뜻하며 조선 초기부터 그 이름을 썼다는 주석이 괄호 안에 붙어 있다.
복원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이어졌다. 서울시는 아파트 보상과 철거, 발굴 조사와 복원을 진행했다. 원문에는 그림 속의 돌다리로 추정되는 것이 이 과정에서 발견됐다고 적혀 있으나, 서울시 기록은 기린교가 원위치에 보존돼 있었고 그림 속 다리와 대응한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한다.
댓글은 그 대목에 반응했다. 급속도로 발전해 나아가는 길에 우리가 많은 절경을 잊어버렸다는 말이 달렸고, 서울에 이런 아름다운 계곡이 있었느냐는 말도 있었다. 산책로 모양에서 옛 단지의 흔적이 어느 정도 보이는데 혹시 다른 흔적은 없느냐고 물은 사람도 있었다.
03물을 다루는 일

제작 이야기는 세 번째 절에 있다. 그림 속의 계곡을 게임에서 복원하기에 앞서 좀 더 자연적인 원형에 집중하기로 했고, 기본적으로 작품 속 모습을 많이 참고하되 공원의 기능도 하도록 산책로를 조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장 큰 난관은 폭포였다. 이 게임에서 폭포 제작에 도전한 것 자체가 처음인 데다 계곡의 폭이 좁아 세밀한 작업의 난도가 매우 높았으며, 무엇보다 실제 물을 활용하는 데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고 그는 적었다. 이 게임에서 물을 다루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문장이 그 뒤에 붙는다.
해결책은 나누는 것이었다. 현재 이 계곡에는 물 생성 지점이 세 개 분산되어 있고 각각이 물을 자연스럽게 흘려 내리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더 자연스러운 폭포 질감을 위해 창작마당의 폭포 애니메이션 소품을 대량으로 배치했다는 설명이다. 곳곳의 암벽은 다른 제작자의 암석 자재를 주로 썼고, 복잡한 지형 탓에 겹쳐 놓기도 필수적이었다고 했다. 이 서울 맵에서 겹쳐 놓은 물체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라는 자평이 붙어 있다.

04첫 번째이자 네 번째
8월 5일에 예고가 올라왔다. 이 연재의 첫 번째 에피소드로 계곡이 공개된다는 안내였고, 조선 시대 유명 화가의 그림 속 장소가 개발 시대를 거치며 자취를 감추었다가 복원된 역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소개가 붙었다.
이튿날의 공개 안내는 영화 정보처럼 짜였다. 상영 시간 4분 2초, 관람 등급 전체관람가, 공개일은 8월 6일 오후 8시 30분. 내용 정보 칸에는 다른 번호가 적혀 있다. 경복궁과 명동성당과 북악산에 이은 네 번째 에피소드라는 것이었다.
같은 작업이 한 글에서는 첫 번째이고 다른 글에서는 네 번째다. 영상 시리즈로는 첫 회이고 서울 맵의 하위 프로젝트로는 네 번째이니 둘 다 틀린 셈은 아닌데, 두 표기가 나란히 남았다.
공개까지의 몇 시간은 댓글에서 흘러갔다. 기대되는 표정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가 목표 시간대보다 네 시간이나 빨리 시간 여행을 해 버린 듯하다는 장문이 달렸고, 답은 짧았다. 다섯 시간이셨고 이제 네 시간 십삼 분 정도라는 것이었다. 그 아래에 이제 90분이라는 말이 다시 붙었다.
05방구석 서울 여행
공개된 영상 글의 부제는 두 줄이었다. 겸재의 흔적을 찾아서, 그리고 방구석으로 떠나는 서울 여행을 시작합니다.
코로나 끝나면 저 게임속에 들어가서
폭포에서 쉬고 싶네요
계곡 소개 글에 달린 첫 댓글이 이 연재의 여름을 정확히 짚었다. 상황이 끝나면 저 게임 속에 들어가 폭포에서 쉬고 싶다는 말이었다. 이번 호의 첫 기사에서 파리를 짓던 사람이 같은 시기에 언택트 여행이라는 말을 받아 적었는데, 한쪽은 다녀온 곳을 다시 짓고 다른 쪽은 가 볼 수 있는 곳을 옮겨 짓는다.
계곡 소개 글의 맺음은 이랬다. 보기엔 평범한 계곡일지 몰라도 역동적인 역사를 가진 곳이며, 이 연재를 통해 서울의 또 다른 모습들을 발굴하고 그동안 놓쳤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계곡 작업은 계속 진행될 예정이라는 말도 함께 적혔다.
영상이 올라온 날 그는 댓글에 하나를 더 예고했다. 계곡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소리 영상도 이번 주에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봄 특집호에서 이 연재는 경복궁과 세종대로를 다뤘고, 그때는 스크린샷이 본체였다. 여름의 이 계곡부터는 스크린샷이 예고편 노릇을 한다.